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Keep Balanc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ronica Aug 21. 2022

조리원, ‘천국’ 아닌 모유 수유 부트 캠프

육아에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또 한 번 오랜만의 글이다. 아기는 어느덧 7개월이 되었고, 결코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육아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모유 수유를 준비했던 과정과 산후 조리원에서의 경험은 꼭 글로 남겨두고 싶었는데, 우선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차일피일 미뤄졌다. 더운 날 낮잠 한번 건너뛰고 산책을 다녀온 아기가 일찍 잠들어 작심하고 글을 써본다.


  나는 모유 수유 수혜자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아기에게 2년간 모유 수유를 할 것을 권장하고 있는데, 나는 두 돌이 될 때까지 모유를 먹었다. 신생아부터 모유를 먹이다가 돌 이후에 일반 우유로 갈아타려고 준비하던 엄마는, 내가 모유 아니면 입을 싹 닫고 음식을 거부해 통통했던 허벅지가 새 다리처럼 앙상해지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모유를 다시 물렸다고 한다. 그렇게 두 살이 될 때까지 모유를 먹었다. 나의 모유 이야기는 유년기 엄마의 추억 거리 중 하나였다. 엄마에겐 신생아 시절부터 모유를 거부하고 분유를 고집했던 두 동생과 비교가 되는 재미난 이야기이기도 했고, 또래 친구들보다 평균 이상으로 모유를 많이 먹였으니 훈장 같은 고생담이기도 했을 것이다. 덕분인지 나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까지 잔병치레 한 번 없었고, 엄마는 이게 다 모유 때문이라며 몇 번을 강조하곤 했었다.


  나 또한 출산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모유 수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정말로 잔병치레가 없었던 유년기의 기억 때문이다. 나의 아기는 숙명처럼 워킹맘을 두게 될 것이고, 일하는 부모와 아기의 평안한 일상을 위해 병치레가 잦으면 안 된다. 물론 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다면 환경상 잔병치레는 피할 수 없다고 하지만,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책은 마련해주고 싶었다. 아기의 타고난 유전자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모유 수유를 통해 면역력을 길러주고, 아기가 아파서 육아의 고통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자 했다.


  모유 수유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난 이후에는 유튜브에 관련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책을 몇 권 미리 사 읽으면서 시험공부하듯이 대비를 했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남겨 두자면, <내 아이 건강을 위한 첫 모유 수유>와 <삐뽀삐뽀 119 소아과>, <베이비 위스퍼 골드> 이렇게 세 권으로 기본 개념을 정리했었다.) 모유 수유의 시작과 관련한 모든 지침이 공통적으로 아기에게 젖을 ① 처음부터 물리고, ② 자주 물리고, ③ 특히 호르몬의 영향으로 모유의 양이 많아지는 새벽에 한 번은 꼭 물려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기의 적응에 있어 모유 수유에도 골든 타임이라는 게 있고, 그 시기를 넘겨 버리면 새로 시작하기 어렵다. 가장 효과가 좋은 시기를 놓쳐서 몇 배로 고생해야 하는 비효율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상 무조건 산후조리원에 있는 2주 안에 모유 수유를 마스터하고 나와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보통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엔 대부분의 산모들이 신생아 케어를 맡기고 새벽 통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 ‘산후조리원=천국’이라 불린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모유 수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실 새벽 통잠을 포기하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게 중요했다. 나중에 입소하고 나서 알게 됐지만, 어차피 산후조리원 내 간호사 선생님들도 초유를 늘리기 위해 새벽에 유축기로 유축을 할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새벽에 한 번은 꼭 일어나야 한다. 어차피 한 번은 일어나야 하는데 그럴 거면 잠을 포기하고 그냥 아기에게 직접 수유를 하러 다녀오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모든 모유 수유 지침서에서는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캥거루 케어를 하며 젖을 바로 물려 아기가 자연스럽게 수유법을 익히도록 강조하고 있지만, 병원 시스템을 굳이 바꿔가며 유난스럽게 굴고 싶지는 않아서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고, 퇴원 후 비장한 마음으로 산후조리원에 입소하여, 모유 수유를 위한 가슴 마사지로 젖을 돌게 하고, 산후조리원 선생님들께 아기에게 직접 수유를 하는 방법 등을 코칭받았다.



  모유 수유에 있어  번째 난관은 수유 자세였다. 모유의 양은 전적으로 아기가 얼마나 자주 많이 먹느냐로 결정이 나는데 그러려면 편안한 자세를 잡는  가장 중요하다. 수유 자세를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자세를 만드는  일주일 정도는 고생했었다. 자세가 불편하니 아기가 젖을  먹지 못하고,   없으니 잠들어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돼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는 집념 하나로 하기로  액션들은 꾸준히 지속했는데, 특히 새벽에 수유를 하러 수유실에 가게 되면,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있다. 수유 방법은 전적으로 엄마의 선택이고, 어떤 것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없기에  시간의 수유실에서는 수유 자세가  잡히지 않아 고생하는 산모를 끝까지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새벽 수유실은 달랐다. 일단 새벽에 방에서 나와 수유실을 찾았다는 것만으로 모유 수유에 적극적이라는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산후조리원 선생님들도 몇십 분이고,  때까지 자세를 잡을  있도록 도와준다. 새벽 수유반에서 한번 익힌 자세를  수유 시간에 연습하고, 새벽에 다시 코칭받기를 며칠 반복하면서 결국엔 모유 수유에 성공할  있었다.


  자세 잡기 난관을 통과하고 나면, 아기의 뱃구레를 키워야 하는 미션이 주어진다. 신생아들은 젖을 먹다가도 잠들어 버리기 일쑤인데, 이때 잠이 들었다고 그냥 재워버리면 아기의 뱃구레가 크질 못해 엄마가 젖을 더 자주 물리는 고생을 해야 한다. (안 그래도 신생아들은 1시간 반에서 2시간 간격으로 젖을 먹는데, 한번 먹는 양이 적어 더 자주 물리게 된다면 엄마는 정말 하루 종일 젖만 물리다 하루가 끝난다. 아니 하루가 안 끝난다. 남들 다 자는 새벽에도 물려야 하니까! 이 사실을 아는 데에는 <베이비 위스퍼 골드>의 지침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기에 아기에게 한번 젖을 물리면 한쪽씩 15분, 무조건 30분은 꼭 먹여 아기의 위를 늘려줘야 한다. 자세를 잘 잡고 젖을 먹다가 잠들어버리곤 하는 아기를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되고, 귀나 발을 만져주거나, 노래를 크게 불러 시끄럽게 해서 깨워야 한다. 육아 지침서에서는 “귀를 만져 아기를 깨우라”라고 우아하게 이야기하지만, 귀만 만져서는 아기는 결코 깨지 않는다. 응원가를 부르고 박수를 치며 난리 법석을 떨어야 겨우 일어나서 다시 젖을 찾는다. (지금 적으며 보니 이걸 어떻게 했나 싶네.) 그렇게 아기를 깨워가며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조리원 퇴소일이 왔고, 적어도 모유 수유의 기본기는 완전히 마스터하고 조리원을 퇴소할 수 있었다.


  사실 퇴소 이후에도 쉽지는 않았다. 출산 이후 100일까지는 몸이 회복되지 않아 통증이 심한데, 모유 수유로 인한 젖몸살까지 남아 있어 굉장히 예민했었다. 거기다 1.5~2시간 간격으로 직접 수유를 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미리 읽은 <내 아이 건강을 위한 첫 모유 수유>에서 딱 두 달만 견디면, 엄마도 모유 수유에 있어서는 자신감이 붙을 거라고 했기 때문이고, 출산 후 50일쯤 찾았던 오케타니 마사지에서 지금 아픈 것도 100일 지나면 다 나을 거라고 얘기해줬기 때문이다. 고통이 더 고통스러운 건 끝나지 않고 영원할 것 같은 예감 때문인데, 끝이 있다는 걸 알고 나면 고통을 견디는 게 훨씬 수월해진다. 실제로 70일 정도 지나고 나니 몸의 고통도 사라지고, 모유 수유 패턴에도 익숙해져서 수유가 자연스러운 순간이 왔다. 모유 수유는 적응만 하고 나면 분유 수유보다 훨씬 편하기도 해서 지금까지 7개월 차 완전 모유 수유를 진행 중이다.


  내가 미리부터 모유 수유를 준비한 이유는 모유 수유가 결코 자연스럽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첫 아이에게 2년간 모유를 먹인 우리 엄마도 아래 두 동생의 모유 수유는 실패했었다. 모유 수유는 아기와 엄마의 합이 정말 중요한데, 어린 시절의 나는 비교적 먹는 데 큰 관심이 없어서 양이 적은 모유도 참고 넘겼던 것과 달리, 병원에서 분유와 모유를 병행했던 두 동생들은 분유에 비해 먹기 힘들고 양이 적은 모유를 참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엄마도 모유를 포기하고 분유 수유를 해야 했고, 그게 아직까지도 아쉽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나는 이렇게 모유 수유에 열성적인 엄마를 둬서 모유 수유의 시작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많은 산모들이 모유 수유 시작의 어려움을 잘 모른 채로 산후조리원에 들어오고, 생각지도 못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결국 성공하거나, 아니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육아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고 나서부터 늘 하는 생각이지만, 임신과 출산, 육아의 전 과정에 당연히, 알아서 되는 ‘자연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는데, 사회는 모든 문제의 해결을 오롯이 부모에게만 위임한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씩 겪는 통과의례인 만큼 인류에 있어 너무도 중대한 문제이고, 재사회화가 반드시 필요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자원을 들여 부모를 교육해주지 않는다. 모유 수유만 해도, 모두가 모유 수유가 좋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정작 모유 수유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유 수유를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들여야 하는지, 하다 못해 시작이 고생스럽더라도 나중엔 편해진다는 것조차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모유 수유에 강력한 열의를 가진 엄마가 책과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미리 공부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거라면, 이건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많은 엄마들이 막연히 모유 수유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시도하지만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면, 모유 수유는 모성을 바탕으로 한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다. 출산을 앞둔 엄마에게 필요한 건 “모유 수유는 곧 모성의 발로”라는 감상적이고 자극적인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라, 모유 수유를 이행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모유 수유가 전 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을 만큼 사회적 비용을 줄여주는 유익한 행위라면, 공공의 자원을 들여 모든 부모가 출산 전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나처럼 모유 수유에 강력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한 번쯤은 모유 수유의 성공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미리 배워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정부에서 분유 광고를 제재하면서까지 분유 수유를 억제하지 않아도 모유 수유를 시도하고, 또 성공하는 부모의 비중이 높아질 수 있다.


  임신, 출산, 육아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모두가 겪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인식돼 있는 것이지, 육아를 감내해야 하는 부모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생활 패턴을 송두리째 바꿔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사회가 정말로 출산율을 높이는 데 진정성이 있다면, 모든 부모가 겪고 있을 육아에서의 어려움을 재사회화를 통해 반드시 해결해줘야 한다고 믿는다. 쓰다 보니 너무 센 주장이 된 것 같긴 한데, 7개월간 아기 하나를 키워 내기 위해 모든 과정을 찾고, 공부하고, 배우고, 익히며 보낸 엄마가 다음에 올 부모들은 조금은 편하길 바라는 마음에 몇 자 적어봤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취 중독자의 ‘충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