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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onica Mar 09. 2022

성취 중독자의 ‘충만’

육아 지옥 속 자기 위안

  물리적 탈출은 불가능하니, 정신적 도피를 위해 쓰는 글.



  지난 1, 아기를 낳았다. 임신 중에 워낙 많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일찍 나올 줄은 알았는데, 목표했던 39주는  채우고 38 2 차에 아기를 만났다. 아기는  50일을 앞두고 있고, 많이 자랐다. 아기를 키웠다고   없고, 어찌어찌 50 일을 버텼다고 하는  맞겠다. 조리원과 산후도우미, 남편과 친정 엄마의 힘으로 견디며 시간을 보냈다. 출산과 육아는 상상이 불가능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내가 알고 있던 질서와 체계가 총체적으로 바뀌는 신세계다.  그릇 밖의 일이라고 느끼며 엉엉  다음 날엔   만하게 느껴지고, 기분 좋게   날은 다시 지옥이다. 아마 100 전까지는 어떤 원칙이나 방법론 아래에서 아기를 키우는  아니라, 시간을 버티다 보니 아기가 자라 있었다고 하는  맞을  같다. 어쨌거나 오늘은 다행히 ‘ 만한 이라, 에어  꽂고 음악 들으면서 당근 라페도 만들고, 노트북 앞에 앉아 글도 쓰게 되었다.


  근 삼십 년 평생, 내 삶의 근간은 ‘성취’였다. 목표를 설정하고, 방법을 찾아 목적을 이루는 과정.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생기면 심장이 뛰고, 목표를 이루고 난 이후의 쾌감을 기쁨으로 여기던 삶.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여행을 간다 해도 여행 그 자체보다 일정을 만들고, 그 일정을 하나하나 도장깨기 하며 누리는 쾌감이 더 큰 편이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도파민에서 힘을 얻고, 그 쾌감과 자극에 중독돼 살았다. 성취는 그야말로 내 인생의 원동력이고, 이런 타고난 성향은 아마 죽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그야말로 인생을 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한평생 누려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껴보게 됐다. 이런 감정을 별로 느껴본 적이 없어서 설명하기도 어려운데, 뭘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풍요로운 기분. 어떤 계획을 세우거나 목표를 달성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배부르고 벅차오르는 느낌. 그야말로 ‘충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이 온다. 세상에 아기와 나, 온전히 둘이 있는 기분.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것 같은 기분. 그때 알았다. 나는 매 순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 빼고는 내세울 게 없는 인생이었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런 풍요로운 감정을 누리며 살고 있었겠구나.


  나는 여전히 성취의 도파민이 전부인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고 즐거우니까. 그런데 그냥 그런 감정이 있었다. 숨 쉬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뭘 하지 않아도 즐거운 마음. 평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 그 감정의 대가는 살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에 걸쳐 생명이 태어나고, 대가 이어지는 이유를 어렴풋이 찾은 것 같았다. 육아의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기에 그걸 알고 난 이후의 삶이 더 좋다고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예전의 나는 몰랐던 세상이 있음은 분명하고, 이 지난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 마음의 그릇이 조금은 커지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든다. 자, 이제 또 수유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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