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빌리지 하마야 소바
당신이 기억하는 일본의 전형성은 무엇인가? 아마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몇가지 키워드가 있을 것이다. 지금 막 생각해보면 아기자기, 정갈함, 궁극의 귀여움 등이 생각난다. 실제로 그 일관된 전형성이 일본의 도시를 찾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오키나와에서는 조금 다를걸.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의 일관성이 어긋나는 재미(?)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간직한 전형성이 무너지는 강력한 지역색채가 곳곳에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제주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 전형성의 파괴를 처음 목격한 것이 다름 아닌 '소바'이다. 한평생 얼마나 많은 소바를 먹어왔던가. 그치만 이곳에서 맛본 소바는 내가 알던 것과 아예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아메리칸 빌리지 메인 로드에서 미야기 해변가를 따라 바깥쪽으로 걸어나가던 중, <하마야소바>를 만났다. 사실 식사시간은 아니었지만, 활기찬 여행객들이 몇 팀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니 맛보지 아니할 수 없었다. 약간은 부푼 배(?)를 쥐고서 입장하게 되었다. 배가 부른 오후의 '소바'라니, 냉소바 & 온소바의 구분 정도만 인지하고 있었던 터라, '아는 그 맛'을 맛볼 요량이었다. 얼마나 맛있으려나.
먼 대륙에서 방문한 가족여행객, 동네 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려져 소바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하얗게 비치는 국수 가락은 무엇? 내가 알던 갈색의 탱글거리는 면발은 간 곳이 없었다. 꼬불꼬불한 밀가루 국수와 고기국물이 어우러진 그릇. 마치 칼국수와 같은 형상이었다. 이는 오키나와의 역사상 미군의 영향으로, 소바의 면이 메밀에서 밀가루가 우세해졌다고 전해진다.
부산에서 밀면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냉면도 아닌것이, 그렇다고 칼국수는 더더욱 아닌것이, 쫄면같기도 했던 것. 우리가 기대하는 일본의 소바가 아닌데, 이것도 엄연히 소바다. 이렇듯 <오키나와 소바>라는 카테고리는 별개로 존재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개념을 파괴당한 여행자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뉴를 기다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함께 주문한 영양밥 '쥬시'와 함께 하마야의 오키나와식 소바가 등장했다. 이미 예고편을 봤지만, 실제 본편으로 눈앞에 두니 참으로 신기했다. 처음에는 곤드레밥에 고기국물을 받아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게 소바라니, 소바라니.
한 젓가락 떠서 입 안 가득 우물거려 보니, 밀가루의 향이 꽤 강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먹는 칼국수보다 좀 더 겉도는 느낌의 밀향이 났다. 그래서 건강하다는 느낌은 사실 조금 덜했다. 하지만, 국물은 일품이었다. 두껍게 썰어넣은 달걀지단과 고깃덩이를 함께 먹으니 매우 속이 든든했다. 성인 여성치고는 꽤나 대식가여서 호기롭게 영양밥도 주문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쉽지만 밥은 몇 숟가락 뜨다가 남겼다. 그러나 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안 먹기는 아쉽다보니, 호기심 삼아 한번 맛보는 정도로 해두자. 맛보지 못한 것들로 한 끼를 채우며 '오키나와식'의 재미를 알게 된 순간.
이 발견 이후로, 여정 중에 '오키나와st'를 의식적으로 찾게 되었던 것 같다. 타 도시에는 없는, 오키나와에서만 가능한 것을 찾아서. 그리고, 외부에서 수집한, 혹은 직접 일본에서 경험한 일본의 이미지들에는 포착되지 않은 '외계의 매력'이 있는 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분명 내 일상에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만나는 경험에 목말라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이 파괴적인 도시에서 꼭 한 번 소바를 먹어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