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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박스 Oct 22. 2023

운동을 했는데 몸무게가?

나름 꾸준히 오운완 생활을 하는 데도 몸무게가 자꾸 늘었다. 평소 입던 청바지가 터질 듯이 꽉 껴서 지퍼가 쉽게 잠기지 않았다. 인바디를 재보니 2년 전과 비교해서 6KG이 늘어 있었다. 근육량은 그대로이고 체지방만 는 무게였다. ‘운동한 건 다 어디로 간 거지?’ 근육량의 무변화에 절망했고, 체지방 증가량에 더욱 절망했다. 30대 초반, 감자탕을 먹고 급체와 장염을 겪은 후 체중이 급격히 줄었었다. 체질이 바뀌었는지 임신 기간을 제외하고 10여 년 간 줄곧 48KG이었다. 식사 후 디저트 케이크와 여러 간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건강 검진을 받을 때 외엔 몸무게를 잴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노화로 인해 기초대사량이 낮아진 탓일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운동량이 있는데 1~2KG도 아니고 6KG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억울함이 가시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이 더 쪄. 감자탕의 유효 기간이

길긴 길었지. 운동한 덕분에 10KG이 늘 걸 선방했다고 생각하자.’

혼자서 분노했다가 체념하기를 반복했다. 몸의 변화를 눈여겨보면 체중 증가가 이대로 멈출 것 같지 않았다. 10KG이 느는 건 쉬워 보였다. ‘더 늦기 전에 다이어트를 하자!’ 이것저것 정보를 검색한 뒤 간헐적 단식에 돌입했다. 16시간 동안 공복 상태를 유지하면서 운동도 했다. 다이어트 시작 열흘 만에 3KG이 빠졌다. 기분 좋은 기세를 몰아서 16시간 공복 상태를 며칠 더 유지했다. 그런데 다시 2KG이 느는 것이었다. 결국 한 달 넘게 다이어트를 했지만 1KG 정도밖에 감량하지 못했다. 평생 16시간 공복 상태로 살 수도 없고, 극단적인 단식이 오히려 요요현상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이어가는 건 무리였다. 노화라는 게 이런 건가, 하고 어깨가 처졌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고 주방에 서 있으면 다리가 급격하게 붓는 증상도 있었다. 식사 준비를 마칠 때쯤이면 붓기로 인해 무릎 관절이 잘 접히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심지어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부어 있는 경우가 있었다. 수면을 통해 휴식을 취하고 나면 몸이 회복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소변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신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고, 마침 올해 건강 검진도 받지 않은 터라 병원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신장 기능이 저하됐다는 소견이 나왔다. 신장에 이상이 생길 경우 나타나는 몸의 변화와 치료 과정에 대해 찾아봤다.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할 경우 몸이 붓고 몸무게가 증가하는 것은 기본이고, 치료의 고됨과 식단 조절의 까다로움은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침울함이 떨쳐지지 않았다. 정밀 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신장 내과를 찾아갔다. 어떤 결과를 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거야, 하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호두까기 증후군입니다.”

피검사, 소변 검사, 신장 초음파 검사 등을 종합한 결과였다. 이런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냐는 의사의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아니요’라고 답했다. 호두까기 증후군은 왼쪽 신장에 연결된 정맥이 두 개의 동맥 사이에 끼어서 순환이 안 되는 병이라고 했다. 두 동맥이 집게모양을 하고 있고 그 사이에 정맥이 끼어서 눌린 모양이 마치 호두를 까는 기구(Nutcracker)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신장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정맥이 눌리는 증상만 개선하면 된다고 했다. 치료법은 왼쪽으로 돌아 누워서 자는 것이었다. 우리 몸의 오른쪽에는 간이 있어서 공간이 좁은데 왼쪽에는 큰 장기가 없어서 공간이 여유롭기 때문에 왼쪽으로 돌아누우면 정맥이 덜 눌리게 되는 것이다.


결과를 듣고 난 뒤 병원 계단을 내려왔다. 검사를 받기 위해 아침 금식을 했더니 배가 고팠다. 마땅히 갈 만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아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햄버거는 일 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이다. 고기 패티가 달갑지 않아서다. 통새우버거를 주문해서 테이블에 앉았다. '신장 검사를 받고 나온 사람이 웬 햄버거?!' 신장 자체에는 이상이 없다는 말에 긴장이 풀렸나 보다. 그동안 신경 쓰던 마음이 힘없이 단번에 풀린 모양새였다. 통새우를 우적우적 씹으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크랍티가 유행인 요즘, 거리 곳곳에 잘록한 허리를 드러낸 사람들이 종종 지나갔다. 저들의 잘록한 허리 안에서는 정맥이 안 눌리는지 궁금했다. 그러고는 아이의 하교 시간이 임박해서 급히 학교로 직행했다. 아프지만 엄마인 사람의 숙명이다.


그날부터 왼쪽으로 누워 자기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 2~3KG이 줄기도 하고 늘기도 했다. 몸무게가 줄어든 날은 혈관이 눌리지 않은 것이고, 몸무게가 는 날은 혈관이 눌린 것이다. 어쨌든 병의 원인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아 안심이 됐다. 하지만 옆으로 자기 시작한 뒤로 왼쪽 어깨에서부터 왼쪽 새끼발가락까지 다 쑤셨다. 한 가지 병을 고치려다 다른 병이 올 지경이었다. 추석 연휴를 보내고 다시 병원을 찾아갔다. 처음에 받았던 검사를 다시 해서 정확한 결과였는지 체크하고 그간의 경과도 보는 자리였다. 의사 선생님이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며 대뜸 말했다.

“적지 않은 나이지. 섭섭해도 할 수 없지 뭐.”

맞다. 나는 마흔셋이다. 적다고 하기에는 많고, 많다고 하기에는 적은 나이다. 이제 장기들이 슬슬 녹슬어 가는 나이라는 뜻이다.


병명을 알고 난 이틀 후, 난생처음 1일 2운동을 했다. 오전에는 수영, 오후에는 크로스핏. 애매한 나이라고 무턱대고 애매함에 순응할 수는 없다. #오운완완을 했다는 얘기에 남편이 답했다.

“미쳤어요?”

사실 남편이 나보다 더 많은 종류의 운동을 한다. 킥복싱, 헬스, 러닝, 자전거, 수영을 번갈아 가며 하고, 하루에 두 가지 운동을 하기도 한다. 그는 원래 그렇지만, 그렇지 않던 내가 그러니 놀랐나 보다. 게다가 내가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첫 달이었기 때문에 정말 안 힘든 건지 의아해하는 물음이기도 했다. 해보니까 할 만했다. 평생 수영을 알지 못하는 인간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 날에 구에서 운영하는 수영장 수업을 신청했다. 수강료가 저렴하기 때문에 대학 가기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다. 마음먹은 달에 운 좋게 신규 회원 여석이 8자리나 나서 신청하는 데 성공했다. 박스에 가는 날 수를 줄여야 하는 게 아쉬웠지만, 크로스핏 3회, 수영 2회를 갈 수 있는 평일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너무나 완벽해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병명을 확증받는 일이 동시에 일어났지만, 심각할 건 없었다. 옆으로 누워 자면서 경과를 살피면 됐다. 나는 평소처럼 운동을 하고,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시도를 할 수 있는 일상에 감사했다. 그 주 토요일, 세 식구가 함께 자유 수영을 다녀왔다. 물과 관련된 곳에서 정말로 수영을 한 건 처음이었다. 수영을 마치고 아이가 좋아하는 무한리필 고깃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이런 날은 결코 소소하지 않다.


수영을 시작한 건 유산소 운동을 통해 폐활량을 늘리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수영으로 폐활량을 늘리고, 크로스핏으로 근육량을 늘려서 종국에는 날아갈 듯이 뛰고 싶다. 내 몸이 거리낌 없이 뛰고 싶으면 뛰고, 걷고 싶으면 걷는 자유로운 상태를 만들고 싶다. 몸이 가뿐하게 움직이는 지점에, 몸이 짐이 되지 않는 지점에 닿는 일상을 만들어가고 싶다. 이것은 단순히 늙어서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과는 다르다. 몸이 헉헉대면 정신도 헉헉거린다. 몸이라는 겉옷을 벗은 것처럼, 힘 있지만 가벼운 몸으로, 몸에서 해방된 존재가 되고 싶다. 퇴화를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몸을 제쳐 두고 마치 헛꿈을 꾸는 소리 같지만 말이다.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는 자기 해방이라고 말한다. 나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 해방감을 경험해 봤다. 글을 쓸 때처럼 운동할 때도 해방감을 맛본다. 해방될 수 있는 통로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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