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적 최루탄과 진짜 최루탄

화생방 꿀팁과 내게 영화가 갖는 의미

by 화산대폭발

입대하기도 전, 사람들 사이에 알음알음 공포로 전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화생방 훈련', 말 그대로 화학, 생물, 방사능 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이지만 보통 화생방 하면 우리는 연기가 자욱한 밀실에서 눈물 콧물 빼고 있는 군인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입대를 앞둔 건장한 청년이었던 나 역시 그 정체 모를 공포에 걱정이 앞섰다.


입대 후 훈련소에서 구보, 총검, 사격 등 다양한 훈련을 지나 보니 군대는 생각보다 할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 3주 전에는 저 멀리 아파트 불빛에도 눈물을 흘리며 나가고 싶었다. 잠깐만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면 안 될까 싶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열악한 훈련소 상황과 경쟁 때문에 폐렴도 불사하며 구르다 보니 어느새 보라매 정신이 내게 박혔는지 모른다. 그래도 보라매는 여전히 화생방이라는 정체 모를 녀석에게 떨고 있었다. 그 녀석, 우리 엄마 말로는 토악질 나올 정도로 힘들다는데 어쩌나 하면서.


어느새 도달한 화생방 훈련 일정,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화생방 훈련장. 오와 열을 맞춘 훈련병들을 향해 빨간 모자의 조교들은 각을 잡고 외쳤다. 지금부터 열외자를 받는다는 외침. '천식을 비롯한 호흡기 질환이 있거나 시력교정술을 받은 사람 열외'라는 지시에 모두가 웅성 거렸다. 한두 명씩 조교의 옆으로 나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3할은 되어 보이는 인원이 나가 섰다. '아무리 라식과 라섹의 시대라지만 이렇게나 열외자가 많을 수가? 확인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나가도 모르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싹트자 나 또한 두려움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나의 군홧발이 옴짝달싹하는 사이 조교는 한 마디 더 외쳤다.

"CS탄에 유전적으로 면역인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마라!"

그 한 마디에 모든 훈련병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CS탄 면역은 화생방 훈련에 사용되는 최루탄 자체가 괴롭지 않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화생방 조교 중에 면역자가 있어 직접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방독면 없이 들어가 수 초 뒤 눈물 콧물 없이 건조하게 다시 나왔다.

공포 속 한 줄기 희망적인 가정에 열외자 중에서도 몇 명은 시도해 보겠다며 다시 돌아왔다. 얼마나 멋지고 특별한 일인가! 공동체의 족쇄와도 같은 대중성에 묻히고, 파편화되어 그 특별함을 잃어가는 수많은 특성들 사이에서 '나 CS 면역이야'라는 딱지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동년배와의 술자리, 조별 과제 아이스 브레이킹, 동호회 자기소개, 후에 부장님을 대동한 회식 자리에서도 써먹을 수 있으리라.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CS탄 면역이라며 우스갯소리를 섞어 자신을 소개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화생방 훈련을 먼저 시작하는 전우들을 본다. 그들은 당당하게 들어가선 몇 분 후 토할 듯 한 기침과 함께 화생방 훈련실 문을 박차며 나온다. 그들의 기침만큼 긴장이 늘어간다.

드디어 우리 분대 차례. 우리는 결의에 찬 발걸음을 뗀다. 입구에 모인다. 방독면을 착용한다. 대기 중 조교는 경고했다.

"숨을 참지 마라. 정화통을 해제한 후 CS 탄 체감을 위해 최소 1분 이상 체결하지 않는다. 조금씩 들이마시면서 숨을 쉬어야 할 만하다. 숨을 참은 채로 들어가면 더 깊고 많이 들이마신다. 그게 더 괴롭다."

나는 그 경고를 새기고 '난 면역일 듯 ㅋㅋ 숨도 졸라 잘 참음'하며 입장했다.

뿌연 연기 때문에 눈을 감고 일열로 서서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입장한다. 입장하니 눈을 뜨라는 조교의 지시. 눈을 뜸과 동시에 아뿔싸, 피부와 눈알이 벌써 가렵고 따갑기 시작한다. 눈물이 조금 흐른다. 난 지금은 방독면을 쓰고 있는데 어째서? 아, 내 방독면의 정화통은 상태불량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난 시발 CS 면역자가 아니었다. 난 숨을 참았다. 정화통 분리 지시. 난 정화통 불량을 빨리 깨달아 거의 입장과 동시에 숨을 참은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바보처럼.


훈련은 1분 동안 가만히 서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식을 하고, 제식을 실수하면 얼차려도 받았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훈련병들 사이로 갑자기 웬 상자를 들고 들어온 조교가 있었다. 조교들끼리 수군수군하더니 갑자기 상자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훈련병들이 마지막 화생방 훈련인 관계로 CS탄 소진을 위해 잔여 CS를 모두 터뜨렸다! 감안하고 빨리 끝내 줄 테니 조금만 참아라!"

뭣.

시발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미 참아온 숨이 바닥나고 있는 가운데 군가를 부르라는 조교의 외침이 밀실을 채웠다.

"군가는! 전선을! 간다!" - "전선을! 간다!"

"하낫 둘 셋 넷!" - "높은 산, 깊은 골-"

그와 동시에 수많은 토악질 소리가 귀를 때렸다. 면역이 아니라는 깨달음 뒤로 잔뜩 위축된 나는 아직까지 참고 있던 숨을 지키고자 입술만 벙긋거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조교들의 도발, 이것 가지고 이렇게 힘들어하느냐는 그 새파란 것들의 도발. 그래,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니들은 방독면 끼고 나를 도발해? 내가 보여주마, 내 정신력을. 중학교 때 성악 했던 짬을 살려 가슴을 높이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웁!!) 적막한-!사은카케케켁"

시발. 시발, 시발. 말도 안 돼. 이걸 사람이 사람한테 쓰려고 만들었다고? 도망가자. 괜히 CC기가 사기 스킬인 것이 아니구나. 어째서 우리나라는 아직 전쟁 중인 것이지? 괴롭다. 괴로워! 빛은 어딨지. 그곳이 밖이다. 물을 마셔야 해. 물이 필요해. 눈알을 긁고 싶다.

매캐하다고만 설명할 수 없는 괴로움이 내 토르소에 가득 찼다. 실제로 아팠다. 내 기도가 아팠다. 수많은 고양이 특공대가 신기한 스쿨버스를 타고 내 후비에서 내려 기관지 벽을 긁으며 내려가는 듯했다. 군가고 나발이고 죽을 것 같았다. 토에 가까운 기침을 계속했다. 기침을 너무 많이 해서 갈비뼈 주변 근육이 아팠고, 머리가 아팠다.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엄마, 엄마.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한다면 어차피 해야 할 거 즐겨라, 제대로 해라, 하며 나를 가르쳤다. 하지만 어째선지 입대할 때의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적당히만 해!'라는 말로 나를 배웅했다. 어머니의 걱정을 깨닫자 갑자기 엄마 아들의 기운이 내게 들어찼다. 보라매 정신에 엄마 아들 기운이 깃든 나를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어차피 할 거면 제대로 해야 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오케이, 내가 누구? 엄마 아들 보라매. 정신이 번쩍 들어 보이지도 않는 눈을 부러 부릅뜨면서 조교를 야렸다.


"정화통 체결!"

진득한 눈물과 입김으로 방독면 눈앞이 보이지 않던 내게 정화통 체결 지시는 실제로 내 눈앞에 섬광이 꿰뚫는 듯 번쩍였다. 빨리 이 훈련을 끝내고 겨울의 희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제발 세수를 하고 싶었다. 부랴부랴 체결한 정화통은 의미가 없었다.

화생방 종료 외침과 함께 문이 열리며 훈련병들은 우루루 쏟아져 나갔다. 서로 발에 채여 넘어지기도 했다. 수돗가가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일렬종대로 대기하라는 말만 들었다. 군복에 묻은 CS탄을 털어낸 후 씻어도 된다는 허락을 듣자 득달 같이 달려들었다.

손을 사용하지 않고 흐르는 물로만 진행한 세수. 가슴께까지 젖은 군복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물줄기보다 파도가 덮쳤으면 싶었다. 눈을 뜨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칙칙한 쇄석 자갈밭, 회색빛 하늘, 앙상한 나뭇가지. 그런 것들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이 시원함과 개운함이 어쩐지 화생방 훈련 덕인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난 그렇게 화생방을 좋아하게 됐다.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어도 반기별로 화생방 훈련이 있었다. 내가 소속된 운전교육반의 반장님이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화생방 훈련을 빼주려고 하셨지만 난 그러기 싫었다. 그 개운함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물밀듯 내게 쏟아지는 삶에 대한 감사함, 어머니의 사랑, 무엇이든 헤쳐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고 싶었다. 운전교육반 선임들이 빠르게 전역하고 후임만 남게 되는, 이른바 풀린 군번이었던 나는 왕고의 자리를 앞세워 후임들에게 화생방은 꼭 해야 한다고 전파하기도 했다. 난 화생방에 중독되었다.


반기별로 정신단련의 시간을 즐기던 내게 전역 이후의 삶은 화생방 훈련이 없는 삶이었고, 그 말은 정신이 해이해지리라는 뜻이었다. 전역과 동시에 시도한 편입을 예비 1번으로 떨어지고, 두 번째 편입 시도를 위해 휴학을 했건만 이미 사회물 잔뜩 먹은 내게 정신개조는 역시 필요했던 것일까. 나는 첫 번째 편입 시도 때와는 다르게 확실히 해이해졌다. 불안한 맘에 일부러 군대와 동일한 하루 스케줄을 짜보기도 했다. 담배 피우는 개비 수도 맞췄다. 여섯 시 반에 일어나 가벼운 구보와 웨이트를 하고 아침 식사 후 나만의 작은 식후땡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예비 1번으로 떨어지니 정신이 멀어졌다. 최루탄이니 뭐니는 기억도 안 났다. 더 늦어졌다는 불안함. 세상에 대한 한탄. 스탠다드에 대한 반발. 마음속에 눈물이 쌓이고 있었다.

정신이 해이해진 체 복학한 학교에는 코로나가 한창이었다. 학교엔 학생들의 과제 작업을 위한 설계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만 작업해야 했고 작업도 원격으로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지 못하고 공황 장애를 최대로 키웠다. 하루에도 갑작스레 찾아오는 공황 발작에 진이 빠져 과제를 못 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머쓱한 마음에 크리틱 받고 자기혐오로 베개를 적시며 2시간씩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과제를 하고, 피로한 몸에 지쳐 졸다가 불안함에 발작이 찾아오는 악순환이었다.

한 학기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서 코로나도 어느 정도 잠잠해졌고, 더 정확한 피드백을 위해 대면 크리틱을 시작했다. 처음 마주한 내 담당 교수는 솔직히 무서웠다. 떡대도 크고, 얼굴에 그렇게 흉터가 많다니. 죄송하지만 무서웠다. 그런 교수에게 내 과제를 내놓기가 더 무섭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몇 번 대면 크리틱을 받고 나니 나는 건드리기만 해도 툭 터져버릴 것 같은 물풍선처럼 찰랑거렸다. 교수님은 계속해서 미흡한 내 과제를 보더니 진심으로 "진로가 안 맞으면 진심으로 고민하고 지금 그만해라, 더 이러면 F 줄 수밖에 없다"라고 하셨다. 그렇게 눈물은 터졌다. 엉엉 울고 벌벌 떨며 상황을 토로했다. 나 스스로도 어떤 식으로 말했는지 모를 만큼 그 자리에선 그렇게 부서졌다. 말을 토해내고 나니 목이 따가웠다는 기억이 난다.

정신 차리고 보니 교수님께서 진심 어린 눈으로 이런 식으로 설계해야 한다, 저런 식으로 작업해야 한다, 조언을 하고 계셨다.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왔다. 내 마음이 굉장히 개운했다. CS탄을 뱉어내고 그 자리에 깨끗하고 차가운 공기가 들어올 때 느낀 그 만족감. 그게 느껴져서 반가움에 눈이 반짝거렸다. 찾았다, 내 화생방.


이후로 나는 공황 장애를 온몸으로 마주했다. 자낙스? 내겐 필요 없다. 의존성이 심하다는 말에 더 불안해져 오히려 잘 먹지 않았던 나였다. 발작 올까 더 불안해? 오히려 좋아. 더 차면 비워낼 때 더욱 시원할 것이다. 자신을 못 믿겠어? 그렇다면 온몸으로 맞고 비워낸 후의 나를 믿어라.

불안이 쌓여 내 작업조차 진행하지 못할 지경이 되면 나는 정신을 부여잡고 영화를 틀었다. '쓰리 빌보드', '마더', '도그빌'처럼 온갖 불안으로 옥죄다가 마지막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영화들이 주였고, 울리기 위해 울리는 영화는 당연히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보면서 해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내게 반복되었고 나한테 영화는 어떻게 보자면 화생방 출구가 된 것이다.


지내다 보니 사는 게 화생방 훈련 같기만 하면 좋긴 하겠지 싶다. 계획 대로고, 끝이 있다. 그에 반해 이건 뭐 전달받는 훈련계획서 같은 것도 없고, 지금 떨어지는 모든 최루탄이 내게 어떤 성장 및 기능을 함양시킬 것인지 예상도 할 수가 없다. 보통 최루탄을 몇 개나 받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폐에 가득히 최루 가스를 들이밀며 참고만 있다. 창문 틈으로 잠깐 보이는 겨울 나뭇가지를 보며 조금은 시원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다가 잠깐 개구멍으로 얼굴을 내밀어 보는 것이다. 그럼 괜히 습기 머금은 나무 위로 하얗게 성에가 일어나는 모습, 와중에 날아가는 통통한 까치가 보인다. 하나씩 뜯어보아하니 폐에 깨끗한 공기가 차면서 모든 것이 대단하면서 또 별 거 아니다 싶어진다. 그럼 난 그 개운한 마음으로 다시 화생방을 들어간다. 나에게 영화가 딱 그 정도 의미다. 너무 신성시되지 않는, 화생방 훈련실 안의 작은 개구멍.


아직 말하지 못 한 영화들이 많다. 내 첫사랑, 내 라이벌, 삶의 방향, 이상적인 가족상, 그것들을 모두 영화를 통해 이야기해야 한다. 아직 쓸 이야기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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