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힙스터 본진 속으로

레이캬비크 켁스호스텔(Kex Hostel)

by 베링




어서 와, 과자 공장은 처음이지?


척박하고 쓸쓸한 레이캬비크를 상상했다면 대단히 큰 착각이다. 그 어느 것 하나 비범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옛 과자공장, 그리고 지금의 켁스호스텔. 덜덜덜 캐리어를 끌고 세 바퀴쯤 돌았음에도 발견할 수 없었던 이 곳. 힙스터가 되는 길에서의 진입 장벽이었던 걸까. 구글 맵을 켜고 천천히 방향을 잡다가 내 눈 앞에 이제서야 포착되는 입구. 사실, 켁스의 첫 인상은 꽤나 불친절한 편이었다.


벽지의 무늬처럼 지나치기 쉬운 입구, 반가워 켁스.



게스트도 청자들도 궁금했던 어느 밤의 기록.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한 층 정도를 바짝 힘주고 캐리어를 올려다 놓아야 한다. 오르는 길목에는 호스텔 크루가 호스트로 참여하는 <Japanese City Pop Night> 포스터가 나부끼고 있었다. 많은 이들을 모을 준비가 되어 있는 곳. 여기, 본진이구나.


바로 모습을 드러낸 로비. 애매한 오후시간이라 스태프들만 남아 개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중앙에는 십수각형쯤 되어보이는 바(bar)석과 공을 들인 모습의 조명들이 천장을 수놓았다. 학교에서 쓸 법한 딱딱한 목제 & 철제 의자들이 불규칙하게 놓였다. 캐주얼한 분위기에 긴장감은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조용한 오후의 레이캬비크




본진 내 벙커 어디쯤, 내 침대는 어디인가


체크인을 하고 층계를 두 개 더 오르면, 본진 내의 벙커와 같은 긴 복도가 등장한다. 이 복도의 어느 방, 어느 침대를 찾아서 터벅터벅 걸었다. 각 룸의 옆에 재밌는 픽토그램으로 그려둔 사인들이 눈에 띄었다. 게임 점수판 같기도 하고, 코인 노래방(...) 같기도 한 개성의 복도 한 복판을 가로지르며 하나하나 구경했다.


주방, 샤워실, 플레이룸. 가죽과 네온사인의 부조화가 대단히 일관적으로 각 층의 시설과 복도 전반을 꾸미고 있었다. 쓸데없이 고퀄이랄까. 어느새 이 바이브에 적응하고 있다. 그나저나 층계 전체를 구경하다보니 내 침대를 찾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걸려버렸다.


모든 방 옆에 꾸며진 전광판같은 형상. 개성이 다양했다.





읽고, 마시고, 듣는 저녁들


백야 현상까지는 아니었지만, 레이캬비크의 여름밤은 아주 길었다. 11시가 다 되어서야 해가 지는 탓에, 초저녁의 무드를 오랫동안 누리는 경험을 했다. 칠흑같은 어둠이 오기전, 가장 후리(...)해지는 시간이 아니던가. 아직 피로는 우리를 덮치지 않은, 이 밝은 밤을 어떻게 즐길지 열심히 궁리해야 한다. 켁스에서는 14번까지 줄을 세운 다양하 라인업의 맥주를 마시고 그 시간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저녁을 보내고, 저녁을 보내는 이들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랩탑을 계속 두드리기도 하고, 끊임없이 밑줄을 치며 무언가를 읽기도 한다. 왁자지껄하게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혼자 빈 잔을 정렬한 채로 메신저에 열중하기도 한다. 대형 책장의 모퉁이 한 켠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자주 크고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아마 Japanese City Pop Night도 그 중 하나였겠지) 저녁을 보낼 고민을 하던 사람들이 모인다.


'기나긴 밤을 한허리 버혀낸다'는 한 고전시의 표현을 좋아한다. 정말 끝내고 싶지 않은 어스름을 다들 한번쯤은 경험해보았을터. 내 마음을 다해 염원해야만 했던 길고 긴 저녁이 선물처럼 주어지는 경험은 꽤 색달랐다. 서울에서도 이런 저녁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해가 지지 않으니 읽기를 멈출 순 없지



켁스의 소셜 필스너, 잘 마셨습니다.



밤이면 자연스럽게 음악이 깔리고, 사람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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