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미슐랭 식당 아오조라 블루(Aozora Blue)
오사카 여행중이던 어느 저녁, 우메다역에서 일정을 마치고 난바역까지 훑고 저녁을 먹을 요량이었다. (약 5km) 그러나 해가 뉘엿거린지는 이미 한참, 허기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우메다역에서 한참 내려왔지만, 아직 난바까지는 멀었다. 결국 걷는 도중 대답을 마련해야 했다. 그 질문은 바로, 매일매일 중요했던 문장 : 오늘 저녁은 무엇이 될 것인가?
일단 계속 걸었다. 일정의 후반부로 들어섰기 때문에, 좀 대단한 것을 먹고 싶기도 했던 것이다. 선택의 범위를 헤아려 보지만, 마땅히 고를수가 없던 찰나, 차가워진 입김에서 생각이 하나 피어올랐다. 오늘은, 우동. 우동이다.
우동 생각이 간절해지니, 별다른 정보 수집 의욕이 발휘되지 않았다. 나의 액션은 단 하나. 구글 맵을 켜고 "우동"을 포함한 그 어디든 가기로했다. 작은 소망은 그저 <우동전문점>이기만 하면 되었다. 돈부리, 타코야끼, 우동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곳만 아니라면 되었던 것. 괜찮은 우동 국물을 마시고 싶었기에. 그런데 요도강을 따라 대로를 쭉 일직선으로 걷는 가운데, 그 흔한 우동전문점이 없었다. 언제까지 걸어야 우동을 먹을 수 있는 걸까?
히고바시역에서 혼마치역으로 내려가고 있을 때쯤, 한 식당이 맵의 레이더에 걸려들었다. 2017 미슐랭스타를 받았다는 이 곳. 그 이름은 <아오조라 블루(Aozora Blue)>. 우동집 이름 같지 않았다. 발견한 즉시, 주저없이 골목을 비집고 추적추적 걸어갔다. 생각보다 더 허름한 골목이어서, 기대감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저 따뜻했으면, '알고 있는 그 맛'이기만 하다면 족했다.
꽤 한참 골목을 걸어서, 끝에 다다르니 옆면에 붙은 엔티크한 느낌의 간판이 보였다. 마주친 즉시 너무나 반가웠지만, 꽤나 조용해서 이 곳이 식당이 맞나 한참을 머뭇거렸다. 당시 나는 굉장히 배고픈 여행자였지만 주변에 딱 하나 들어선 조용한 이 가게 앞에서 들어서기가 어찌나 망설여졌는지 모르겠다. 도톤보리처럼 마중을 나와 메뉴를 확인해주거나 호객을 하는 직원이 없는 모습이 낯설었나 보다. 결국 용기를 내어 문을 스르륵 밀치고 들어선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여행 중 돌발적으로 도전했던 식당 중 가장 성공한 경험이다. 문을 열어보니, 파란눈의 여행자들이 가득했고, 로컬들도 많았지만 조용히 국물을 마시는 분위기가 신기했다. 커다란 나무 국자가 테이블마다 비치된 모습, 국물에 힘 좀 주신다는 말씀인가. 다시금 설레버리는 마음. 그 분위기 속에서 메뉴를 고르면서 생각했다.
"맛 없기 힘든 곳이겠군"
그리고 나왔다. 나의저녁!
돌발적으로 택한 우동인데, 이렇게 만족스럽게 되어버렸다. 엔젤링이 흠씬 묻어나는 생맥주도 추가했다. 큼지막한 면기에 면과 국물만으로 힘을 준 우동. 그리고 미니당근과 풀을 튀긴 것이 함께 나왔다. 먼저 나무 국자로 국물을 한 모금 뜬다. 춥춥한 온몸이 단숨에 녹았다. 그리고 두꺼운 면발의 무게감. 감탄을 연발, 여기는 필시 나의 운명과도 같은 곳이다.
우동이 주인공이었지만, 함께 나온 야채튀김의 질감이 상당했다. 빠그작하고 부러지는 질감이 아니라, 퍼서석-퍼서석-하고, 한 입을 물 때마다 느껴지는 튀김의 의미가 느껴진달까. 정말로,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우메다, 난바, 신사이바시가 아니고 혼마치역에서 맛보게 된 오사카의 주인공.
예상하지 못했던, 계획하지 않았던 것이 잘 풀리면 '운명'이나 '운발'을 가끔 믿게되기도 한다. 겨울의 오사카에서 만난 <아오조라 블루>가 그랬다. 빠듯한 일정에서, 꽤나 동선이나 식당을 따지면서 다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의 유일하게 즉석에서 고른 이 곳이 이렇게나 축복같았다.
갑자기 분위기가 우동으로 굳어진 내 기분과, 혼마치 역에서 빠릿하게 작동한 구글맵과, 복잡한 동선을 뚫고 뚫어 그 곳에 가려고 했던 내 의지까지. 이 곳에 들어서기 위해 정말 주변의 공기와 기운이 도와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