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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May 30. 2020

괜찮아, 내가 비록 투표 못한 02년생이어도

투표 가능 연령 하향 후 첫 국회를 바라보며

저는 투표권이 '그때는' 없었습니다


 시끌벅적 요란하던 2020년 21대 총선이 끝나고, 드디어 오늘 21대 국회가 문을 열었다. 거리에 꽃이 활짝 폈음에도 밖에 나가지 못해 슬펐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지, 이번 선거는 역대 총선 최고 투표율 66.2%라는 짜릿한 기록을 세우며 코로나 속에서도 본새나는 민주주의 국가의 진면모를 보여주었다. 선거 제도에도 중요하고 다양한 변화들이 많이 존재했는데, 특히 이런저런 어른의 이유(?)로 국민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선거 레이스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하지만 내 시선을 끈 변화는 따로 있었다. 40년 전부터 논의'만' 되던 투표 가능 연령 하향이 드디어 실현된 것이다. OECD 가입국 중 유일하게 만 18세가 투표할 수 없는 나라였던 대한민국은 이제 없었다! 이렇게 법도 개정 되었건만 300명 뽑는 4300만명에 들어가지 못한 2002년 4월 30일생. 네. 그게 바로 저예요.


 아마 독자 분들은 두 가지 때문에 멈칫 하셨을 것 같다. 첫째, 내가 고작 보름 차이로 투표를 못해서. 둘째, 내 생일이 정확히 한 달 전이라서.(사실 맨 처음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게 4월 29일, 즉 내 생일 바로 전날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늦어지다니…) 그러나 어떤 분들께서는 고작 주민센터 가서 투표 용지에 도장 한 번 못 찍었을 뿐인데 그게 뭐라고, 하며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다. 실제로 기나긴 세월 동안 만 18세의 투표가 불가했던 것도 어찌 보면 선거권, 더 나아가서 참정권에 대한 과소평가가 빚어낸 일이었다. 청소년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ex. 어린 애들이 뭘 안다고~ 등등.) 역시 한 몫 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만 18세가 투표를 해서 나라가 망한 케이스가 있나? 골똘히 되새겨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성숙한 어른들이 선택한' 정치인 선생님들께서 국회에서 대판 싸우고 소리 지르고 서로를 힐난하는 장면들이 익숙할 정도다. 태권 브이가 국회의사당 지하에 묻혀 있다는 기묘한 소문은 나름 귀엽기라도 하지, 그분들의 이런저런 소동은 재미도 감동도 없는 B급 코미디 영화 같… 여기까지 해야지.


 그리고 처음 이런 의문을 가진 건 중학생 때였다. 2014년, 전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던 괴로운 봄이 흘러가고 2년이 지나 우연히 광화문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이순신 동상 앞에 서있는 천막들을 마주쳤다. 천막들 중 한곳에 들어가보니 앉아계신 몇 분이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계셨다. 그분들은 노란리본을 만드시는 중이었다. 나는 그 때 깨달았다.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구나. 바뀐 건 무던해진 내 마음 뿐이구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변한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바로 대혼란을 불러온 '그분'의 정치 스캔들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다시금 떠올렸다. 바꾸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내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청소년 단체에 들어갔고,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국정 교과서 문제를 바라보며 깨달았다. 청소년의 목소리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유.

 

 우리에게는 선거권이 없었다.



 선거권이 뭐라고


 "참여하는 자는 주인이요, 그렇지 않은 자는 손님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그랬듯이, 나는 손님이 아닌 주인이 되어 더 나은 사회를 도모하고 싶었다. 근데 이게 웬걸. 투표도 못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여겨질리 만무했다. 청소년은  나라의 미래라고 하더니, 우리는 정말  그대로 '미래'일뿐 '현재' 되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국정 교과서를 만드는 일도, 교육감을 뽑는 일도, 교육 과정을 바꾸는 일도 어른들끼리 논의하는 게 끝이었으니,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였다! (내 친구는 본인들끼리 마음대로 바꾸는 대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과정을 다시 다니면 인정해주겠다고 했다. 완전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와 청소년 단체 동료들이 선택한 건 '선거 가능 연령 인하 운동'이었다. 성인이 되어도 생일이 지나야 투표가 가능한 이 기묘한 제도를 해결하려면 그게 답이었으니까. 물론 만 18세가 충분한 나이처럼 느껴진 건 아니었지만, OECD 가입국 중 유일하게 몇십 년 동안 만 19세로 선거 연령을 제한 중인 한국에서 처음부터 대폭 인하를 주장하긴 힘들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활동이 이어졌다.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의견을 피력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한껏 높아진 촛불집회 시기에 서서히 이슈화되던 만 18세 선거권 관련 인터뷰나 프로젝트들도 앞장섰다. 또한 나는 국회의원실과 몇몇 정당들이 함께한 18세 참정권 특별위원회에도 참여하며 영하의 날씨 속에서 다른 위원들과 국회 앞 농성도 진행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날카로운 말들과 따가운 시선들 뿐이었다. 인터뷰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어린애들이 나선다는 댓글들이 달렸고,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자 선거 연령 인하를 바라보던 관심 역시 시들해졌다. 단체 역시 자연스러운 해체 수순을 밟으면서 이야기의 장도 사라지고 말았다. 생각을 나누고 방향을 고민하고 함께 목소리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 게 참여에 굉장한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노란리본을 만들던 공간 역시 문을 닫으며 나는 한동안 내 삶의 주요한 일들 중 하나였던 '사회 참여'에서 멀어졌다.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

 

 그래도 역시 영원한 건 없는 걸까? 열다섯의 내 눈에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던 선거 연령 인하가 열아홉이 된 올해 드디어 실현되었다! 비록 총선이 내 생일보다 15일 일찍 실시되면서 나는 여전히 '투표 못하는 청소년'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았다. 집 앞 현수막에 쓰인 '2002년 4월 16일 이전 출생자'라는 문구가, 뉴스를 장식하는 선거 연령 인하 관련 보도가, 생일이 빨라 투표권을 행사한 친구들의 인증샷이 충분히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눈에 띄게 긍정적으로 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괜히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비록 그 당시에 결실을 맺지 못했어도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21대 국회의 시작과 함께 이 글을 올리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아주 작은 개개인의 소망이 모이면 반드시 무언가 바뀌기 마련이다. 약한 단비와 작은 햇살과 옅은 바람이 싱그러운 들꽃을 피어내는 것처럼, 일단 '한다면' 사소하지만 반짝이는 변화는 분명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게 계속, 소중한 희망을 품에 안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서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평범한 국민들과 오늘부터 근무 시작한 국회의원분들에게서도. 칼바람을 맞으며 '그래도 나는 외칠 거라고' 다짐했던 열다섯의 나처럼 말이다. "당연히 투표 못한 02년생"이 아니라 "아쉽게 투표 못한 02년생"으로 만들어준 나의 조그마한 의지야, 고마워!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혹여 생각이나 지향하는 바가 다르시더라도,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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