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던 화가 모네에게 복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에트르타의 겨울 바다를 그려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모네가 복 받은 바다. 에트르타
벨 에포크 파리에 득실대던 거의 모든 화가들은
에트르타를 거쳐갔다.
마을의 입구로 들어설 때
루팡이 썼던 검은 실크 톱햇을
대문장식으로 걸어 놓은 집을 지났다.
괴도 루팡이 훔친 보물을 숨겨 놓았던 동네 .
프랑스의 괴도 루팡과 영국의 탐정 셜록이
추리 소설의 양대 산맥이던 시절
나는 영국 탐정과 조수에 더 빠져 있었고 루팡은 몰랐다.
범인을 잡는 쪽이 범행을 저지르는 쪽보다 호감이 더 갔다.
5학년 교실 내 앞자리에 앉았던 공준이는 가끔
“게도루빵‘ ’개도루빵‘ 이야길 꺼내곤 했지만
나는 그것이 “괴도 루팡”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리는데 한참 걸렸다.
에트르타.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낭만적인 바다가 아닌가
땅이 갑자기 바다 위로 솟아 오른 수십 미터 하얀 절벽아래
터키색 바다가 한없이 펼쳐지는데
그 끊어진 절벽 끝이 어째서 코끼리를 닮았는지..
그야말로 기암괴석과 큰 바다.
평온하고 아늑하기도 했던 수평선은
길게 누운 모습을 드러내다 안개에 가려지다 했다.
가없이 높은 수평선 위에 시선을 두고 있으면 시간을 잊었다
파도가 쏴아하고 들어왔다 뒤로 물러날 때마다
모래가 아닌 몽돌 해변은 돌돌돌돌 돌 구르는 소리를
후렴구로 울리곤 했다.
마을 주차장의 양 옆으로 펼쳐진 두 개의 언덕,
엄마 코끼리 모양의 아발 언덕과
아기 코끼리 모양의 아몽 언덕 양쪽을 차례로 올랐다.
언덕 아래에선 날씨가 깨끗했지만
언덕 위에선 비가 사선으로 내렸다.
하지만 방수 외투에 달린 후드만으로도 충분했다.
안전장치 하나 없이 고스란히 유지하는
자연 그대로의 언덕과 바다.
언덕 위의 골프장은 스릴 만점이었다.
친구들 캐리커처를 그려주면서 용돈을 벌어쓰던
모네 소년에게 바다를 그리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세일러의 아들인 유진 부댕 씨.
부댕과 모네가 그린 에트르타의 풍경은
휴스턴으로 종종 나들이를 오곤 한다.
하버드를 졸업한 우리 동네 미술관장 게리 틴트로씨가
인상파 전문가인 이유로 전 세계에 인상파 작가들은
매년 순환하며 우리 동네를 다녀가고
나는 덕분에 편하게 멕시코만에 앉아서
노르망디 바닷가를 눈에 익혔다.
코끼리 바위들이랑 에트르타 그 해변의 지난 시절 풍경을
휴스턴에서 자주 봐왔다.
겨울의 냉기가 가시지 않은 3월 초
기한이 촉박한 원고를 쓰고 있던 어느 날 느닷없이
남편의 손에 이끌고 대서양을 건너는
KLM에 올라야 했을 때
나는 에트르타를 보겠다 마음먹었다.
'그 촌동네에 뭐가 있다고....'
파리를 좋아하는 남편은, 멋지기만 한 파리도 아니고
가야 할 일이 있는 제네바도 아니고
왜 하필 노르망디 촌구석을 가느냐고 눈치를 주었지만
나는 일도 일이지만 당장은 야생의 바다가 보고 싶었다.
일전을 치른 뒤, 차를 몰고 프랑스의 민낯을
낯낯이 살펴보며 노르망디 바닷가의 기암괴석을 찾아갔다.
갇힌 분지의 파리보다는, 땅끝을 느낄 수 있는 노르망디의 고지대를
운전하는 길이 나는 더 좋았다.
바다는 태평양 바다가 최고라고
부산 태종대 앞바다 그리고 그와 마주 보는
캘리포니아 절벽 아래 검푸른 바다가 정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모래사장 광활하고 거칠고 미친 파도의 노르망디-
맑고 푸른 브리타니로 이어지는
북해의 깊고 아름다운 얼굴을 대면하니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되찾은 것 같은
안도감이 슬슬 밀려왔다. 고향에 돌아온 듯한 기분.
기척도 내지 않고 잠들어 있던 마음이 다시
천천히 호흡을 시작했다.
삶에 대한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신호가 희미하게 …
나는 전생에 북해를 떠돌던 고래였던 것일까?
에트르타의 숙소는 언덕 위의 작은 성,
방에 딸린 테라스에 서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테라스의 창문을 열자 아련한 바다 냄새와 함께
저녁이 어스름히 밀려왔다.
그리고 소리 없이 고즈넉한 작은 마을 위로
하얀 갈매기 여러마리가 대기 속을 미끄러지듯 활강했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하얀 새들.
집집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 모락 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가
한순간에 나를 낯선 시간 속으로 데려다 놓았다.
저녁이면 지붕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의
조용한 풍경이 어쩌면 에트르타 바다보다도 더 마음에 남았다
그 연기의 정체를 확인한 것은
저녁 식사를 하러 들어간 동네의 레스토랑
가정식 요리를 내는 호젓한 식당은 테이블이 금방 찼고,
한 자리도 빈 곳이 없었으나 신기하게도
적당히 여흥을 돋우는 음악 소리에 묻힐 만큼
모두가 낮은 소리로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리는 낮고 작게, 대신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라따뚜이에 나오는 높은 요리사 모자를 쓴 주방장님이
식당의 모든 테이블을 확인할 수 있는 홀의 제일 깊은 위치
중앙에서 딱 서서 벽에 설치된 거대한 화로를 피워놓고 요리를 했다.
큰 화로 속으로 상체를 밀어 넣고 요리를 하느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야말로 헌신적인 요리와 저녁상.
그러니까 마을의 굴뚝 위로 피어나던 연기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연기였다.
물론 실내를 데우기 위한 벽난로도 있었겠지.
높은 요리사 모자를 쓴 주방장님은
누가 맛있게 먹나, 누가 인상을 쓰나
한 사람 한 사람 관찰하면서 여유 있게 음식을 차려내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호빵맨 같은 얼굴에
가볍게 미소를 띠며 목례를 했다.
그 미소로 디저트는 충분했다.
깊은 밤에 눈을 감으니 에트르타 파도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소환해 보는 오래되지 않은 기억.
에트르타 가정식 레스토랑의 기억과 함께.
조금은 퇴락한듯, 조금은 외졌으나 여전히 자신들의 리듬과 속도대로
아침이면 진열장과 창문을 반짝이도록 닦고 쓸고 가꾸는 마을 사람들.
내 마음의 한 조각은 에트르타 바닷가에 두고 왔다.
그리고 또 한 조각은, 대책 없이 광활하고
숨 막히게 비장했던 던커크 모래사장 위에,
그리고 생 말로 푸르고 잔잔한 해변에도...
마음의 조각들을 떼어 낸 빈 곳에는 북해를 품고 돌아왔다.
다시 찾으러 갈 때까지 고래와 함께 놀고 있을
마음의 조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