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 아니어도 생각나는 은인들
가끔 "어차피 자퇴했을 고등학교를 굳이 진학했던 걸 후회하진 않니?" 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는 벌써 1년 넘게 지났는데도 자퇴했다는 사실이 어색하다. 아니, 자퇴하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한데 악착 같이 1학년 과정은 마쳤음이 신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난 정말 말도 안되는 학교 생활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자퇴 직전까지 쭉. 중학교 2학년에는 결석 일수가 너무 많아 유급 위험마저 있었고, 일년에 서너 번 이상은 입원하는 등 엉망진창으로 시간을 보냈다. 물론 건강 문제 때문이었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남들 다 하는 학교 생활을 나만 어려워하는 것 같아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나로 인해 고생하는 주변인들과 때때로 느껴지는 의심 가득한 시선들. 힘겨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쳐도 돌아보면 늘 제자리였다.
그렇게 4년 간의 시간 동안 나는 그야말로 '문제아'의 삶을 살았다. 툭하면 아파서 쓰러지거나 방안에 틀어박혀 우는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만한, 혹은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삶에 무한한 애정을 가진 채 살아가는 중이다. 아무리 힘든 순간이 와도 최소한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고 그렇기에 인생을 살아볼만 하다는 생각은 항상 기본 전제처럼 내 머릿 속에 새겨져있다. 유약했던 나의 내면에 힘이 생기도록 기반을 다져준 사람들, 그게 바로 나의 '스승'들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를 떠나 입학한 중학교는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로 가득한 곳이었다. 자존심이 세고 매사 리더가 되어야 직성이 풀렸던 나는, 언젠가부터 위축된 표정으로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끌려다니기만 했다. 그러다 처음 학교 화장실에서 쓰러졌던 게 2학년 여름날이다. 그 이후부터 이유를 알기 힘든 실신과 원치 않는 입원이 이어졌다. 반 년 가까이 원인을 찾기 위해 애쓰고 나서야 부정맥과 비슷한 증세처럼 보인다는 소견을 받을 수 있었다. 나를 진단해주시던 교수님은 극도의 스트레스와도 상관 관계가 존재할 거라며 정신과 방문 역시 병행하기를 권고하셨는데, 이미 몇 년 전부터 정신과 상담을 이어오던 나는 결국 대학병원으로 옮겨 더 집중적인 치료를 받게 되었다. 강력한 약물들을 복용하자 부작용도 나타났다. 고등학교 진학 후 갑자기 살이 찌고 피부가 안 좋아진 건 물론이고, 우울감이나 공황 증세가 조금 사라진 대신 무기력과 더불어 주체하기 어려운 졸음에 학교 생활이 어려웠다. 특히 기면증 수준의 졸음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수면유도 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먹고도 쉽게 자지 못하다 새벽 서너시 즈음 되어서야 피로에 곯아 떨어지면 아침에는 당연히 피곤함이 밀려왔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한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등교해도 수업시간에는 꾸벅꾸벅 졸기만 했다. 그게 싫어서 아침에 지하철을 타기 전 커피를 사서 마시는 습관이 생겼지만, 몸에 잘 맞지 않는 커피를 마시니 안 그래도 멀쩡치 못한 심장 박동이 올라가 과호흡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나는 정말 대책 없는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내가 버텨내야 하는 건 단순한 건강 문제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아픈 척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힘겹게 무시해야 하는 것도, 함께 피폐해져가는 가족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도, 꿋꿋이 나아가지 못한 채 더 깊은 어둠으로 빠져드는 나를 구해주지 못한다는 것도 전부 괴로웠다.
그리고 그 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말처럼 나타난 선생님들은 전부 단순한 사제 지간을 넘어 '한 명의 인간'인 나를 붙잡아주셨다. 형편없는 인간이라며 나 자신을 깎아내리던 내게 "넌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일깨워주신 건 물론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를 지지해주셨다. 삶의 대부분을 슬픔과 우울에 휩싸여있는 사람의 곁을 지킨다는 게 얼마나 괴롭고 답답한 일인지 이제는 무척 잘 알기에 그 당시의 나에게 선생님들이 보내주신 굳건한 애정과 응원을 떠올리면 마음이 뭉클해질 정도이다. '우리는 절대 널 놓지 않아, 언제나 네 옆에 있을 거야.'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 뜨거운 사랑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더 기적 같았던 건,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그런 분들이었다는 점이다. 담임 선생님을 비롯해 나를 가르쳐주신 교과 선생님들과 나 때문에 고생하신 보건 선생님, 상담 선생님들까지. 내 삶의 시공간이 무너진 폐허와도 같았을 때 나타나 함께 길을 걸어주겠다며 손을 내민 그 분들의 크고 작은 애정들이 나를 얼마나 위로해주었는지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난 절대로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은 웃으며 회상하지만 그 때는 매일 매일이 지옥 같았다. 나 자신이 한심하고 밉다가도 한편으로는 너무 불쌍하던 그 4년의 시간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큰 원천이 되긴 했으나, 다시 겪고픈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생활을 이어나간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 있는 이유는 나보다 더 내 삶을 사랑해준 귀중한 인연들 덕분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진다"는 노래 가사가 나에게는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깊은 행복을 느낀다. 처음 학교에서 쓰러졌던 날, 집 밖으로 나가기 무서워 방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날,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해 쉬지 않고 울었던 날, 고1 종업식이 끝나고 자퇴서를 내던 날…. 그 파란만장한 소용돌이에 난파당한 배 마냥 이리저리 흔들리던 당시의 나에게는, 어쩌면 '문제아'보다는 '행운아'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문득 얼마 전 연락을 드린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메세지가 생각난다. 카카오톡에 스승의 날이 선생님의 생신이시라는 알림이 떠있길래 작은 선물과 문자를 보내드렸는데, 길고 정성스런 답장이 돌아왔다. 진심이 담긴 문장들 사이에서 나를 울린 한 줄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기 전, 나 역시 모든 스승들께 나의 마음을 전한다.
당신께서 저를 사랑해주셔서, 저도 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따금씩 어둡고 삶을 살아가는 걸 힘겨워하던 너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과 비전을 찾아주고 싶었던 거 같아.
마음이 움직인 것도 우연은 아니니까.
2017년 너는 나라는 교사의 존재 이유 중 하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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