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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라이터 Feb 24. 2018

휘황찬란한 맨몸의 감정들

이상하리만치 전율이 느껴져 오는

내 몸이 스스로 반응하는 걸 느꼈다. 눈을 감고 내 몸에 집중했다. 보이는 것이 없어, 그곳은 더 휘황찬란했다. 마치 카우보이가 연신 균형을 잡기 위해 좌, 우 몸을 자연스레 흔드는 것처럼.




몸에 바짝 달라붙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오랜만에 해변을 걸었다. 예전의 아드레날린을 기억하고 그때의 순간을 되찾아오고 싶기도 했기 때문인데, 몇 번이고 이 곳을 걸었지만 항상 느끼는 것은 매 번 새롭다는 점이다.



시작처럼 산뜻했던 1코스


광안리 해변가에서의 1코스는 '시작' 지점이다. 오전 10시에 도착한 이 곳에서 젊음과 노련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백발이신 할아버지, 깔끔한 코트를 입은 20대 여성, 선글라스를 끼고 러닝 중인 금발의 외국인까지, 축제 같은 이 곳에 내가 지금 속해 있음을 감사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 곳에 온다. 사투리가 표준말인 이 곳에서 서울말을 쓰는 어색한 대학생들은 이 추운 늦겨울에도 양말을 벗고 살며시 차가운 물에 의지해본다. 자유롭게 모래밭에 앉아서, 전혀 처음 온 것처럼 보이지 않은 책을 보는 외국인도 보인다. 암묵적인 축제를 체험하며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금련산3번 출구역을 돌아나오니, 저 멀리서 광안리의 에메랄드 캐슬이 보인다


빨간색으로 통일된 하트분수대가 여기저기서 광안리의 봄을 알린다 


겨울이라 무척 고요했던 2코스


해변을 따라 끝부분까지 쭉 걸어가다면 막다른 모퉁이가 보인다. 그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또 다른 코스가 시작된다. 2코스의 시작은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두발을 움직이다 보면 그 유명한 민락 수변공원을 볼 수가 있다. 작년 8월의 여름, 이 곳은 엄청난 사람들로 붐볐다. 쌀쌀한 겨울이라 이 곳을 지키고 있는 수호신 인어공주의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어떻게 보면, 2코스는 3코스를 가기 위한 중간 관문이자, 벤치에서 광안대교를 가장 가까이서 관람하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구간이다. 물 한 모금과 초코바를 하나 꺼내 먹으며 이번 러닝의 절정이 될 3코스를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



신선놀음 같았던 마지막 3코스


사실상 나는 이 곳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기 위해 이렇게 걷다가 뛰다가 하는지도 모르겠다. 3코스의 모습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바다 위에 놓인 다리를 걷는 느낌일 것이다. 그만큼 이 곳은 환상 그 자체이다.


3코스의 입구지점. 나에겐 많은 추억이 깃든 곳이다. 한땐 나에게 힘들고 지칠 때 용기이자 희망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조금만 걸어가다 보면 실제로 나의 심장이 온 세상 사람들이 들릴 정도로 두근거린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힘듦을 느끼기 마련이다. 나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생의 바닥에 있었다고 느낄 만큼 힘듦의 고초를 겪었다. 하는 일도 잘 되지 않고, 몸과 마음이 황폐해져 가며 스스스로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무엇이었지 기억조차도 나지 않을 만큼, 어렵고 작고의 시간을 잠깐 보냈었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때쯤, 우연같이 이 곳에 내 발길이 다다랗는데, 그때 처음 이 곳을 거닐다가 지금까지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나도 모르게 항상 이 곳에 오게 된다  희망이자 용기였던 이 곳에서, 가장 기분이 좋았던 순간의 감정들이 내가 애써 찾기도 전에 스스로 튀어나와 내 가슴을 마구 휘젛으며 뛰게 만든다. 


앞을 향해 걷다가 나도 모르게 뒤를 다시 돌아보았다. 하늘 높이 닿을 것 같은 저 모습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마지막 3코스를 지나치게 되면 아시아에서 가장 큐모가 크다는 신세계백화점을 볼 수가 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곳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내 몸속의 전율이란 무엇인가


몸은 어떻게 보면 근육과 인대, 신경 같은 것들의 조합이라 볼 수 있다. 그 수많은 조합들이 균형을 이루면서 크고 강한 모습도 내부적 혹은 외부적인 요소들의 표출에 의해, 우리들은 걷도 뛰고, 움직일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 않았거나, 해오지 않았던 행동을 갑자기 처음 하게 된다면, 몸 들은 그것에 대한 모습을 인지하기 위해 수많은 조합들을 찾아나간다. 처음 맞닥드린 상황에서 내 몸들은 자유자재로 유연적이게 반응에 반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처음이 두 번째가 되고, 세 번째, 네 번째 등 계속 쭉 이어나간다면, 나의 몸들은 이미 경험해본 매우 익숙한 반응들에 대해 나에게 알려주고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부정적인 감정을 상쇄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것인데, 나는 이 방법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나에게 있어, 3코스란 '가장 행복하며 긍정적인 그 순간의 감정'들이 표출되는 첫 느낌이 서려있는 곳이다. 혹여나 좋지 않은 일이 있거나 마음이 복잡해질 때, 나만의 가장 긍정적인 기운을 느꼈던 바로 이 곳에 다다르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감정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짓누른 채 내 가슴속에 위치한다. 내 몸이 나에게 말을 하는 것처럼, 내 감정은 또다시 아름다웠던 첫 느낌을 마구 다시 끄집어내어 온 몸에 전율이 돋게 만들어주는 작용 같은 걸 하는 것 같다. 


내가 3코스를 걸으며 느꼈던 아주 좋았던 감정들이 있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살면서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때가 있을 것이다. 꼭 운동이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와 즐겁고 유괘 한 대화의 기억이 있거나, 꼭 내 취향인 음식을 먹었거나, 가장 인상에 깊었던 나만의 장소에 가보는 등 그런 소소한 행동을 생각하거나 직접 움직여 봄으로써 자신만의 긍정적인 기운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몸속에도 감정이 있다. 휘황찬란하게 내 몸을 잘 사용하자.
 그리고, 그 감정을 느껴보자.





*writer, poet /  즈음: 일이 어찌 될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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