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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라이터 Feb 26. 2018

생각대로 도쿄,
안 생각대로 후쿠오카

2017년, 두 번의 여행에서 배운 점

도쿄, 그곳은 나의 막연한 꿈이었다. 후쿠오카, 그곳은 나의 명료한 안식처였다. 

내 가슴 한가운데에서 꿈보다 안식처를 더 원하고 있었다. 




4월의 도쿄, 이 곳은 역시 서울인가


지난 도쿄의 기억은 '도시'와 '서울'이었다. 애초에 이 곳에 오게 된 가장 큰 목적은 도쿄가 일본의 수도라는 점, 휘황찬란한 빌딩 속에서 일본 고유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동시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역한 기대감이 컸던 게 사실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나에게 첫 여행지로서의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5박 6일의 여행 내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 탓에, 일본 사람들에 익숙해지며 일본 사람들에 지겨워졌다. 재작년 서울로 짧은 여행을 갔을 때의 기억이 비상등처럼 스치듯 지나갔다. '이 곳은 역시 서울인가'



시나리오 그 모습 그대로, 시부야, 신주쿠, 롯폰기


가장 먼저 간 곳은 수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도쿄타워였다. 300m 앞에서 본 도쿄타워는 굉장했고, 100m 앞에서 바라 본 도쿄타워는 익숙했고, 바로 눈 앞에서 바라 본 도쿄타워는 평범했다. 생각 외로 한산한 중심부에서 기억이 나는 건 야경보다 메밀국수. 이걸 먹기 위해 이곳에 온 샘이 되어버렸다. 동시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영화 '도쿄타워', 오다기리 죠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도쿄타워와 이후에 도착한 롯폰기에서의 실망을 뒤로한 채, 패션의 성지라고 불리는 그곳, 바로 시부야로 향했다. 시부야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들'이다. 옷차림새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이 곳을 1순위로 정했을 정도로 관심이 컸었다. 도쿄의 여행 중 개인적으로 이 곳이 가장 일본스러움이 묻어나는 곳이었던 것 같다. '갸루'라고 불리는 아주 진한 화장을 한 여성들과 일본말로 호객행위를 하는 흑인들. 코걸이는 기본이고, 확실한 언어로 표현하자면 '충격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생각지도 못한 상의와 하의 간의 조화로움에 사로잡혀 1시간 동안 패션 스트리트 거리에서 멍하니 고개만 들고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사실 조금 더 충격적인 곳은 오모테산도였다. 건물의 인테리어를 사랑하는 나로서, 오모테산도에서의 고급스럽고 아주 매력적인 공간이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쇼핑거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인 신선함의 기운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골목 안을 쉴 새 없이 누비게 된 이유라고나 할까. 무언가 그들만의 가치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 가치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설계해 건설된 멋진 인테리어 속에 '혼'과 같은 그들의 삶의 방식과 생각이 투영된 것처럼 보였다. 



크루져 타고 오다이바로 향하는 길


아사쿠사에서 오다이바로 가기 위해서 수상 크루져를 타면 아주 편리하게 도착할 수가 있다. 지금도 주위 사람들에게 도쿄 여행 코스 중 꼭 한 가지를 첨부해달라고 한다면, 오다이바로 갈 때는 수상 크루져, 도쿄로 다시 올 때는 유리카모메를 적극 권장한다. 누구나 여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환상 같은 꿈을 꾸곤 한다. 그곳에서 우리가 소위 자주 내뱉는 '힐링' 같은 그것이 바로 이 수상 크루져 안에서 벌어진다.


호텔에서 티비를 켜니, 하도 하도 오다이바가 나오길레 한번 가봤다. 때마침 축제가 한창.
독일스러움의 축제가 한창인 이 곳. 하루종일 비어를 외치며 축제를 즐겼다. 마치 독일사람처럼 놀고 싶었던 일본사람들을 본 느낌?


자유의 여신상은 신기했지만 별 거 없었고, 무엇보다 축제기간에 갔던지라 (독일 맥주축제가 한창이었다) 독일 같은 느낌을 따라 하려는 일본인들의 모습에 한동안 매료된 점은 있었다. 일본인들은 사대주의적인 성향이 좀 강한가 보다. 왜냐하면 축제에서의 모습은 마치 '난 독일인이 되고 싶어요. 독일 맥주가 제일 맛있어요'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자신들의 고개를 숙이고 상향적인 가치관을 가진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서툴러 보이지는 않는 편인가 보다 생각했다. 



진정 원하던 바로 이 곳, 후쿠오카의 10월


일생생활에 지쳐있던 나는 개인적인 큰 일을 양껏 치르고 곧바로 후쿠오카로 향했다. 애초부터 관광이 절대 아닌, 휴식 같은 열정에 덧붙여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기차여행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일본의 규슈지방은 특히 기차교통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다. 5일간의 패스권을 내 몸속에 지니며 북규슈 지방 곳곳을 누렸다. 하카타역을 비롯해 후쿠오카 타워, 모모치 해변, 벳푸, 오이타, 유후인, 나가사키 등 되도록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기차여행은 정확히 적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아몬드처럼 빛났던 나가사키 항구


북규슈 지방을 6박 7일 동안 여행하면서 숙소를 3군데로 정했다. 특성상,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지겨운 숙소만 경험하는 것보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3군데로 정하며 여행 내내 새로움을 만끽하고 싶어서였다. 그 첫 번째 숙소지로 나는 발길을 향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가사키의 첫인상은 정말 좋았다. 바다 가까이 살고 있는 나로서는, 왠지 너무나 익숙한 항구의 소금 냄새가 내 코끗을 진동시켜도 샤넬의 향수보다 더 향기로웠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거지만, 나는 그곳에서의 나가사키 짬뽕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때마침 앉은 곳은 BAR형식과 같이 주방에서 뚝딱 요리를 제조해내는 셰프의 모습과 엄청한 화염, 그리고 그 옆에서 묵묵히 관찰하며 배우고 있는 초년생 셰프까지, 다 볼 수 있는 특별한 곳에 앉게 된 것이다. 곧이어 도착한 이 짬뽕을 먹기 위해 이 곳에 온 것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집 근처에서도 이 정도 맛의 짬뽕을 먹어볼 수 있는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곳, 일본, 나가사키에 와 있었다. 그 맛을 평가하자면.. '향연'에서의 플라톤 이야기가 있듯이 나는 이름을 뜬금없이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맛의 향연, 나가사키!'



료칸의 벳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유후인


벳푸와 유후인은 매우 가까이 위치해 있다. 숙소를 벳푸로 잡은 이유가 바로 유후인을 편하게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성비 최고의 료칸에 이틀 머물게 된 나는, 일본스러운 온천도 경험해 보고 타카타를 입어보기도 했다. 유후인에서의 하루는 '여유'였다. 보통 세네 시간 정도 관광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나는 이곳에 오전부터 오후늦까지 머무르며 수많은 상점과 카페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분명히 이런 점은 도쿄 때와는 다른 나의 모습이다. 그곳에선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혜매이다 끝이 났지만, 이 곳에선 집중하고 또 산책한다는 마음가짐로 여유를 가지며 돌아다녔다. 유후인은 사실 엄청나게 이쁘고 괜찮은 상점들이 즐비한데, 이 것이 어쩌면 다 일 수도 있다. (온천을 가보지 않아서 시야가 좁아진 것 같다) 그렇지만 각 상점을 천천히 하나하나 둘러보며 일본 같은 소품들을 즐길 수 있었다. 


유휴인의 골목을 깊게 걸어가다, 2층 테라스를 겸비한 카페에서 따뜻한 한 잔. 물론 코코아 였지만. 



그냥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모모치 해변


모모치 해변은 후쿠오카 타워 바로 옆에 있다. 오후 2시쯤 도착한 이 곳은 '환상' 그 자체였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바다 위에 떠 있는 궁전 같은 것이 너무 광란했고 멋져 보였다. 왁자지껄 자유스러운 분위기는, 시골적인 느낌과 동시에 낭만이 서려있는 곳 같았다. 지금도 가장 후회하는 장면은, 내가 왜 그곳에서 맥주 한 캔 마시지 않았는가 이다. 지금도 아주 미스터리적인 미스터리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도전하지 않았을까.


바다 위에 떠 있는 궁전의 모습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배구시합'이었다. 뭐, 해변가에서 네트를 설치해놓고 공이 오면 점프하고 상대편은 리시브하겠지, 그런 짐작 같은 하기 위해서 잠시 벤치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쉽게 생각한 나의 오산은 금방 탈로가 나버렸다.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점프하고 리시브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미끄러지면 손을 잡고 다시 일어났다. '노력'과 '열정'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생각대로 도쿄, 안 생각대로 후쿠오카



도쿄, 오모테산도의 카페에서 일상을 계획하다


됴쿄 여행의 목적은 다시 계획을 잡는 거였다. 사라지고 있던 나의 열정에 불을 다시금 활활 타오르기 위함이었고, 성화봉이 하늘 끝을 찌를 정도로 그 계획은 성공했다. 커피를 입에 머금으며 깔끔한 펜을 한 손에 부드럽게 쥐어 잡고 노트에 계획을 써 내려갔다. 지금도 그때 썼던 노트를 한 번씩 되돌아보면 그때가 다시 떠오른다. 생각대로, 나의 꿈을 다시 확인하고 계획하는 바로 그 순간들이.


무생각이 오히려 유생각으로, 후쿠오카의 푸른빛


북규슈 지방의 여행에 앞서, 사실 큰 기대를 갖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머릿속에 복잡하게 잔재되어 있던 제해들을 말끔히 씻기 위해, 기차여행을 하게 되면서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고 노트에 글을 적었다. 기대 이상이라는 말보다, 생각하지도 못한 배움과 깨달음을 후쿠오카의 기차 안에서 체득했다. 일상의 기쁨과, 소중함 같은 것들이 현실로 와 닿는 순간이었다. '그냥 조금 쉬다 오자'라는 안일한 목표가, 어쩌면 지금 현재 나의 일상에서 스스로의 위안과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준 큰 동력이 되었던 건 아닐까.



동력을 위해 여행하며, 동력이 곧 일상의 새로운 여행이다.





*writer, poet /  즈음: 일이 어찌 될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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