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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욱 Apr 20. 2021

소극행정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문화재단 입문 가이드

꿈을 실현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바로 행동에 있다. 행동. 말 그대로 몸을 움직여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차원에서 예술행정이 행동하는 행정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창작활동 역시 생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유를 원고지로, 몸짓으로, 화폭으로 옮기는 행동을 통해서 비로소 예술은 작품이 된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정체와 답습을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술행정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필자가 10여 년간 예술행정기관에 몸담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감사에 지적받을 소지가 있습니다.”라는 문장이다. 두 번째가 “관행대로 처리하시죠.”아마도 전국적으로 조사해보면 이 두 문장으로 낭비된 행정 서류만 모아놓아도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줄·자 간격, 띄워쓰기나 오탈자 하나 때문에 두세 번 수정하면서 허비한 시간을 모아서 우주개발에 투자했다면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로 화성에 김밥 체인점을 오픈했을지도 모른다. 


세 번째,“행정을 입으로 합니까? 문서로 해야지.” 물론 행정에 있어 형식은 중요한 절차다. 그러나 반드시 모든 업무를 문서로 처리해야만 형식을 갖춘 행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일부 기관에서 구시대 유물처럼 남아있는 1장 보고(약식보고)가 그 처참한 현실을 그래도 보여준다. 1장 보고란, 상급자가 수 페이지에 달하는 기획안을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 핵심만 보기 좋게 1장으로 요약 해오라, 또는 구두로 보고 할 수 있는 간단한 업무처리 상황을 문서로 정리하라고 할 때 주로 사용되는 절차다.   


적극과 소극은 한 글자 차이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결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망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즉 행정으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술행정도 마찬가지다. 담당자의 소극행정으로 예술인들에게 지원되어야 할 예산이 불용된다면, 그 예술인은 그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2011년 32살의 시나리오 작가 겸 연출가인 최고은 씨가 죽음으로 예술행정 현장에 던진 간절한 메시지를 생각해보자. 기실 행정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공무원 혹은 공공의 예술행정가들은 왜 적극행정을 실천하지 못하는 걸까? 2019년 행정안전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3.5%가 “열심히 일해도 보상이 미흡해서”라고 답변했으며 다음으로 22.4%가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지게 되므로”라고 대답했다. 


“책임” 모든 권한에는 으레 책임이 따른다. 물론 권한은 신중하게 행사하여야 한다. 그러나 마땅히 국민을 위해 행사해야 하는 권한은 행사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행정가로서의 의무다. 국민을 위한 권한을 마땅히 행사하고 나서 발생하는 행정적 문제의 책임과, 권한 자체를 행사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국민적 피해에 따른 책임은 그 무게와 크기가 다르다. 말 그대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행정가는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소극행정을 하는 대부분의 행정가는 그 책임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본인이 받을지도 모르는 소소한 행정적 책임이, 권한과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피해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행정현장에서 사익 추구나 횡령 등의 비위행위를 위해 행정적 권한을 행사한 경우가 아니라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보다 큰 이유는 설문 결과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일을 해도 하지 않아도 보상은 똑같다는 이유일 것이다. 즉, 어차피 월급은 같으니 굳이 일을 만들어 가면서 적극적으로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한 심리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공공 행정가도 개인이고 근로자이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과 주어진 업무만 일 할 수 있는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이다. 필자가 이야기하는 소극행정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해석해서 행동하지 않도록 만드는 행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공공 행정가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극행정과 행정혁신은 그동안 하지 않았지만,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시민과 예술가가 원하는 행정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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