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무게를 안 늘리잖아.”
정체기가 왔다. 왜 실력이 제자리걸음인지 푸념했는데 함께 운동하던 회원이 해준 말을 듣고 머리가 ‘반짝’ 깨어났다. 매번 같은 무게만 들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늘 드는 무게인데도 늘 힘들어서 원판 무게를 높일 생각을 못했다. 평소보다 적은 횟수를 들더라도 무게를 높이면 근육 성장과 근력 획득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남편이 떠올랐다. 마치 저울과 칼을 든 정의의 여신 디케(Dike)처럼 한 손에 <불량헬스>와 <헬스의 정석> 책을 쥐고 다른 손에는 운동 유튜버의 영상을 든 채 ‘점진적 과부하!’를 외치던 그의 모습이 말이다. 절대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운동의 진짜 정석을 설파하는 운동계의 디케를 방불케 하는 윤곽선이었다.
점진적 과부하란 조금씩 과부하를 늘리라는 뜻이다. 몸은 편안한 상태에 눌러앉아 있으려 하기 때문에 육체적 능력을 조금씩 발전시켜서 몸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원판 한 장을 더 추가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2.5LB 초록색 원판(약 1KG)만 추가해도 바벨이 아예 가슴 위로 들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증량 효과를 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없을지 찾아봤다. 무게를 높일 수 없다면 운동하는 횟수를 늘리라는 어느 블로거의 글을 발견했다. 주중에 하루 더 박스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주중 2~3일 출석하던 패턴을 3~4일로 바꿨다. 운동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근육이 성장한다는 말에 근통증이 심한 날을 제외하고 대부분 출석했다.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평일 오전에는 언제나 박스에 있었다. 횟수를 세어보니, 봄부터 박차를 가해서 3월에 13회, 4월에 15회를 나갔고, 7월까지 평균 15~16회 출석을 이어갔다. 8월에 여름 방학을 보내고 난 뒤, 9월부터 수영도 시작했다. 주 2회 수영 강습을 받는 것과 더불어 주 3회 크로스핏을 했다. 그래서 추석 연휴가 있는 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크로스핏 11회, 수영 7회에 러닝 1회까지 총 18회 운동 기록을 세웠다.
와드 시에 바벨의 무게를 높이거나, 운동 가는 횟수를 늘리고 난 뒤 근육에 보다 힘이 붙는 게 느껴졌다. 수영으로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몸에 윤활유를 뿌린 듯 움직임이 점차 부드러워졌다. 물론 수영을 하기 위해 크로스핏 하는 수를 줄였더니 들 수 있는 무게가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듯 한 지점도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내게 부족한 운동 능력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육체를 단련시켜 나가는 편이 좋다고 본다. 그래서 수영을 추가적으로 하는 것이 더 유리해 보인다.
낯선 동작을 연마하는 것도 내 몸에 조금씩 과부하를 가하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크로스핏 역도 훈련 중에 개인적으로 숨은 복병으로 꼽는 동작이 있다. 다른 회원들은 별로 안 힘들어하는데 나만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작이다. 바로 ‘스모 데드 리프트(Smo Dead Lift)‘가 그것이다. 앞서 스내치에 관해 이야기할 때 바벨을 넓게 잡기 때문에 어렵다고 한 말을 기억할 거다. 스모 데드 리프트를 할 때는 바벨을 넓게 잡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좁게 잡아서 문제다. 바벨을 어깨너비보다 더 좁게 잡아야 한다. 마치 스내치 자세가 거꾸로 된 모양새다. 그러면 바벨이 시소처럼 왼쪽으로 기우뚱, 오른쪽으로 기우뚱거리기 쉬워진다. 따라서 좌우를 수평으로 유지하기가 어렵다.
‘데드 리프트라고 다 같은 데드 리프트가 아니구나.’
스모 데드 리프트를 할 때는 우선 다리를 골반너비보다 넓게 벌린다. 반대로 손의 간격은 어깨 폭보다 좁게 오므린다. 바벨을 잡고 숙였던 상체를 펴면서 바닥에서부터 쇠골뼈까지 힘껏 끌어올리면 되는데, 그 폼이 정말 스모 선수의 모습 같다. 이름과 자세가 찰떡같이 맞아떨어진다. 이 동작을 하는 중에 균형을 유지하려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깨 근육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동작을 마치고 나면 팔이 후들후들 지진을 일으킨다. SNS에서 이상한 바벨 들기 시합을 본 적이 있다. 모두 알다시피 바 양쪽에 원판을 낄 때는 동일한 무게를 낀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는 양쪽의 무게 차이를 크게 줘서 비대칭이 되게 만들었다. 오른쪽은 아주 무겁게, 왼쪽은 아주 가볍게 말이다. 내로라하는 우락부락한 근육질 남성들이 줄줄이 참가했지만 오는 사람마다 바벨을 드는데 실패했다. 스모 데드 리프트를 하기 위한 바벨을 들 때 나도 비대칭 바벨을 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균형을 맞추기 어려워서 버둥댈 때 말이다.
아이가 홍길동전과 전우치전을 좋아해서 읽은 책을 다시 읽어주곤 한다. 홍길동과 전우치가 현란한 도술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장면을 보면 통쾌하다. 흥미진진한 장면 뒤에는 그들이 도술을 연마하던 숨은 시간이 있다. 점진적으로 과부하를 건다는 것 역시 도술을 연마하는 것과 같아 보인다. 나만의 특별 병기를 만드는 훈련, 내 몸이 특별 병기가 되는 훈련이다. 나도 동서남북으로 신출귀몰할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