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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Jan 27. 2019

도쿄, 도심 속 말차 클래식

지유가오카 고소안 & 영화 일일시호일



자유의 언덕이라는 뜻을 지닌 지유가오카는, 주로 아기자기한 상점과 디저트 카페로 유명한 곳이다. 생크림과 과일로 한껏 멋을 낸 <여자들의 필수코스>로 일컬어진다. 기념으로 한가득 쟁이기에 적합한 귀여운 아이템이 많아서 실제로 도쿄 주요 번화가보다 구경하는 재미가 크다. 이렇게 새 것들로 반짝이는 곳에서 '뜻밖의 '클래식'을 발견할 수 있어서 재밌던 순간을 기록했다.



조금 흐린 날씨에 찾았던 지유가오카 역전 상점가




삼고초려도 아깝지 않은 "말차 클래식"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다보니, 초록이 가득한 정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원에 조금 더 발을 딛어보니 이런 찻집이 있었다. 라는 운명과도 같은 만남! 은 아니다. 도쿄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지인의 추천으로 찾게된 <고소안>.붐비는 메인 상점가를 벗어나서 지유가오카 공원쪽으로 걷다보면 마주치게 된다. 다만, 겉으로는 '외부인도 과연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의심마저 드는 한적한 분위기 탓에 '알고 오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도쿄를 방문할 때마다 찾는 곳인데, 창가에서 정원을 보며 고고하게 마시고 싶은 로망을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구석에서 나무 모서리만 응시하다가 나가는 것이 너무 아쉬웠던 터라, 세 번째 방문만에 창가에 앉을 수 있었다.



살짝 비에 젖은 안뜰. 말차를 홀짝이는 사람들과 풀그린(Full Green)의 배경
종이와 나무, 우리에게도 익숙한 클래식이지만, 도심에서 즐겨찾기는 어려운 모습



<고소안>의 주메뉴는 말차이다. 클래식한 정경과 메뉴. 간단한 식사류나 달큰한 아이스크림을 혼합한 메뉴도 있지만, 항상 Matcha Ole 라고 일컫는 담백한 말차라떼를 주문하게 된다. 걸쭉한 말차의 맛에 단맛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깔끔한 쓴 맛으로 홀짝이다 보면, 신선놀음을 하는 듯한 기분.


게다가 여행자보다는 로컬들 위주의 방문이 많아서, 또 그 분위기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서, 공간의 소음도 굉장히 적은편. 일본어로 속닥거리는 말소리와 유리와 나무식기들이 팅팅탱탱 조심스레 내는 마찰음이 흡사 ASMR같은 효과를 자아낸다. 평화로운 탁자, 그리고 그 곁에 흐드러지는 초록 정원.



말차, 물 한 잔, 전통스윗츠, 나무나무한 모습에 미소가 번진다.





말차의 정취를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차를 머금는 일과 그 공간에서 클래식의 정취가 참 좋았던 사람이라면, 또 하나의 컨텐츠가 그 경험의 감각을 넓혀줄 수 있다. 일본의 배우 키키 키린의 유작으로 유명한 <일일시호일>이 그 촉매제다. 이는 스무살 무렵에 다도를 배워가던 소녀가 서른 무렵을 넘고, 마흔이 되어가는 생활을 그려낸 영화다. 일본 영화 특유의 호흡을 가진 영화라 다소 서행한다는 느낌이 있지만, 고소안의 정취와 말차 클래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꼭 소화하기를 추천한다.


<다도>라는 영역을 심도있게 다루었다기 보다는, '차 한잔을 마시는 일'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다양한 생의 감각을 상기하는 인간 생활을 관찰한 영화이다. 영화의 제목인 <일일시호일>은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라는 소소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천천히 다도 수업을 받고, 마음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주인공 쿠로키 하루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한 템포를 쉰다는 느낌을 누릴 수 있다.



 나의 일본영화 컬렉션에서 자주 보았던 키키키린. 그녀의 마지막 연기.



차와 함께마시는 다양한 다과. 왼쪽은 새싹이 움트는 모습을 표현했다. 너무나 귀염뽀짝하다.
생활의 감각을 온몸으로 느껴보자. 오늘같은 날은 하루 뿐이기에 매일은 좋은 날이다.



이렇게 나무 집에서 말차 한 잔을 마시는 것과, 그 행위의 의미를 관찰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으로 가끔 굉장히 Refreshing 되는 효과를 얻는다. <고소안>과 <일일시호일>은 생의 감각을 다시 점검하고, 조금 쉬고 싶은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들이랄까. 블링블링한 새 것들로 무장한 도쿄의 번화가에서 약간 물러나서 한번쯤은 이 푸르고 고요한 정원에 체크인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누군가는 고루하고 촌스럽다고 할 지라도.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



나무를 중심에 두고 자연스럽게 부피를 키워가는 식물들의 조화가 참 좋다. 다음 체크인도 이미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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