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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즈 Mar 17. 2020

내 나이 18세, 촘스키에게 이메일을 썼다

겁없는 자퇴생이 격한 감동을 받았을 때

 나는 집착이 심하다.

 아니, 이렇게 표현하니까 무척 이상해 보이지만 나쁜 의미의 집착은 아니다. 나는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꽂히면 하나만 파는' 스타일이다. 흥미가 없는 일은 너무 쉽게 놓아버려 끈기 있다고 얘기하기엔 좀 뭣하고, 그냥 일상적으로 덕질한다는 표현이 매우 적합할 것 같다. 아이돌부터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연극과 뮤지컬, 세계 각국의 배우들과 뮤지션들, 종목별 운동선수들과 팀들(축구, 배구, 야구 등)까지. 이쯤 되면 덕질은 내 인생이요, 내 인생이 바로 덕질이다.


 그래도 내 모든 덕질의 최고봉을 꼽으라면 바로 '학자'일 것이다. 난 기본적으로 한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 몇 달 내내 그 분야의 책을 달고 사는데, 그 과정에서 꼭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생각을 가진 저명한 학자들의 책도 만나게 된다. 그럼 무의식적으로 이 학자의 모든 저서를 섭렵하고 싶다는 의지가 불타오르는 것이다. 도서관에 가서 빌려 읽으려고 하다가도, 몇 페이지 넘기다 보면 이런 좋은 책을 사지 않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고 홀린 듯이 서점으로 향한다. 그리고 결국 책을 산 다음 돌아오면 엄마는 말한다. 야, 빌려 읽으라니까!


 19년도 여름, 한 달 간의 동남아시아 배낭여행 후 내가 새롭게 관심이 생긴 건 바로 제노사이드(genocide)였다. 나름 역사를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나는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여행하며 나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충격에 빠졌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유럽사와 동아시아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역사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물론 서아시아, 동유럽, 아메리카의 역사 등을 얼마나 몰랐는지도 이번 동유럽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느꼈다.) 특히 슬프고 끔찍한 전쟁과 제노사이드 등은 이제껏 너무 많이 모르고 살아온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제노사이드와 관련된 책들을 차례로 읽어나갔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일들이 불과 몇백, 몇십 년 전에 존재했고 현재 진행형인 사건들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견디기 어려운 책들도 있었지만 더 많이 읽고 아는 것이 무지에 대한 반성이고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학살의 정치학>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제노사이드와 정치적 전략의 연관성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나던 시점이었기에 제목을 보자마자 메모를 해둔 후 다음 날 도서관으로 가 책을 빌려왔다. 저자는 노엄 촘스키와 에드워드 S. 허먼, 데이비드 페터슨이었다. 조금 어려워 보이긴 했지만 겉표지부터 심상치 않은 게 벌써 흥미로웠다.


읽는 내내 충격의 연속이던 노엄 촘스키, 에드워드 S. 허먼, 데이비드 페터슨의 <학살의 정치학> 중.

 그리고 나는 그 책을 네 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 임팩트가 어마어마했다. 내가 읽었던 다른 모든 책들에 대한 관점이 뒤바뀌었고, 제노사이드를 바라보던 시야 역시 전혀 다르게 넓어졌다. <학살의 정치학>은 전쟁과 학살뿐만 아니라 전후의 모든 상황들을 강대국이(특히 이 책에서는 미국에 대해 다룬다.) 어떻게 조종하는지, 언론은 존재하는 정보들을 어떤 방식으로 은연중에 왜곡시키는지 아주 논리적이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책이었다.


 특히 노엄 촘스키의 글은 눈에 띄게 놀라웠다. 정확하게 논거를 입증하며 세련된 방식으로 서슴없이 정부와 언론을 비판하는 그에게 나는 단숨에 매혹되어 버렸다. MIT 명예교수에 현대 언어학의 틀을 만든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식인에게 감히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기다는 건 알지만, 그는 진짜 대박 쩌는(…) 천재였다.


 그다음부터 나의 촘스키 덕질이 시작됐다.

 탁월하게 비상한 학자가 세상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데에 두려움이 없다니! 꽂히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파멸전야>, <공공선을 위하여>, <불평등의 이유> 등 책을 읽을수록 나는 점점 촘스키의 광팬이 되어갔다. 심지어 90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그는 꾸준히 저서를 내고 매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의하는 믿기 힘든 사람이었다. 당연히 나보다 더 촘스키를 잘 아는 부모님에게도 촘스키가 얼마나 대단한지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그러다 문득 나 혼자 이렇게 존경하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학자에게 나의 거대한 팬심을 전하고 싶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정신이 나간 것 같다.) SNS도 열심히 찾아봤지만 촘스키가 직접 운영하는 계정은 없었다. 그렇게 새벽 내내 머리를 열심히 굴리던 중 문득 생각난 게 있었으니…! 바로 이메일이었다.


MIT 사이트에서 노엄 촘스키를 검색했다.

 나는 그 즉시 MIT 사이트로 들어갔다. 고등학교에서 소논문 프로젝트 수업을 할 때 모 대학의 교수님을 인터뷰했었는데, 그 당시에도 학교 사이트에서 이메일 주소를 찾아 연락을 드렸기 때문이었다. 내 예상대로 촘스키가 교수로 재직 중인 MIT 사이트에는 그의 이메일 주소를 비롯한 공식적인 연락처들이 나와 있었다. 바로 이메일 주소를 복사해 붙여 넣기 한 후, 번역기 어플 두 개를 상단에 띄웠다.


 이메일을 쓰는 데에는 예상외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머릿속에 정확히 어떤 내용을 써서 보내고 싶은지 입력되어 있었기에, 나는 내 짧디 짧은 영어 실력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 다음 고급 어휘나 헷갈리는 문장들은 번역기를 여러 번 돌려가며 수정했다.


촘스키에게 보낸 이메일. 멀리서 보낸 걸 강조하기 위해(…) 괄호 안의 문구를 넣었다.

 그 결과 촘스키에게 보낼 이메일이 완성됐다. 나는 이메일을 통째로 몇 번이나 다시 번역하고 검토한 후 숨을 한 번 고르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무모한 행동이었고 답장은커녕 이메일을 읽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보내지 않으면 답장이 오지 않을 확률이 100프로인 반면 보내면 확률이 50프로로 급격히 떨어지니 보내는 편이 훨씬 나은 건 당연했다. 이메일이 전송된 걸 확인하니 이제야 슬슬 잠이 밀려왔다. 컴퓨터를 끄고 눕자마자 나는 바로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잠에 든 후 고작 네 시간이 흐른 뒤였다. 평소답지 않게 짧은 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건 당연히 촘스키의 답장에 대한 생각이었다. 근데 그래 봤자 이메일을 쓴지는 4시간이 좀 지났으니 이렇게 빨리 답장이 왔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메일 앱으로 들어갔다.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가슴이 엄청나게 빨리 뛰었다.


그리고….





 세상에 신이시여.


 메일을 보낸 주소를 정확히 일곱 번 다시 읽은 다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치 로또에 당첨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촘스키였다. 뒷구르기 백 번에 공중제비 열 번을 하면서 봐도  이메일은 진짜 촘스키가 보낸 이메일이었다!


 나는 곧장 부모님에게 사진을 보내고 인스타그램에도 이 영광스러운 소식을 업데이트했다. 핸드폰과 카카오톡 배경화면도 바꿨다. 긴 답장은 아니었어도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18년간의 인생 중 느낀 역대급 행복감에 급기야 방에서 춤까지 췄다. 비록 이미 90세가 넘은 그에게 미래의 만남을 약속받지는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역시 아예 해보지도 않는 것과 해보는 것은 달랐다. 무모하게 이메일을 보낸 새벽의 나에게 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요즘은 노엄 촘스키와 데이비드 바사미언의 대담집인 <세계는 들끓는다>를 읽는 중이다. 아직도 읽지 않은 촘스키의 책이 잔뜩 쌓여있다는 점이 나를 신나게 만든다. 앞으로도 그의 거대한 고민과 생각들에 감탄할 날이 많이 남았다. 확신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언젠가는 그를 직접 만나 "당신이 제 생각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비옥한 지혜의 토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아마 그 날이 오기 전에 내 카카오톡 배경이 바뀔 일은 없을 것 같다. 만약 바뀐다면 촘스키와 찍은 셀카이기를!




 개인적인 팬심이 가득 들어간 글입니다. 혹여 책과 해당 학자, 그리고 저와 반대되는 입장이 있으시더라도, 다름을 인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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