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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링 Mar 22. 2020

스톡홀름, 커피를 마시다 배운 것

카페 <Johan&Nyström> - <il caffè>




Seriously, Coffee break as a routine


스톡홀름에서는 먹고 마시는 것에 정말 하나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네 끼가 되기도 하고 다섯 끼가 되기도 하며 마법같이 여행 맞춤형 생체리듬을 컨트롤했다. 부지런히 먹고 마셨다면, 남는 시간들은 응당 나를 걷게 할수밖에. 다만 그 와중에 여러가지로 잠깐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나열하자면 그 상황들은 다양하다.


배터리가 아슬아슬 할 때, 급하게 대용량 다운로드가 필요하여 와이파이 존을 찾아야 할 때, 중간 일정을 다시 재정비를 할 때, 동선과 리스트를 체크해야 할 때, 다리가 아플 때(혹은 발바닥이 아플 때) 


그 때마다 그저 다리를 두드리는 휴식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아기자기한 것들을 구경할 요량으로 카페를 찾고 커피를 마셨다. 결국 먹고 - 마시고 - 걷는 매일의 여행에서 Coffee Break 는 필수였던 셈. 어느 도시에서나 유효한 이야기지만, 스톡홀름에서만 추억할 수 있는 커피를 마시다 배운 몇 가지에 대하여. 




Lesson 1:  콜드브루와 시나몬롤을 함께 먹으면 맛있다.

- 쇠데르말름 지구 Johan&Nyström


스톡홀름 사람들이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많이 오는 곳이라하여 구시가지의 이미지를 예상했으나, 굉장히 깔끔하고 알록달록했다.내 앞에도 브런치와 음료를 함께 주문하는 손님이 이미 여럿 있었다. 카페의 전경을 살피자면, 천장이 높고 조명의 종류가 다양하다. 커피를 마시는 시늉을 하며 부수적인 일들을 처리하기도 했는데, 공간이 너무 예쁘고 정말이지 커피를 홀짝이는 사람들이 참 많아서 주변을 구경하느라 바쁠 지경이었다. 


실내에 자리를 잡기는 아까운 오늘의 날씨 탓에 야외 핫핑크 테이블에 콜드브루와 시나몬롤을 가지런히 세팅한다. 커플이나 혼자 온 소수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있는데, 주변의 야외 브런치카페와 어우러져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차도를 막고 공간을 조성하여 자유롭게 노니는 캠퍼스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점심을 마친 시간, 커피를 찾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 매장



이 곳에서는 콜드브루를 두껍게 잘 조각된 느낌의 위스키 글라스 같은데에 담아준다. 얼음이 칠링칠링-한 소리를 내다보면 괜히 목넘김도 다른 것 같다. 트레이로 메뉴를 준비해주면서도 큼지막한 얼음 조각을 철제 집게로 넣기 때문에 노천펍에서 하이볼한잔 하는 기분이 들었달까. 


보통 허기질 때 먹게 되곤 하는 북유럽의 시나몬롤은, 어쩐지 나에게 '김치만두'같은 존재로 기억된다. 커피를 즐기는 와중에 도합 너다섯번은 먹었는데 모두 만족스런 맛과 향이고, 특유의 덩어리감이 항상 포만감을 주었다. 조금 우습지만 김치만두도 나에게 그런 존재였었거든. 꽤나 엉뚱하지만 만족스러운 비유에 혼자 히죽거리며 메모를 쓰고 지우던 기억은 덤이다. 그 영혼의 양식과 멋드러진 글라스 속 콜드브루는 분명 환상의 짝궁이 되어주었다. 


생각보다 오랜시간 자리를 지켰더니, 밀물같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러고 나니, 덩그러니 남겨진 알록달록한 테이블들의 색채들이 눈에 띄었다. 오늘 오후, 여기서 잘 쉬었다. 



위스키 한 잔과도 같은 비주얼의 콜드브루와 시나몬롤, 그리고 오늘의 스냅을 완성하는 소품들



그들이 남기고 간 빈 잔과 빈 병, 그리고 형형색색의 테이블들 





Lesson 2 : 장비를 동원해야 Coffee Life의 질이 상승한다. 

- 쇠데르말름 지구 <il caffè>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다리가 아픈데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해서 동선이 길어지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건물을 휘저으며 방황하고 있었더랬다. 크고 작은 상점들이 등장할 무렵, 개인 업무를 보는 사람들 위주의 한적한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평화롭게 두 남자가 앉아서 웃고 있는 카페를 발견한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들어섰다.


끝이 나지 않는 골목 속에서 Coffe Break를 염원하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오늘의 커피 스팟(Coffee spot)



우연한 발걸음이 이끈 곳이지만, 함께 운영 중인 베이커리의 맛있는 빵냄새가 풍겨왔고 이내 안심해버렸다. 따뜻한 인상의 바리스타가 바삐 커피를 내려주는, 아늑한 분위기 속으로 들어왔다. 다리가 조금씩 풀어지며 거듭 평온함을 느꼈다. 스르륵 짐을 풀었다. 그리고 이 곳의 의미는 비단 안도감을 주었다는 것 외에도 또 하나가 있었으니, 프렌치 프레스(French press) 커피를 여기서 처음으로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기본형의 '오늘의 커피'를 주문했을 뿐이었는데 프레스기와 머그를 함께 받아들게 된다. 당최 이 도구는 도대체 무엇이며, 바리스타가 써야만 하는 것이 아닌지. 어리둥절하면서도 호기심이 용솟음친다. 쭉 프레스기를 밀어보고, 내려진 커피를 머금었다. 마치 내가 다한 것 같은 성취감과 커피의 맛, 모두 훌륭하다. 


그렇게 검정색 머그와 프레스기, 블루투스 키보드와 함께한 어느 오후의 시간. 그 무렵 칼리타 드리퍼를 살까말까 고민 중이었던 참인데 보덤의 프레스기를 사기로 바로 결정해버렸다.뭇 매니아들만 도구나 장비의 중요성을 운운한다고 느꼈으나, 분명 장비를 더하면 커피는 더 맛있어진다는 명쾌한 깨달음을 얻었다. (정말, 그럴 수 밖에 없다) 스톡홀름의 카페 경험은 걸음 수를 불려나가던 여행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수 휴식시간이자, 단촐한 커피 소비에 새 바람을 불어 넣어 준 영감어린 시간이 되어주었다.



쭉 커피를 밀어 내리고, 후릅후릅 하는 재미에 폭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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