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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Feb 02. 2019

오사카, 내 손에 캔디

사탕가게 아메노토요시타



'나만 아는 작고 귀여운 것'을 찾아 도시를 헤매는 것. 일본 여행에서는 가끔 기대하게 되는 경험이다. 크고 작은 무수한 도시를 다니면서 조금은 전형성을 이탈한, 특별한 오미야게(おみやげ, 여행기념품)을 사들고 싶어졌다. 도톤보리 한 가운데의 어느 대형 상점가에서 마그넷, 과자세트, 머그컵 같은 것들을 집어드는 편이 편리했지만, 재미가 없다. 그 여정의 시작은, <야채사탕가게>를 어느 여행책자에서 발견해낸 순간부터였다. 야채의 모양을 하고, 오도독 깨물면 야채의 맛이 난다는 사탕. 이건, 사야해. 먹어봐야해. 





야채사탕을 찾아 전차에 몸을 싣고 


JR 한와선 비쇼엔역에서 가깝다는 사탕가게 <아메노토요시타>. 떠들썩한 중심가를 벗어나 조금 달리니, 눈에 띄게 한산해진다. 이미 여행을 시작했지만,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비쇼엔역에 도착하고 보니, 초겨울의 메마른 바람소리만 있었다. 참으로 조용한 이 동네. 이 곳 어딘가에서 야채사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비쇼엔역에 도착했다. 남겨진 낙엽이 나부꼈던 초겨울의 한적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비쇼엔역 인근은 참으로 고요한 동네였다. 평화롭고, 약간은 외롭던 곳.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얼마나 걸었을까. 10여분을 걸으니 나타난 사탕공장의 모습.



얼마 지나지않아 사탕가게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생각했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소형 매장의 모습이 아닌, 공장에 붙은 간이 판매처의 형태라 처음에는 무척이나 헤매며 빙글뱅글 돌았다. 나 외의 방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의심을 품고 걷고 걸었다. 하지만, 약간의 구글링을 추가하니 확신이 생겨 문을 두드렸다.


작은 문을 두드리니 기척이 없고, 문을 돌리니 열린다. 무.. 엇인가 싶어서 일단 들어간다. 내가 눈에+마음에 찍고 온 야채 사탕의 사진이 벽에 부착되어 있다. 번지수는 잘 찾았군. 사탕들이 바구니에 정리된 상태였지만, 당장 몇 개 정도 주머니에 넣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맞아주는 이가 없는 썰렁한 사탕가게의 모습 앞에서 잠깐 침묵을 즐겼다. 



이 비주얼에 마음을 뺏겼다. 오이, 가지, 무, 당근, 호박의 모양을 한 사탕 꾸러미




이 신박한 사탕 제품에 대해 아메노토요시타의 대표가 인터뷰한 보도자료



똑똑 두드렸던가, 벨을 눌렀던가. 몇 분이 지나니 할머니가 내려오셨다. 처피뱅에 볼터치, 빨간 코트를 입은 내 모습에 타도시에서 온 일본인인줄 아셨는지, 몇 마디 편하게 말을 거셨다. 당황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나: "(짧은 일본어) 죄송합니다. 전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해요."

할머니: "아..! 그렇군요. (어색한 영어) 무얼 드리면 될까요?"

나: (사진을 가리키며) "야채 사탕세트 두 봉지 주세요"

할머니: "네, 그럴게요. 근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작은 출력물을 보이며, 이곳에 오게 된 발견의 시초를 공유해드렸다. 그랬더니, 영광스러우면서도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서둘러 사탕을 꾸리셨다. 공장의 작업장에 다시 들어가셔서 각 야채별(?)로 골라내어 그 자리에서 포장을 하셨다. 한 15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1080엔으로 살 수 있는 동심같은 것


받아들고보니, 기대하던 그대로의 모습. 오이사탕을 하나 꺼내 먹었는데, 오이.. 맛이 난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아쉽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신기함에 사로 잡혀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다. 굽이굽이 차를 타고 와서, 사탕 세트를 봉지에 싸들고 맛보는 것이 하루의 행복이 된 일정. 더 없이 만족스러운걸? 큰 그림이나 별 목적성 없이, 내가 재밌고 신기한 것을 찾아 쫓아온 결과가 내 손에 있다니요. 어린애가 된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야채사탕세트는 1080엔. 사실 분명 어린이용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아니었으리라. 나 같이 타국의 여행자가 특별한 오미야게를 찾아오거나, 동심을 찾는 누군가가 찾아올 법한 선물이리라. 하지만, 기념품만을 목적으로 오기에는 거리와 시간이 꽤 소요되는 터, 동심을 갈구하는 나같은 사람 또 없습니다?



야채사탕세트는 1080엔. 어린이가 사먹기엔 확실히 좋은 가격은 아니다
너무 조용해서 사탕 몇 봉지에 아련해져버리네



할머니는 과일 사탕 몇개를 더 넣어서 나에게 즐거운 여행을 빌어주셨다. 

와- 이런 모양의, 이런 맛의 사탕꾸러미라니. 에피소드를 풀어놓으면서 이런 재미에 대한 온전한 공감을 얻지 못해서 조금 서운했던 순간도 있었다. 대략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목소리로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다녀오면 시간 애매했겠다"

"신사이바시 쪽이 살만한 게 더 많을텐데"

"그래봤자 사탕이 얼마나 맛있겠어"


그치만, 그냥 내가 재밌고 뿌듯했다니까. 길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이걸 위해서 여정의 하루 정도는 충분히 쓸 만해. 튀는 것 없이 소박하고, 조용한 사탕가게였지만 너무나 만족스러운 선물을 손에 넣었으니 내겐 너무 기쁜 날. 그리고, 누군가도 꼭 재밌는 여정으로 삼을 만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몇 개 더 쥐어주신 과일사탕을 입에 물고 다시 역으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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