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지옥 속 자기 위안
물리적 탈출은 불가능하니, 정신적 도피를 위해 쓰는 글.
지난 1월, 아기를 낳았다. 임신 중에 워낙 많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일찍 나올 줄은 알았는데, 목표했던 39주는 못 채우고 38주 2일 차에 아기를 만났다. 아기는 곧 50일을 앞두고 있고, 많이 자랐다. 아기를 키웠다고 할 순 없고, 어찌어찌 50여 일을 버텼다고 하는 게 맞겠다. 조리원과 산후도우미, 남편과 친정 엄마의 힘으로 견디며 시간을 보냈다. 출산과 육아는 상상이 불가능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내가 알고 있던 질서와 체계가 총체적으로 바뀌는 신세계다. 내 그릇 밖의 일이라고 느끼며 엉엉 운 다음 날엔 꼭 할 만하게 느껴지고, 기분 좋게 눈 뜬 날은 다시 지옥이다. 아마 100일 전까지는 어떤 원칙이나 방법론 아래에서 아기를 키우는 게 아니라, 시간을 버티다 보니 아기가 자라 있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어쨌거나 오늘은 다행히 ‘할 만한 날’이라, 에어 팟 꽂고 음악 들으면서 당근 라페도 만들고, 노트북 앞에 앉아 글도 쓰게 되었다.
근 삼십 년 평생, 내 삶의 근간은 ‘성취’였다. 목표를 설정하고, 방법을 찾아 목적을 이루는 과정.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생기면 심장이 뛰고, 목표를 이루고 난 이후의 쾌감을 기쁨으로 여기던 삶.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여행을 간다 해도 여행 그 자체보다 일정을 만들고, 그 일정을 하나하나 도장깨기 하며 누리는 쾌감이 더 큰 편이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도파민에서 힘을 얻고, 그 쾌감과 자극에 중독돼 살았다. 성취는 그야말로 내 인생의 원동력이고, 이런 타고난 성향은 아마 죽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그야말로 인생을 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한평생 누려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껴보게 됐다. 이런 감정을 별로 느껴본 적이 없어서 설명하기도 어려운데, 뭘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풍요로운 기분. 어떤 계획을 세우거나 목표를 달성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배부르고 벅차오르는 느낌. 그야말로 ‘충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이 온다. 세상에 아기와 나, 온전히 둘이 있는 기분.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것 같은 기분. 그때 알았다. 나는 매 순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 빼고는 내세울 게 없는 인생이었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런 풍요로운 감정을 누리며 살고 있었겠구나.
나는 여전히 성취의 도파민이 전부인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고 즐거우니까. 그런데 그냥 그런 감정이 있었다. 숨 쉬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뭘 하지 않아도 즐거운 마음. 평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 그 감정의 대가는 살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에 걸쳐 생명이 태어나고, 대가 이어지는 이유를 어렴풋이 찾은 것 같았다. 육아의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기에 그걸 알고 난 이후의 삶이 더 좋다고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예전의 나는 몰랐던 세상이 있음은 분명하고, 이 지난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 마음의 그릇이 조금은 커지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든다. 자, 이제 또 수유하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