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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Jan 13. 2019

후쿠오카, 걷다보니 커피가 늘었어

코히샤노다 다이묘 본점




도보량과 커피섭취량은 정비례 관계


봄날의 거리를 배경으로 하다보면, 능력치 이상으로 걸어나간다. 연약한 단화 한 켤레가 그렇게 대참사를 당하게 되는 것이랄까. 후쿠오카에서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한 기억이 거의 없다. 볕이 좋고, 온도가 좋아서 정말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럭키한 날씨에 방문한 도시들은 골목 하나하나 잘 헤아려줘야 겠다는 마음가짐. 다만, 고작 단화 하나가 밑천이라서 기력을 보충할 휴식처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그 spot이 주옥 같은 커피점들 이었다. 


유명하다는 커피점과 더불어, 그냥 걷다가 멈춰서버린 주변의 '그 어떤' 커피점에 들르게 된다. 잠시 멈춰서 한 잔 후르릅-하며 짬짬이 메모도 적게 된다. 걷고, 마시고, 적으면서 여정을 채우는게 참 '열심히 사는 여행자' 같다는 생각을 해서 스스로 기특해한다. 그래서 하나의 이론을 도출했다. 여행자는 걷는 만큼 커피를 많이 마신다. 도보량과 커피섭취량은 정말이지 정비례의 관계에 놓여있었다. 그래서, 걷다보니 커피가 늘었어.



이런 장면을 못잃고 발바닥이 타도록 걸었다





만화가게 옆 "커피시그널"


이 날도 아카사카 근처의 만다라케(애니메이션, 피규어를 판매하는 유명한 중고서점) 구경하고자 넓은 반경으로 걷던 중, "커피시그널"을 수신했다. 다리가 조금 부은 느낌마저 들었기 때문에 빨리 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1966년에 문을 연, 킷사텐(찻집, 다방류)의 느낌을 간직한 커피점이다. 우연의 힘으로 마주쳤지만, 기대감이 올라왔다. 그리고, 문을 열어보니 커피연구소와 같은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사이폰 커피 추출, 워터드립 추출 등 도구로 무장하고 커피 내려주시는 커피랩(lab) 비주얼
크고 작은 도구와 스윗-츠(sweets) 전시관을 구경하다가 자리에 철푸덕 앉았다. 



일본의 전통적인 커피점에서는 항상 차가운 물 한 컵, 고유하게 블렌딩한 뜨거운 커피 한 잔, 설탕, 추가한 스윗츠로 한 상 차림을 해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차림을 참 사랑하는 편이다. 커피 한 모금으로 덥히다가도 물 한잔 끼얹으며 오래오래 커피를 마시라는 배려같아서 그렇다. 


코히샤노다에서는 특이하게도, 차가운 생크림을 한 컵 더 제공했다. 찬 온도를 잃지말라고 얼음을 아래에 깔아둔 형태였다. 그냥 퍼먹어도 무방했고, 정식으로는 커피에 듬뿍 넣어서 즐기라는 옵션이다. 요런걸 또 안해볼 수 없어서, 푸-욱 퍼넣어서 마셨었다. 함께 주문한 케이크는 생각보다 비주얼이 앙증맞아서 기분이 좋았다. 코히샤노다에서 운영하는 디저트 브랜드 'Regent'의 라벨을 붙이고 등장한 과일 케이크. 몇 개의 과일조각이 들어간건지, 이게 망고인지 오렌지인지 씹고 맞추는 히든잼(Hidden jam)이 있었다.



이런 커피의 기본 세팅을 지켜주는곳, 깜찍한 케이크도 기력충전에 크게 한 몫 했다.





그리고, 봄날의 정주행은 계속된다


따뜻하고 아늑한 이 곳도 좋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최종 목적지를 찍고 출발하지 않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여정이다. 어디서 멈추게 될지, 또 어떤 커피를 마시게 될지 기대감으로 무장했던 후쿠오카의 봄날. 이후에도 수 잔의 커피와 (가끔은 차를 마시기도 했고) 골목을 종일 밟았고, 해 질 무렵 하이볼을 마시러 퇴장했다.


비단 후쿠오카에서의 정주행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부담이 덜한 일본 도시의 여행에서 하루는 꼭 통째로 비우고, 무작정 걷는 날로 꼽는다. 골목대장처럼 뚜벅거리다 보면 자유로움에 취해서 점점 여행에 푹 빠져버리게 되어버리니까. 걷고, 마시고, 적다가 시간가는 줄 모르는 순간의 연속이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커피를 마셨나 보다. 



햇살은 쏟아지고, 꽃잎도 흩날린다. 못잃을 장면들을 사진첩에나마 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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