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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희 May 03. 2021

조금씩 되찾아가는 일상


폭우 속에서 4월을 보내고, 5월이 시작되자 햇살이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지난주 2 접종을 마치고선 며칠을 몸살과 두통에 시달려야 했지만, 영사관에서 이번  입국비자를 받아오면서 귀국 준비는 차근히 진행된다. 부러운 웃는 인상을 가진 영사관 담당자는 6개월 비자를 주시고 싶었으나 3개월밖에 허용이 안되었노라 하셨다.  예상보다  달이 깎였으니 되돌려 받은 수수료 20불은  달치 분이다. 인사를 하고 황급히 뒤돌아 나오려는데 뜬금없는  외침이 들렸다. 논문  읽었노라는.... 저한테 하신 말씀이시냐 물었더니 재미있게 읽었다는 대답. 학계에 몸담지 않은 한국분이, 미술관에  심리학이 아니라 영어로   논문을 찾아 읽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니  무슨 경우람... 살짝 당황스러우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태평양을 건너 다니며 자료를 수집해 영혼을 갈아 넣었고, 냉정한 백인 커미티로부터 넘치게 박수받은 연구였지만, 지속되지 못한 연구에 남은 미련이 잠시 뒤통수를 꺼당겼다. 인생은 내가 원하는 것을 그렇게  호락호락 허락하지는 않는다. 달라고 우길 수도 있었으나, 스스로 대견한 점은 물러설 때와 다가설 때를 분별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역병의 진행 상황은 마치 작년 이맘때로 돌아가는듯한 기시감을 재현하지만, 주말 farmers market으로 북적이는 대학가 라이스 빌리지의 풍경은 우리가 마침내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음을 불현듯 보여주고 있었다. 매월 첫 주와 셋째 주말 아침에 열리는 farmers market이다.


정오를 넘어선 시간엔 이미 파장하는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켓 한편을 차지하고 노래 부르는 젊은이와 나른한 소리에 어울린 한낮의 트럼펫 소리도 나쁘지 않았다. 손수 만든 잼을  파는 가게의 포스트에 걸려 있던, 강렬한 멋짐을 발산하던 해바라기 한 다발이 화사한 주말 정오의 이미지다. 우리가 있던 원래의 세계로 어느덧 무사히 다시 돌아온듯한 기분에 마음이 녹았다.

60가지의 와인과 5가지의 맥주와 여러 가지 커피를 벽에 붙은 탭에서 바로 내려주는 와인바 sixty vines는 레스토랑을 겸하고. 레스토랑을 가득 메운 손님들은 한여름의 가벼운 복장으로 계절을 싱그러움으로 채색하고 있었다.

정상으로 돌아온 풍경이 반가웠지만, 화집을 싼 가격에 구입해 온 반값 책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은 더 황망하고 슬픈 소식이다. 38년을 그 자리를 지켰는데 지난해의 광풍에 못 견디고 무너졌다. 말할 수 없이 아쉬운 마음.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지.... 가을에는 세상 모두가 정상 생활을 되찾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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