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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희 Jul 01. 2021

경복궁 옆 삿포로

joy of driving on urban highway 신천대로

최고의 친절은 대구의 삿포로... 좋은 만남을 가지기에는 조용한 방이 안성맞춤이다. 대구에서는 삿포로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깔끔하고 친절하고 위치도 명당이다. 건물의 실내 분위기는 한국의 고전적 예술미를 갖추었고, 한식집의 이름은 경복궁이었다. 경복궁 옆 삿포로라니... 어이없는 지명의 조합이긴 했으나 경사진 산의 초입에 지어진 삿포로는 수성못을 내려다보는 좋은 위치에 유유자적하게 서 있었다. 그 옛날 호젓한 호반의 작은 길에서 굉장한 번화가로 탈바꿈을 하긴 했으나 역시 아늑한 지형이 기분 좋은 곳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고등학교 선생님을 이 일식집에서 뵈었다. 물론 장소는 선생님의 선택이었다. 이런 흥미로운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책을 출간하는 일은, 그리고 출간해서 성과가 좋은 경우라면 잊히고 끊어졌던 인연들을 다시 발견하고 연결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졸저는 발간된 지 일 년 정도 지난 작년 가을쯤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그 무렵 10쇄를 찍었고, 중국과의 판권 거래가 성사되었다고 출판사에서는 기쁜 소식을 알려왔다. 중국과 상식 이하의 불공정 거래를 하고 싶지 않았다. 출판 계약서류에는 저자는 갑이고 출판사는 을로 명시되어있다. 해서 나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갑질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갑의 동의 없이는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상기시키면서 중국 측에서 공정성에 눈뜰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노라.... 갑으로서의 비토권을 행사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무렵 동시에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필독서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었다. 모교에 책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은 그 소식을 듣고 나서야  들었다. 학교에 전화를 걸었을 때, 담임은 이미 은퇴를 하신 후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입학하던 해 교직을 시작하셨던 가장 젊었던 선생님을 여쭈었더니 당장 통화가 이루어졌다.  그날 이후 선생님은 내가 입국하기를 기다리셨고, 입국 후 자가격리에 있는 와중에도 전화로 귀향 날짜를 물어오셨다. 그리고 약속한 날이 되자 아침부터 문자를 주시고 저녁에는 이 근사한 삿포로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주셨다. 대학을 갓 졸업한 선생님은 너무나 예뻤었는데, 여전히 미인이셨다. 스물셋의 가녀림은 오십 대의 나이다운 후덕함으로 변했지만... 만나자마자, 포문을 열고, 부임 첫 해의 그 마음고생을 쏟아내셨다. 놀랍게도 선생님과 나의 나이 차이는 겨우 일곱 살. 고등학교 1학년괴 대학 졸업생만큼의 나이차다.


내외분이 여행을 오셔서 골프를 즐기시고 크루즈에 함께 승선할 궁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의무에서 해방되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선생과 제자 사이라니.. 꽤 흥미로운 사이가 아닌가. 그런 즐거운 추억이 만남의 장소를 더 좋은 곳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냉면을 먹으며 중요한 만남을 가진다는 건 피해야 할 일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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