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ready Gold Jun 17. 2020

벽간 소음 탈출(?)기

응답하라 옆집사람! 아.. 아니야 응답하지 마.......

서울에 올라온 지 16년 만에 전세로 고층 오피스텔에 이사하던 날은 잊을 수 없다.  

한눈에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시티뷰에 창문 끄트머리에 찰싹 달라붙으면 저 멀리 한강도 조금 보이는 뷰 맛집. 설레발도 엄살도 어딜 가서 빠지지 않는 나는 당장에 오바를 떨며 로봇청소기 이름을 '한강뷰'로 바꿔 놓았다. 이제 난 뷰(view)-자야!   


아무것도 모르고 상경했던 시골 아이가 이 매정한 도시 틈바구니에서 버티고 버텨 전세 마련이라니!

너무 감격해서 밤에도 잠이 안 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알 수 없는 소리가 밤새 들려오기 시작했다. '도도도도독'. '다다다다닥'


처음에는 너무 궁금해서 별별 생각을 다 했다.

'흔히 프리메이슨에서 세뇌당할 때 쇠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는 데 혹시 그런 것은 아닐까?

아니 잠깐만 그런데 걔네가 나를...? 왜....? 유명 조직 이래매....'  하던 어느 날 불현듯 깨달았다.

이건 벽간 소음이구나!!!!!!! 프리메이슨은 나를 세뇌하려 들지 않았다. 다시 생각하니까 조금 아쉽네..


경비실에 내려가 '핸드폰 키보드 칠 때 혹은 기계식 키보드 사용할 때 같은 '다다닥다닥' 소리가 난다,

혹시 그렇게 사용하고 있거나 비슷한 소리가 나는 걸 쓰신다면 조금만 조용하게 사용해 주십사' 옆집 분께 이야기 전달을 부탁드렸다. 나의 이 정중한 어투와 간곡한 호소가 숨결까지 재연되어 전달되길 바라며..... 하지만 그 날 전해 들은 후기는 이러했다.  


"그 사람이 화가 나서 내려와서 '자기 핸드폰 소리 안 켜고 산다'고 '집에서 핸드폰도 못하는 게 말이 되냐'라고 하면서 썽을 내더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저의 공손한 손짓과 고르고 고른 어휘 선택, 간절함을 나타내는 팔자 눈썹이 전달됐다면 그런 결과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을 텐데요...? 앞뒤 문맥을 조금 더 파악해 본 결과 나의 간곡한 호소는 무뚝뚝한 경비아저씨의 필터를 거쳐 "집에서 핸드폰 하지 마세요"로 엄청나게 압축되어 옆집 분께 전달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럼 경비실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방법은 일단 물 건너갔고... 이걸 어쩐담? 을 열심히 고민하는 사이에도 다닥다닥 소리가 들렸다.


흔히 층간(벽간) 소음에 시달리시는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한 번 귀가 트이니까 미치겠다'고. 귀가 트이려면 6개월째 하고 있지만 아무런 효과가 느껴지지 않는 영어 뉴스 리스닝에서나 트일 것이지! 어쩌다가 이런 조그마한 소리에 귀가 트여서 밤새 혼자 괴로워하게 된 걸까.


멈추지 않고 다다닥 소리가 들려오는 벽 앞에서 이 난관을 타개해 나갈 방법을 유심히 고심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도 '기계식 키보드'로 글을 써 볼까?


이왕 글을 쓰려면 아이템부터 근사하게! 이왕이면 삐까뻔쩍한 기계식 키보드가 있으면 좋잖아. 키보드 소리는 뭐... 타인과 같은 경험을 한다는 건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기도 하니까.... 마! 나도 타자 빠르거든!!!? 듣고 있나 마!!!! 뭐 1순위로 복수의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 순 없고 복수심은 오렌지 주스에 들어간 오렌지만큼은 있었다고 치자. 아주 쬐에에에끔? 개미 눈물만큼.... 차라리 노래를 트세요.... 지난주 일요일 오후에 틀었던 재즈 음악 좋더구먼....


그러니까 이건 말하자면 20세기의 끄트머리와 21세기, 건축사와 시공사와 대한민국의 건축법 규제와 기계식 키보드 청축(혹은 적축인가 잘 모르겠다 검색해서 소리 제일 크게 난다는 걸로 샀다)이 낳은, 시대와 테크가 만나는 곳에서 탄생한 가장 시대성 있는 글일 것이다. 시대성이라는 단어 입장에서는 왠지 거창해 보이는 단어 치고 '도도도독' 이라는 작은 소리 앞에 붙어 있기에 조금 머쓱해 할 수도 있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 키보드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차게 시. 대. 성이라는 단어를 때려 박고 있다. 타닥!


어느새 일개미로 일한 지 10년 차, 하루의 반 이상, 1년의 거의 대부분을 울고 웃게 하는 회사와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고 브런치를 개설하였는 데 나를 요새 사로잡고 있는 것도, 펜을 아니 기계식 키보드를 잡게 한 것도 모두 벽간 소음인 관계로 벽간 소음으로 첫 포문을 열어본다.


앞으로 쭈욱 이어질 벽간 소음 (아직은 못했지만 언젠가 하고 말 거야) 탈출기!!

과연 이 오피스텔은 일방향 도도독도독에서 쌍방 도도도 도독 다다다 다닥 오피스텔로 거듭날 것인 지?


To be countinue................................................................................................................................! 

마침표가 많은 이유는 이제 다들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키보드 연타 때리기 좋기 때문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