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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Feb 16. 2019

오키나와, 한 여름 '밥'의 꿈

국제거리 가정식집 유우난기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서 내려 일분 일초가 아까워서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빠르게 짐을 풀었지만, 날은 어느새 저물어 어둑어둑한 여름밤이 되어있었다.


때를 놓친 저녁, 허기가 물밀듯 밀려온다. 퇴근 직후 비행기로 아슬하게 도착했기에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탓도 컸다. 도시에 들를 때마다 로컬들의 음식인 <가정식>을 빼놓은 적은 없었다. 오키나와의 첫 끼는 가정식으로 정했다. 거기에 시원한 맥주 한 잔도 간절하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열대 우림에 온듯한 가로수의 비주얼과 네온사인이 활발히 빤짝이는 국제거리의 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늦었다


국제거리 초입에 들어선 시간은 밤 9시 30분이 다된 시간. 저녁을 먹기엔 꽤 늦었지만, 오키나와의 가정식 원픽식당으로 꼽아온 <유우난기> 는 친절하게도 밤 10시 30분까지 밥을 먹여준다고 했다. 콧잔등에 맺힌 땀을 닦고 식당이 있는 골목에 들어선 순간, 쿵-하고 심장이 떨어졌다. 가게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던 것.


식당에 고개를 들이밀고 "히또리(혼자)"를 외쳤지만, 어깨를 으쓱하는 카운터의 아주머니. 그 의미인즉슨 "아마 안될거야" 였으리라. 허기에 지쳐 벙찐 채로 뒷걸음을 치다가 일단 행렬의 맨 끝에 서봤다.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늦어있었군.



거리 초입에서 왼쪽 골목에 자리한 유우난기. 늦은 저녁에도 웨이팅이 계속되고 있었다.



꽤 습하고 더운 여름밤이었던가. 단체로 온 여행객들이 한 팀, 두 팀 연이어 대기줄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긴 줄 이었지만, 마감까지 30분이 남아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으로 고개를 쑥 내미는 유우난기의 아르바이트생. 내 눈을 바라보면 이야기 한다.


"혼자, 들어오세요"


그가 가리키는 바 석에 보기좋게 비워진 단 하나의 자리. 삼삼오오 모여 지친 기색이 역력한 여행자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혼자라서 다행이었던 밤.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밥을 기다린다. 밥 짓는 모습을 살피는 남자의 눈길이 엿보인다.





씹을 거리 가득한 섬의 밥상


오키나와의 맥주, 오리온 한 병을 먼저 주문한다. 밖에서 한껏 오른 열을 신속히 가라 앉히기 위함이다. 하마터면 포기해버리고!재미없어 질 뻔 했던(?) 첫 날의 저녁식사. 남김없이 먹어치울 자신이 있었다. 메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A세트로 주문한다. 기본형이지만, 양이 상당하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미니 맥주잔. 한 병을 수 번 따라서 마시게되는 재미가 있다


무려 9개의 찬과 함께 차려지는 가정식 A세트



일본의 가정식은 보통 차림새가 정갈하고 아기자기하여,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오키나와에서도 그것을 기대했지만, 조금 더 호기심이 어리게 된 것은 밥상을 구성하는 재료의 특수함이다. 섬이라는 개성에서 기인하는 다채로운 식재료들과, 독특한 레서피의 반찬을 맛볼 수 있다고 하여 꽤나 설렜다. 그 개성이라는 것은 아래의 메뉴들로 나타났다. 재료 자체를 처음으로 맛보는 재미와, 식감의 낯섦이 짜릿했다. 그리고 하나같이 건강하다.


- 우미부도(바다포도) 무침

- 생선을 얹은 두부 조림

- 고야(여주)를 이용한 볶음요리



짠. 눈이 황송할 만큼 멋진 비주얼이었지만, 맛도 실망시키지 않은 한 상 차림



9가지의 반찬, 밥, 국과 맥주를 연거푸 먹기 바빠 요란했던 식사였다. 이 한 상을 두 명이서 먹기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혼자 먹기에 딱 좋았다. 함께 주문한 맥주 한 병까지 홀로 클리어해내며, 군더더기 없이(?) 허기를 물리친 저녁이다. "더 이상은 먹을 수 없다.."를 선언하며 골목식당에서 퇴장하였다. 원기를 충전하여 길고 긴 국제거리 양끄트머리를 두 번 정도 더 왕복하며 소화했다는 후문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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