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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비행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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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Apr 19. 2019

안녕하세요, 자퇴생입니다

삶을 찾는 여행의 시작

대학 안 갈 거야?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사는 사람들, 혹은 비교적 최근까지 학생이었던 사람들 중에, 위의 문장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두 저 얘기를 들어봤다고 완벽히 장담하진 못하지만, 아마 안 들어본 사람보다는 들어본 사람을 찾는 편이 훨씬 쉬울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리라. 지금 말한 (가설 아닌) 가설이 비교적 설득력 있는 이유는 다들 알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도 그 얘기를 들어봤고, 어쩌면 해본 적도 있기 때문에.


내 주변도 마찬가지다.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올해 첫 중간고사를 준비 중인 여러 친구들은 메신저 창에 손가락이 저릴 정도로 많은 'ㅠㅠ'를 쳐서 나에게 보냈다. 그 길고 긴 넷상의 눈물 뒤에 붙는 글들도 엇비슷하다. 대부분 이런 내용이다. "집 가고 싶다", "자퇴하고 싶다", "시험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대학 안 가도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실제 문장은 훨씬 거칠고, 때때로는 눈물겨운(...) 진심까지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내 마음 역시 친구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쳇바퀴 같은 지독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내가 항상 열망하고 꿈꿔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두침침하고 흐릿했다. 학교와 학원과 집을 오가는 '더 안정적인 미래를 위한 지옥'은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그 '지옥'이 언젠가 다가올 '천국' 같은 삶을 맞이하기 위해 거쳐가는 굉장히 당연한 관문이라고 여겼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근데 그런 노력을 언제까지 했더라. 2018년 여름방학 전까지였나.



Drop the bea... Drop the school!


1차적인 결심이 서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벌써 인생의 반 가까운 시간을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며 극단적인 우울함 속에 살아왔던 나는, 이참에 그냥 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금기시되는 그것, '자퇴' 말이다.


교육계에 종사하시는 부모님의 반응은 비슷한 듯 달랐다. 매 순간 지쳐있던 나를 가까이서 지켜보던 엄마는 예상보다 쉽게 자퇴를 허락하셨지만, 아빠의 경우 나의 끈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오랫동안 강하게 반대하셨다. 두 분의 입장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두 분 다 나의 자퇴가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신다는 점이었다. 실은 그건 나 또한 같았다.


언제나 눈부셨던 보드 위에서 본 바다.


그러던 와중에 서핑을 배우게 됐고, 꽤 오랜 기간 그곳에서 머물렀다. 내가 품은 마음이 충동에서 비롯된 게 아닌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우연처럼 마주한 서핑샵에서의 시간들과 인연들은 놀랍고도 기적 같은 것이었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이 생각하는 행복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조금 더 본질적인 마음을 응시했고, 파도를 기다리며 그 마음들과 느릿하게 대화를 나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부모님께는 자주 자퇴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늘 하던 봉사활동을 전처럼 지속했고, 틈틈이 글을 썼으며, 연극 활동도 계속했다. 학교 뮤지컬 동아리에서 주연을 맡아 연습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도 바쁘게 흘렀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부모님이었다. 삶에 대한 확신이 생긴 시점이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내가 더 주저했다. 하지만 나보다도 내 삶을 더 고민했을 부모님은 어떤 망설임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상상조차 힘든 부모님의 열렬한 지지와 격려에 나는 내 18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2019년 2월 2일, 1학년을 마치고 2학년 진급을 확정하는 그 날, 교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나는 급식도 안 먹고 교복도 안 입는 자퇴생의 인생을 고른 것이다. 열여덟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학교에 제출한 자퇴원.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큰일 났다, 너무 재밌다


자퇴 이후의 삶은 그야말로 '평화'였다. 나는 갑작스럽게 이전보다 훨씬 바빠진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일을 다 해결하는 한편,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가치 있게 보냈다. 통학에만 왕복 2시간이 걸리던 학교 재학 중에는 피곤에 찌들어서 하지 못했던 일들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독서와 영화 관람, 글쓰기 따위가 그런 것들이었다. 서울 도심 곳곳을 혼자서 걸어 다니며 음악을 듣는 게 이토록 기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보며 두 배 더 큰 스트레스를 받던 부모님은 자퇴를 일찍 했어야 한다는 농담까지 건넸다.


그렇지만 평소에도 걱정을 달고 살던 나는 학교와 이별하고 비로소 얻게 된 황당할 정도의 행복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조금씩 불안해졌다. 내심 복잡하던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빠는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이왕 태어나서 사는 거, 네 길을 네가 직접 그려보는 거야. 네 삶을 네가 직접 디자인하는 거지."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어지러운 머릿속이 한 번에 정리됐다. 나는 내 행복에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필요도 없고, 그저 그 행복을 사랑하며 내 삶의 이야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적어 내려가면 될 일이었다. 다음 생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이번 생은 오로지 한 번뿐이니까.



이번 Track을 끝내, 자 다음 Stage


한편 지금까지 그만둔 거라고는 학원 몇 개 밖에 없는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보통 사회를 잘 안다고 자부하면서도 정작 나라는 사람은 잘 모르는 이들이었다. 반면 나와 어느 정도 생각을 공유했거나,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봐 왔던 사람들의 경우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1. 굉장히 잘한 결정이라고 말하거나, 2. 굉장히 잘한 결정이며 부럽다고 말하거나.


후자는 거의 친구들이나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짊어지고 사는 주변인들의 것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본인도 자퇴를 하고 싶다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어떤 친구들은 내 몫까지 신나게 즐기며 살라고도 했다. 자퇴를 입에 달고 살더니 결국 했냐며 축하 파티를 열어야겠다고 호탕하게 웃는 친구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대화는 모범생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은 친구의 반응이었다. 자퇴를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만난 그 친구는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더니 곧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껏 어느 정도의 자리가 보장된 삶을 위해 좋은 대학과 직장을 갈망했었다는 친구가 "당장 내일 내가 살아있을지도 알 수 없는데 나중에 행복하자고 지금 불행하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나야 하는 "무언가"는 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말이다.


자퇴 이후에 처음으로 쓴 앞으로의 생활 계획.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내 삶을 힘닿는 데까지 느끼고 즐겨볼 예정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원하는 '1도 안 당연한데 당연한 삶' 말고, 적어도 나에게만은 '진짜 당연해서 당연해져야 하는 삶'. 그 삶을 찾는 여정은 아마 매 순간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나는 그 여정 속의 나 자신을 “비행소녀”라고 명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게 고하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속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내 길의 작은 나침반으로 삼아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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