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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Jun 14. 2024

광장의 찬란한 아침


도착한 저녁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겨울의 끝자락을 살짝 엿보았다.

벨타워로부터 울려퍼지는 중세의 종소리가 빗물에 녹아들고 있었다.

이튿날 찬란한 아침의 광장 마켓에 하얀 비둘기처럼 내려 앉던 새로운 계절.  

그리고 미친듯한 장식을 입은 중세의 성채와 교회건물들. 

물청소를 마친 광장의 찬란한 아침을 누구보다 먼저 준비하는 이들은

나란히 정렬중인 말과 마부들. 그들의 위용은 근사하지만

관광객을 태우기 위해 대기중인 말을 보는 일은 이제 그만 없기를 바라는 마음.   

브루게의 랜드마크 마켓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까만색 역사 미술관,

장식이 화려한 흰 교회 건물, 맥주 박물관, 벨프라이-종탑-이 ㄱ자를 이룬다.

까만색 역사 미술관 뒤쪽에 시청이자 미술관 건물이 있었다. 

창문과 벽을 조각한 장식 위로 금박을 입힌 첨탑.

시청사 내부는 미술관으로 운영되면서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는데,

현재 시의회를 비롯한 도시 운영과 행정에관한 중요한 의결이 진행되는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사실.  

시청의 의사당 벽면에 현재의 브루게를 있게 한 위인열전,

역사적 인물들이 모두 그려져 있는데 통치권자와 성직자들은 물론 

과학자와 화가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얀 반 에이크와 한스 맴링은 

힙한 청년의 모습으로 팔레트와 붓을 들고 서있다.





마켓 광장에서 가장 화려한 하얀 교회 건물을 중심으로

수백년간 컴플랙스가 증축되고 방화로 소실되곤 했는데

초기에 증축 된 시설로 고아원이 있었다. 

고아들 중에는 장애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교회와 시청 사이에 지어놓은 고아원!  

중세의 돌봄 시설은 공동체의 지도자들의 생각과 역량을 짐작하게 했다.

고아들은 성당과 시청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일꾼으로

나름의 몫을 담당하며 성장했을 것이다.

시내 곳곳에도 병원과 빈민구제 시설, 

남편이 전쟁 나갔다 못돌아온  여인들을 한 곳에 모여 생활하며 

보호하는 거주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말하길,

이런 정책은 과부들에게 재가의 기회를 말살하는 것이라 옳지 않아요 했다.

나는 대답하기를

그건 일리도 있는 말이기도 한데 능력자들은 알아서 재가합니다..

21세기에도 싱글맘은 힘든데 하물며 중세의 여인들이야...

약자들을 위한 공동체의 세심한 배려 같아요. 라고 말했다.

함께 살지 않으면 함께 죽을 수 밖에 없는 돌봄의 공동체. 

공동체의 시대.


골목은 좁고 주택들은 벽처럼 골목을 형성하고 있지만

벽 가운데로 난 열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중앙) 정원 courtyard가 나타나고 

이 중정을 둘러싸고 주택이 사각형 형태로 위로 3층 정도까지 올라간다.

유럽 주택구조 전반이 이런 구조라,

이렇게 딱붙어서 살다보면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타인에 대한 행동수칙을 몸에 익힐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북구 사람들이 그래서 멀찍이 멀찍이

사적 공간 배려하며 뚝뚝 떨어져서 ... 서로를 모른척.

하지만 그것은 농업을 기반으로 땅에 스며 들어

살았던 아시아의 노동집약적 공동체 구조와는

다른 태도와 정신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래전 파리의 샹젤리제의 숙소도 이런 구조였는데

직선으로 좍 뻗은 상젤리제의 한 블라바드를 걸어가다

오스만 스타일의 똑같은 외양과 구조를 한 아파트의 

벽같은 대문 앞에서 벨을 누르면 성문처럼 크고 둔중한 문이 열렸다.

성문같은 둔중한 문을 열고 10 미터쯤 걸어들어가자

중앙 정원이 나타나고, 중앙정원을  사각형 형태로 감싸고

주택 건물이 5층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5층에 우리 숙소가 있었는데 복도가 복잡하게 난 작은 복층 구조 아파트였다.

흔히 보는 파리의 상아색 건물 지붕에 빼꼼히 난 창문

그것이 우리 숙소의 거실에 난 창문이었다.

시간이 열 시를 향해갈 무렵 에펠탑은 

반짝이는 불빛으로 변하면서 레이저를 발사하곤 했다. 

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 손에 잡힐 듯한 에펠타워.

구스타프 에펠은 구조 엔지니어였다. 

에펠은 타워 하나를 남겼지만, 에펠타워만큼이나 아름다운

기능적인 건물을 짓는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는

구조 엔지니어이자 건축가를 겸한다. 

익룡의 하얀 날개나 거대한 공룡의 몸통같은 

하얀 철제의 아름다운 건축 왕국을 지어가는 칼라트라바. 


파리의 숙소는 작지만 할로겐 쿡탑에 식기세척기까지 

구비된 최신 부엌을 갖춘 공간이었다.

문제는 5층 까지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걸어올라가라는.

오래된 나무 계단은 미끄러워 짐을 들고 오르기엔  협소했고

미국식 사고에 익숙한 나는 라이어빌리티를 들어 

문제의 해결책을 원했다

주인 할머니는 자기 부엌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를

오픈해주겠다고 했다.

그때 살짝 엿본 주인 할머니의 거실은 영화에서 보던

그런 거대하고 화려하고 클래식한 살롱같은 공간.

그리고 전용 엘리베이터가 주인할머니네 부엌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이런 유럽의 보편적인 주택 구조를 구경하다보니

우리가 익숙한 현대의 아파트먼트 구조를 창안한  

르 코르부지에를 향해 자폐나 아스퍼거였을지도

모른다는 세간의 의혹이 따라다니는  이유를 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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