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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Nov 03. 2018

오사카, 클래식한 한 잔

도톤보리 뒷골목의 이자카야들 



우리는 일본 여행에서 바쁜 뚜벅이로서의 하루를 보내고 저녁 시간에 생맥주나 하이볼을 마실 수 있는 분위기있는 요리주점을 찾는다. 오사카의 메인 스트리트인 도톤보리에서 적당한 가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주말 여행을 떠났다면 여행객과 현지인이 엉켜서 줄을 서고, 음식을 먹기에 급급해서 분위기 잡기는 쉽지가 않다. 조금만 더 노력해서 비집고 들어가자. 나를 기다리는 이자카야는 많으니. 오사카의 골목에 숨은 이자카야를 찾았던 순간과 즐거운 기억들을 정리했다. 




빠알간 대게 모형과 노란 등불 속에서 사람들과 음식 냄새가 엉켜있는 도톤보리



조금만 노력하면 나만 누리는 것 같은 요리주점들이 숨어있다 





우리가 기대하는 이자카야의 낭만, 호젠지요코초


도톤보리의 뒤편에는 '호젠지요코초'라고 하는 골목길이 자리한다. 호젠지라는 절 옆에 조성된 골목길인데, 우리가 일본드라마의 어느 면면들에서 품게 된 이자카야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골목에 대한 탐색을 서슴지않게 된 요즘에는 꽤 유명해져서 한적한 분위기까지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요리주점의 모습.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인이세요?


이런 골목에서 부대끼며 술 한 잔 마시다 보면,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처음으로 오사카를 찾았을때, 호젠지요코초의 어느 요리주점에서 혼자+혼자=혼자들로 가득찬 신기한 오코노미야키집을 발견하고 행복감을 들이마시고 입장했다. 옆 자리에서 보리소주를 홀짝이던 여행자와 자연스럽게 통성명하게 되고, 사이좋게 요리와 술을 나눠마셨다. 허기를 달래러 온 현지인들 사이에서 큰 목소리로 여행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약간 허전하고 심심하던 차, 재밌는 저녁을 보냈다.


늘어선 사케들과 자비없는 메뉴판이 나를 더 행복하게 했달까. 
큼지막하게 얼린 얼음을 투박하게 넣어주는, 단 맛이 전혀 없는 하이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 잔. 





튀기고 굽는 맛, 야키도리의 매력


이자카야에서 선택할 수 있는 메뉴는 다양하다. 이미 한국에서도 일본식 주점을 표방하는 가게들이 많아져서 기본 지식도 풍부해졌다. 그래도, 오사카의 골목에서는 야키니쿠-야키도리를 화로에 올려서 먹기를 추천한다. 일행 별로 제공되는 열감이 일렁거리는 화로와, 고기&내장 꼬치들을 올리고 기다리는 재미가 상당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일본 주류와 잘 어울리는 식감과 맛이다. 개인적으로는 야키도리의 식감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부위와 가격으로 즐길 수 있으니 여행자로서의 매력도가 높은 메뉴다.


열감이 가득한 화로에서 고기와 내장을 가득 구우며 밤을 보낼 수 있다.
탁한 양복을 차려입은 직장인, 색깔로 멋을 낸 여행객들의 목적은 단 하나. 취하는 것.


마음 놓고 마시는 날이네

이자카야에 나란히 앉은 동행과 가게 자체의 분위기를 동시에 마음에 들어하며, 행복감을 분출했다. 그 날 저녁 우리는, 일정도 24시간의 몇 배수는 더 남은 한량같은(?) 여행자였다. 오늘 무엇을 먹고, 얼마나 먹어도 그 부기를 감당할 수 있는 준비된 취객이었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떠났던 여행이지만, 이런 순간으로 상쇄하고 털어내라고 내가 나를 여기 보냈군! 먹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것을 앞에 두고선 사는 일을 미주알고주알 뱉으니 별 게 아니었다. 어느새, 별 문제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두꺼운 빙하처럼 차가운 컵에 또 얼음을 넣고, 차가운 술을 부어준다.





그래도 여전히, 최종 보스는 콤비니

*(コンビニ, 편의점)


힘을 잔뜩 준 저녁을 먹고, 맛있는 주종들도 섭렵했지만 편의점털이가 없다면 허전하다. 소주, 와인, 칵테일, 맥주, 하이볼, 위스키, 그 외 타국의 술들을 쁘띠사이즈로 부담없이 구매할 수 있는 파라다이스. 야채, 과일, 빵, 과자, 고기, 생선, 밥, 국수 등 안주의 종류는 셀 수 없고 국물과 튀김 같은 형태도 모두 구할 수 있다.


내가 항상 선택하는 조합은, 먹어보지 못한 맛의 컵라면/먹어보지 못한 캔맥주 2캔/하이볼/치즈&살라미 세트. 이 클래식은 여행 수년차인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의식과도 같이 마지막 날의 메뉴로 정례화되었다. 일본 예능을 쭉 틀어놓고 짐과 사진을 정리하면서 도시뷰를 관찰한다. 이 맛(아마도 하이볼을 마시고 있을 때쯤)에 오는 구나. 


마지막 날에는 숙소에서 편의점 돼지파티를 벌이는게 제 맛




주점의 마스터와 마주보고 꼬치를 뜯는 일, 우연히 대화가 시작된 동행과 여행담을 뽐내는 일, 먹고 싶은 만큼 먹으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일, 알록달록한 간판과 메뉴를 내 취향대로 골라서 저녁을 꾸미는 일. 하루 종일 걸어다닌 여행을 몇 배는 더 기분 좋게 뻥튀기해주었다. 이러니 빼놓을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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