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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onica Jan 08. 2022

Keep Balance

나의 임신 결심기

  1월 3일부로 휴직을 했다. 정확히 말해서 1월부터 약 3개월 간은 출산 전후 휴가, 이후 약 1년간은 육아 휴직을 쓰기로 했다. 2021년은 굵직하게 얻은 게 참 많은 해였다. 상반기엔 서머 e-프리퀀시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무리했고 (빅 플젝을 마치며), 중반기에 임신을 확인하고, 출산을 위한 준비와 마인드 세팅에 집중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프로젝트가 한창인 6월 즈음이었는데, 워낙 이해관계자가 많기도 했고, 기대가 큰 플젝이라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끝날 때까진 비밀로 간직하다가 결과 보고까지 마친 다음 날, 회사 팀장님과 선임, 동료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프로젝트가 워낙 크고 일이 많았던지라, 그 와중에 생겨난 아이라면 “못해도 장군”이라는 축하를 많이 받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 생명이 잉태됐다는 게 참 기가 막힌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에는 모두 하나 같이 계획된 임신이었는지를 물었다. 친한 친구들이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당사자인 내가 가장  알고 있다. 서른이 넘고, 결혼을 준비할 때까지  번도 아이를 낳는다는 미래를 상상해  적이 없다. 회사가 너무 좋아서, 엄밀히 말해서 일이 너무 좋아서, 목표를 세팅하고, 고민하고, 추진하고, 달성해가는  과정이 너무 좋아서 가끔은 월요일이 오기를 기다릴 정도의 워커 홀릭이었고, 일을 통한 목표 달성 외에는 인생에 중요한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임신을 했다고 하니, 가까운 지인들 입장에선 당연히 궁금했을 하다. 그렇지만 나는 태생적으로 겁이 많고, 계획적인 사람이라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결정은   내린다.  초에 임신을 결심하고 건강 검진을 받고, 영양제를 찾아 먹으며 몸을 만들던 와중에 운이 좋게도 임신이 되었다.


  임신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내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그렇듯, 나 또한 결혼과 임신을 동일시하지 않았고, 부부끼리 즐겁게 지낸다면 아이가 없이 사는 삶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러다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에 중년 여성이 올린 글을 하나 보게 됐는데, 젊어서는 오히려 딩크족에 가까웠지만, ‘종의 번식’이라는 것은 본능과도 같은지라,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이를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은 난임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게시 글 아래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의 중년 여성들이 그녀에게 공감하고 있으며, 지금은 시험관으로 임신을 준비 중이라는 내용이 많았다. 익명의 글이었지만, 솔직한 고백과 수많은 공감을 보며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제 겨우 30대 초반의 나는 중년의 삶을 상상할 힘도, 이유도 없지만,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산 사람들의 경험이 내 이야기일 리 없다고 강하게 확신할 근거도 없었다. 그동안의 임신에 대한 내 생각은 기회비용을 고려한 처절한 고민이 아니라, 단순히 현상 유지 차원의 단편적인 생각의 조각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런 깨달음 후에 내가 임신을 고려하지 않았던, 더 정확히 말해서 두려워했던 이유를 곰곰이 따져 보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겪어 보지 않아서 상상이 잘 안 되기 때문에 고려의 대상이 되기 어려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지금까지 내가 겹겹이 쌓아 올린 삶의 균형들이 깨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후일에 갖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공허함이나 슬픔 같은 것들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쯤 숙고의 시간을 거친 후 새해의 목표를 임신으로 잡았고, 다행스럽게도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임신이라는 첫 단추를 끼웠으니, 자연스럽게 출산과 육아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간 켜켜이 쌓아 올린 수많은 일상들과 아이 양육 사이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매거진에서 풀어낼 이야기는 대부분 ‘균형’에 대한 이야기일 테다. 대체로 낙관적이고 때때로 나이브하기 때문에 뭐든 의지만 있다면 대부분 해낼 수 있다고 믿는 편이고, 평생 사랑해 온 일과 커리어가 아이를 키우는 일로 대체되거나, 좌절된다는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다. 다만, 주변의 친한 선배나 친구들의 경험을 통해서 전쟁 같은 육아 속에서 나를 지켜내는 일이, 아이를 키우면서 커리어를 쌓아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한 아이는 행복한 엄마를 통해 완성된다고 굳게 믿는다. 희생하면서도 나를 갈아내지 않고, 베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튼튼한 나, 현명한 일꾼, 강인한 엄마에 대한 기록을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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