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미술관에서 한 생각 4가지

타이베이 시립미술관(Fine arts Museum)

by 베링




비가 오는 오후라서, 미술관에 들렀다


오후부터 비가 예정되어 있어서 미술관으로 일정을 꾸몄다.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은 MRT 위안산역에서 도보로 10여분 정도 걸어가면 모습을 드러낸다. 대만 최대 규모의 미술관이자 대만의 현대미술 발전을 위한 공간.


평일 오후이자 비가 추적추적 오는 통에 관람객이 많지 않아 적막한 분위기가 좋았다. 규모에 걸맞게 다양한 전시를 한 번에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모든 테마들이 흥미로워 미술관에 꼬로록 잠겨있을 수 있었다. 시대, 장르가 모두 다른 것들을 하나의 공간에서 볼 수 있다니. 대단히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그 몰입에 대한 기록이자,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타이베이 미술관에서의 생각 4가지.



넓게 트인 천정때문에 생각주머니가 꼬리물기 좋아 보인다.


지상 3층, 지하 3층으로 이루어진 꽉찬 공간





1. 먹과 농담, 가장 동양적인 것을 발견하다

- <Moving Ink, Tong Yang Tze 개인전>


"나 다운 게 뭔데?"라는 패러디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답다"라는 건, 고유한 오리지널리티를 건드는(?) 정의이기 때문에 분명 어려운 질문이다.


Tong Yang Tze의 전시에서 "가장 동양적인 것"을 발견했다. 어떤 무늬, 어떤 색채, 어떤 기법 - 다양한 정의를 가지고 동양 미술을 접했었다. 그치만, 채도 없이 오로지 새하얗고 까만 것. 그 요소를 가지고 수차원을 논할 수 있는 먹의 미술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전시를 보는 내내, 하나도 겹치는 구석이나 진부함없이 선으로 그려낸 작품 하나하나를 벙쪄서 쳐다봤다. '이렇게나 예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도 놀랐다. 분명 담백하지만, 모든 감정과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여유로움. 한 벽면을 그 중 한 작품으로 꾸며보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쏙 들어왔다. 분명 예쁘면서도, 마음이 편해지는 미술이라뇨. 언젠가 가까이에 있었지만, 먹 냄새는 꽤 오랜만이라 향수에 젖었던 탓일까. 나처럼 감탄을 뱉는 이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서있었다.


내 여정과 함께 시작한 전시, 입구부터 기대감을 챙긴다.
회화를 전공했으나, 먹을 쓰고 농담으로 이미지를 주는 아티스트가 된 작가
저절로 눈이 가고 고개가 돌아가는 새삼스러운 아름다움
선의 두께, 방향, 질감에 총체적으로 압도되는 순간들





2. 어떤 콜라보는 본문보다 그 만남의 제목이 작품이 되는 순간도 있다

- <Island Tales : Taiwan and Australia>


섬이라는 위치와 자연을 공유하는 대만과 호주의 콜라보를 만날 수 있었다. 떼어 놓고 봤을 때는 무슨 상관인가 싶고, 느껴지는 이미지가 달라서 재미도 없어 보이지만 둘이 만나니 이런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직역하자면 <섬의 전설(이야기)>라는 테마의 전시인데, 유리 보호막 안의 전시물에 빼곡히 섬나라들의 전래동화가 쓰여있거나, 설치 형태의 전시를 오가며 그들(대만과 호주)에 대해 더 궁금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 만남을 이루기까지 어떤 이유를 들어야 했을까. 그치만 만나지 않았다면 정말 아쉬울 뻔했다.


대만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공통점이 만들어 낸 콜라보레이션
설치물을 비롯한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전시되었다.




3. Video killed the painting, drawing, and sth else.

- <The Serenity of Madness, Apichatpong Weerasethakul(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디지털 아트라던가, 기술을 결합한 미디어 아트들을 종종 보아 왔으나 타이베이에서 만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전시는 꽤 인상적이었다. 태국의 영화감독이자,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습작과 실험을 전시했는데 그 임팩트가 너무나 강렬해서 그림이 시시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 빨간 공간에서 빨간 빛을 내는 고냥이를 만나는 일

-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며 대화하는 커플의 대화를 누워서 듣는 일

- 어떤 부스스한 남자가 기상한 침대 맡에서 몰래 그를 지켜보는 일


이 모든 것이 감독의 촬영을 통한 비디오로 우리에게 보여지고, 그 방식은 재밌고 새롭다. 미술의 절대다수가 회화라서, 그 역사라는 것을 회화의 나열로 배워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림을 보고 비평하는 것으로 예술을 꾸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영상예술이 생각보다도 더 빠른 물결로 주류를 이루리라는 예감이 들었던 시간이다.


조명과 빛, 그림자를 활용하여 비디오를 전시한 구성이 많아서 체험관 같은 느낌이었다
프로젝터를 쏘고 그 사이를 걷고, 가끔은 그 앞에 눕기도 하는 모습




4. 전에 없는 것이 끝없이 태어나는 현장에서, 그 기운을 얻다

- <2019 Taipei Art Awards(TAA)>


대만의 현대 예술 씬에서 가장 핫한 것들을 모아 볼 수 있는 2019 TAA를 만나는 행운이 함께했다. 어떤 오마주가 깃들지언정 트렌드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 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작업이 여기에 다 모여있었던 것. 그 생기와 호기로움이 어쩐지 전이되는 것만 같았다.


동시대의 예술가들은 더 이상 묵직하게 작품을 배포해두고, 비평가들과 관람자들이 그것을 지지고 볶는 것을 팔짱 끼고 구경하지 않는다. 명확한 그의 이야기가 있고, 그 목소리를 "온전히 내 방식"으로 표현하는 능동적인 사람이다. "작품으로 말하겠습니다"라는 무책임함은 없다. 알아줄 때까지 자신의 작품 라인업을 꾸리고, 끝없이 표현해내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그 창조물의 향연 속에서 생기를 얻는다.


2019 TAA를 다보고 나면,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작가에게 투표를 하고 퇴장하게 된다.



잡지를 찢어붙이고, 그 위에 가전을 올리고. 모래성 같은 것에 빔을 쏘고. 재미있는 것의 향연.



비 오는 날이 아니어도 타이베이에서 반나절 동안 푸욱 잠겨있을 법하다. 캘리그래피, 단편 영화, 설치 미술, 그리고 그림들. 꾹 하고 발도장 찍고 나오는 곳이 아니라, 암전된 영화관에서 몇 편 정도의 영화를 보고 나온 것만 같은 밀도감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남기고 돌아선다. 미술관이 남겨준 생각 몇 가지를 소중하게 챙기며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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