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단 입문 가이드
"예총과 민예총이 무슨 총입니까?"
문화예술행정 현장에 처음 오게 되면 자주 듣게 되는 두 개의 총이 있다. 바로 '예총'과 '민예총'이다.
순수예술을 전공하지 않고 다른 계열에서 행정직 취업을 위해 문화예술기관에 취업한 신입직원들은 더더욱 생소한 '총'일 것이다.
이번 챕터에서는 '예총'과 '민예총'이라는 예술계 막강한 두 군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예총'의 경우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민예총'은 (사)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의 준말이다.
두 단체 모두 단체명이 길다. 실제로 가입한 예술가들 조차도 풀네임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니 굳이 암기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현장에서 오랫동안 '예총', '민예총'이라는 준말이 풀네임처럼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굳어진 통용어라고 보면 된다.(지자체 연합의 경우 '충남예총', '충남민예총' 처럼 앞에 지역명을 붙여서 사용한다.)
'두 단체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단체명 앞에 붙어 있는 '(사)'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사단법인이라는 뜻이다. 사단법인이란 일정한 목적을 위해 결합한 ‘사람’을 구성요소로 하는 단체를 말한다. 즉, 사단법인은 '사람'이라는 구성원이 필수요소다. 대부분 법인격의 예술단체는 대부분 사단법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반대로 '(재)' 표기하는 재단법인은 일정한 목적을 위해 ‘재산출연’을 구성요소로 하는 사단법인과 비교하면 필수요소가 '사람'에서 '재산'으로만 바뀐 형태다. 즉, 재단법인은 재산(돈)을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이라고 보면 된다. 재단법인의 경우는 비영리를 추구하는 경우에만 설립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공익사업을 위해 지자체 및 기업에서 출연한 형태가 대부분이다.
"예총"과 "민예총"은 전국단위의 거대 예술단체 연합체다.
설립 순서대로 '예총'부터 설명하자면, 예총은 무려 1961년에 설립됐다. 해당 단체 홈페이지에 따르면 10개 회원협회(건축, 국악, 무용, 문인, 미술, 사진, 연극, 연예, 영화, 음악)와 전국 광역시도와 시군에 157개 연합회/지회(미국2, 일본1지회 포함)로 구성되어 있다.
<표-1 한국예총 조직도> 한국예총 홈페이지
한국예총 자체 추산 현재 가입 회원은 정회원, 준회원, 특별회원까지 무려 130만 명에 육박한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거대한 규모의 예술단체인 만큼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보수 진보를 떠나 문화권력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철학을 전파하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있어왔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해당 사건으로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되기도 했다. 대체로 한국예총은 보수 쪽 정치성향의 예술단체로, 민예총은 진보예술단체로 규정한다.(일반회원으로 내려갈수록 정치적 이념보다는 예술창작활동과 지원에 관심이 높아, 두 개 단체에 중복으로 활동하는 회원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런 이유로 정부지원금 역시 보수정권에서는 예총이, 진보정권에서는 민예총이 지원을 좀 더 많이 받아오기도 했다. 또한,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의 기관장의 면면을 보면 해당 정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예총, 민예총 출신 인사들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재는 예총과 민예총, 두 단체의 통합 논의가 몇몇 정치인을 통해 제기가 되고 있을 만큼 정치적 색깔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한국예총은 숙원사업인 대한민국예술인센터를 우여곡절 끝에 이명박 정부의 대선공약으로 재추진되면서 마무리했다. 대한민국예술인센터는 서울시 양천구 목동에 위치하고 있고, 감정 평가액만 1200억 원에 달하며 20층의 고층빌딩이다. 그러나 해마다 10억 원 가까이 부채가 늘어나고 있어, 대한민국예술인센터로 인해 예총이 부도가 날 상황에 처해 있다는 일부 언론보도가 있기도 했다.
민중의 소리에 보도에 따르면 "예술인센터는 지난 2011년 11월 ‘예술인을 위한 창작공간 마련’을 목적으로 지상 20층∙지하 5층 규모로 건립됐다. 이후 예총은 2012년 10월 해당 건물 11층~19층 오피스텔 100세대에 대해 10년간 보증금 50억 원, 월 임대료 3300만 원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임대업체 CK목동과 위탁 특약을 맺었다. 하지만 계약 2년 만인 2014년 5월, CK목동 대표는 보증금 50억 중 15억을 지급하지 않은 채 입주민 보증금과 예총이 설정해준 근저당을 담보로 40억을 대출받아 해외로 도주했다." 이러한 사건 등으로 해마다 예술인센터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민예총(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은 1988년 11월 26일에 고은, 백낙청, 이건용, 임진택 등이 중심이 되어 발기인대회를 개최하였다. 같은 해 12월 서울 YWCA 강당에서 진보적 문예운동 연합체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이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민예총은 창립 당시 회원은 839명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20만 명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민예총은 1970∼1980년대 내내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문예단체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결집한 형태이다. 문학, 미술, 민족극, 사진 등을 포함한 9개 장르위원회와 20여 개의 지회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을 주축으로 미술, 음악, 춤, 민족극, 전통연희, 사진, 건축, 영화 전문예술인들이 가입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1974년 설립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이어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현재 (사)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이 변경된 문학인단체가 대표적이다. 한국작가회의는 전국 12개 지회와 13개 지부로 구분하여 활동하고 있다.
민예총은 2012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에서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이후 소속 장르를 독립시키고 지회의 독립법인화를 추진하면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모하고 있다.
1993년 비영리 사단법인화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민예총이 사단법인화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재야의 문예운동단체가 아니라, 제도권 내부의 거대 예술단체로 민예총이 스스로를 정립하고자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민예총에 주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작가회의도 이 시기에 사단법인으로 전환됐다.
민예총은 예총과 달리 창립 당시부터 예술인 개인 중심의 체계였다. 사단법인화를 전후하여 예술가 단체로서의 연합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동시에 지역민예총의 설립도 가속화되었다.
"예총"과 '민예총"은 상호협력 파트너로서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
정리해보자면, "예총"과 "민예총"은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거대한 예술단체의 연합체이다. 그런 만큼 책임과 역할이 크다. 문화예술 공급자로서 함께 협력하여 문화예술진흥에 앞장서야 한다. 대표적 비영리 예술단체로서 공공재로서의 사회적 역할에도 충실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에 관련 전담직원이 있고, 해마다 국민의 세금으로 두 단체의 운영과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반복되어 왔던 정치세력화에 따른 대립 양태를 개선하고 문화예술진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상호 협력하여야 한다.
끝으로, 대한민국에는 이번 챕터에서 언급한 "예총", "민예총"에 속해 있지 않고, 개별적으로 임의단체, 비영리 사업자 등의 형태로 예술단체를 조직하거나 개인 예술가로서 공공의 예술 현장에서 활발하게 창작 및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진보적 문예운동의 형성과 전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을 중심으로(이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