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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Feb 04. 2019

가고시마, 하이볼이 빛나는 밤에

덴몬칸 하이볼바 1923




"하이볼 한 잔만 하고 가자"



취하고 싶진 않으나, 청량한 음료로 하루간 쌓인 피로감을 쭉 밀어주고 싶은 날이 있다. 누구나 즐겨 찾는 <한 잔의 보약>은 있을 터. 나의 경우엔 하이볼이다. 무겁게 마시지 않는 날엔 "하이볼 한 잔만 먹고가자"라며 친구를 꼬드기기 일쑤. 


선호하는 형상은 길쭉한 글라스에 무심하게 부순 얼음을 넣고, 찰랑찰랑 하게 부어준 하이볼. 디테일하게 들어가자면, 단 맛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산토리 위스키에 기포가 아주 센 탄산수를 부어주는 기본형이 좋다. 


가고시마의 밤거리에서 그런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공간을 발견한다. 다양한 주점을 봐왔지만, 하이볼만을 위한, <하이볼바>의 등장.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를 구비하고, 컨셉을 부여해서, 한 두가지로만 접했던 하이볼을 더 다양하고 재미있게 먹을 수 있는 곳. 



해가 질 무렵, 가고시마의 중심가인 덴몬칸 거리를 배회하던 영혼




하나의 목적성, 압도적 몰입도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일본에서도 하이볼은 주로 젊은 여성들이 캐주얼하게, 혹은 간단히 분위기를 내고 싶을때 즐겨찾는 생활형 주종이다. 그 어떤 안주와도 세련되게 어울리며, 맛과 향의 농도가 담백하여 부담없이 찾게 된다. 일본 여행에서 하이볼을 즐길 때 기분 좋은 이유는, 한국보다 월등히 저렴한 가격이 한 몫을 한다. 게다가, 번화가의 이자카야가 아니라면 메뉴 자체를 찾기도 어렵다. 심지어 일본의 편의점에서는 쉽게 다양한 버전의 하이볼 캔을 구입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그마저도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인지라 참으로 애통한 심정. 드물게 발견해도 8,9천원을 훌쩍 넘어서는 가격에, 생맥주로 노선을 변경하고 말던 나의 모습. 이 곳에서는 달라. 



이름하야 <하이볼바 1923> 덴몬칸에서 처음 만났지만, 주요 도시에 드문드문 들어선 프랜차이즈라고 한다. 



<하이볼>이라는 목적성을 찾아 온 손님들과 이에 맞춰 정교하게 설계된 다양한 하이볼 메뉴들. 따라서 고객들의 특성과 지향하는 술자리의 바이브가 상당히 유사하게 그룹핑이 된다. 적당히 활기차지만, 왁자지껄 하지 않고, 음식 냄새도 별로 나지 않는 바의 분위기. 바텐더와 하이볼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이볼을 위한 공간와 재료의 구성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그렇게 빠져든다. 



이 메뉴를 보고 현실 음성으로 탄성을 뱉었다. 이거 다 주세요..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일단 바석에 적절하게 자리를 잡고 나면, 일행의 규모가 혼자이든 여러명이든 중요하지 않은 순간들이 찾아왔다. 바텐더와의 원활한 대화가 가능했음은 물론, 옆자리의 사람과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된다. 자신의 안주를 권하기도 하고, 메뉴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하이볼과 곁들인 훌륭한 안주들도 잘 구비되어 있으니, 무엇을 선택하든 만족스러운 세트메뉴가 된다.


'바에서의 첫만남'이 부담을 덜어주는 까닭은, 아무래도 시선의 처리가 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허공을 보듯 바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내뱉어도 되며, 자연스레 번갈아 시선을 처리하며 천천히 상대에게 적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함께 마시고 있는, 맛있는 하이볼 한 잔만으로도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그렇게 서로의 눈동자에 건배하는 저녁. 



바석에 앉아, 싱싱한 탄산수를 뽑고 위스키를 따라내는 손길을 관찰한다. 
시그니처인 "덴몬칸 하이보루"에 가츠산도를 추가. 만족스러운 밤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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