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부르다가 죽을 연어

오슬로 <The Salmon>

by 베링




연어, 내가 너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미술관 일정을 주르륵 적어둔 오전, 루프트펀리 현대 미술관에 방문하고자 Aker Brygge에 도착했다. 날씨운은 기가 막히게 좋은 편이라, 전날 울적하던 하늘은 싹 씻겨서 기분좋게 눈이 시린 모습이었다. 그저 발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 절로 리듬 타게 되는 오늘의 맑음. 20km는 족히 걸을 예정이니, 뜬뜬한 스니커즈를 신었다.


트램을 타고 Aker Brygge 에 내리면 항구를 따라 일직선으로 걸을 수 있다
아저씨와 갈매기 in such a good mood



신나게 걸은지 얼마나 되었을까, 비슷한 비주얼로 크게 내 흥미를 끌지 못하던 가게 중 눈에 띄는 곳을 발견했다. 첫날부터 벼르고 있었던 노르웨이의 시그니처가 본격 무대 위로 등판한 느낌. 그렇다. 다름 아닌 "연어"가 그 주인공. <The Salmon>, 특별한 "연어 경험 센터"라니 슬로건 너무하잖아. 아직 식사시간까지는 조금 남았지만, 한시간 정도 당겨도 크게 무리는 아니겠지.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오늘의 브런치는 무려 노르웨이지안 연어로다.


오슬로에 도착해서 진작 "연어 밥상"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원활하게 메뉴를 픽할 수 없었다. 의외로 시티센터 부근에 연어 전문점을 찾기가 힘들었고, 애매한 메뉴 선정으로 초기 시행착오에 상처(?)를 입었던 상태였다. 오늘이 연어를 맛보는 첫 날이라니, 그치만 널 잊었던 건 아니었어.



One and Only 한 경험, 여행자라면 누구나 혹하는 말이다.
디테일 무엇인가요? 바닷바람을 버티는 조가비 데코레이션의 섬세함에 감동.


막 식사를 시작한 사람들로 조금씩 붐비기 시작한다.






The Salmon Trilogy : 연어 3부작으로의 초대


신문 아티클 형식의 메뉴판에는 다양한 메뉴들이 소개되어 있었고, 고르는 시간도 꽤나 잡아먹겠군. 싶었는데, 나는 단 한 번에 메뉴를 정해버렸다. 단언컨대 지금 이 시점에도 번복할 마음은 결단코 없다. 그 이름하야 <The Salmon Trilogy>. "연어 3부작을 맛보시겠습니까?" 하고 말을 걸어오는데,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생각하니, 이 곳은 카피 맛집이기도 했다. 가게 이름 - 메뉴 이름의 원투펀치가 내게 모두 먹힐 정도로 강한 상대랄까. 본디 1차원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는 타입이긴 하다. <더 빨강>, <더 김치>, <더 오렌지 주스> 같은 것들(...)

그렇게, 주인공을 기다린다.


메뉴를 단숨에 고르고 목을 축인다. 오늘의 식사를 기다리는 설렘.




그리고 등장한다. 언젠가의 로망이었던 노르웨이 연어.



디쉬의 비주얼을 본 순간, 현실 탄성으로 "와-"라고 해버렸다. 아마 서빙해주는 직원도 대단히 뿌듯하지 않았을까. 먼 땅에서 온 여행자가 음식에 감동받는 모습을 지켜봤으니 말이다. 나라마다의 로망이 있고, 여행자로서의 숙원사업이 있는데, "노르웨이 연어 먹기" 는 해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 순간이 코 앞에 왔고, 모든 setting이 완벽하다. 조도(햇빛), 온도(공기), 채도(연어!)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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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생연어, 구운 연어, 절인 연어다. 각 조리법의 연어마다 소스도 달랐다.



3가지의 조리법, 3가지의 전용 소스로 꾸려진 접시에서 행여나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놓칠새라, 천천히 한 입씩 썰어넣었다. 그치만, 시간이 멈출리도 없고 연어 3부자은 꽤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다. 오물거려보고, 맥주를 몇 모금 더 털어넣으며 시간을 벌어보았지만 야속하게도 내 접시는 클리어. 이 곳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다는 오늘의 주인공과 함께 더없이 행복했다.



아니, 근데 맥주는 왜 벨기에 맥주인지. 살짝 삐끗해버렸지만 맛있으니 그만.


식사를 마치고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하늘 아래 미술관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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