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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라이터 May 04. 2019

시작이 더딜수록 마지막은 경쾌하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시작이 경쾌하다고 착각하는 순간 끝이 너무나 허망하게 끝나버린다. 시작이 더딜수록 마지막은 경쾌하다. 과정이라는 중간의 어려움은 시작과 끝의 관계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다. 상당히 가변적이고 험난하며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과정의 도중에서도 시작은 항상 과정을 특정의 프레임 속에 가둔다. 편견과 한쪽의 치우침이 결국은 결과를 오판하게 만든다. 그래서 시작이라는 것이 참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가장 중요하고 고심하며 집중적으로 몰두해야 하는 부분이다.


시작이 경쾌했을 경우, 오히려 과정과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생각과 계획을 잘 실행하여 시작이라는 버튼을 눌렸지만, 시작 또한 항상 일관성을 가지고 한 가지의 지향점을 염두에 두고 노를 저어나가야 한다. 시작이라는 것 또한 어떻게 보면 그 속에 시작, 과정, 결과의 3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하나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이러한 점에서 참 비슷하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 긍정적인 동기부여의 수렴을 위해서 여행이라는 새로운 생각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고, 구체적인 계획을 새움으로써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한다. 출국 전에 이미 여행을 시작한 샘이다.


지나간 일상을 되돌아 봄은 한편으로는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어 현실의 주어진 모습의 객관화에 악영향을 끼치는 존재이긴 하지만, 때로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에 그윽한 동기부여가 되어준다. 시작을 위해서는 역설적이게 과거를 한번 돌아보는 관망적인 자세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여행은 그러한 점에서 큰 도전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난겨울, 후쿠오카를 가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기차여행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기차와의 생활을 존중해왔다. 기차는 생활 속에서 가장 근접해 있는 이동수단이다. 은연히 어릴 시절부터 기차가 일상화되어있는 일본의 모습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돈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즈음, 과거로의 낭만을 현재로 이끌어오기 위해 일본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내 어릴 적 꿈은 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경제학자들이 선망의 대상이었고, 매년 한 해의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는 그 모습이 참 지적여 보였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눈을 떴을 때 경제부 기자가 되어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뉴욕의 증시가 도미노처럼 무너져버리는 것을 보고, 역설적이게 짜릿함을 느꼈다. 수조원을 움켜쥐는 부자들이 몰락해가는 모습에 왜인지 모를 희열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실제로 내가 사회로의 첫걸음으로써 선택한 길은 ‘세무사’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제부 기자라는 것이 시작하기도 전에 막연하게 상상만 해오던 꿈에 스스로 만족했던 것 같다. 현명한 몽상가가 되어 경제부 기자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번 계획과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시작하지도 않고 스스로 한계 아래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만족했기에 더 이상 위로 올라갈 명분과 이유가 없었다.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게 되었고, 머릿 위에 있는 한계를 깨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시작이 매끄럽게 잘 이루어지게 하려면 무엇보다 지속성과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 한 단계씩 밟아 나아가면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변화의 선택에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이 있고 매 시점마다 스스로 되물으며 이 변화에 대한 입장과 선택을 올바르게 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생각해왔던 기준점을 명확히 하여 앞으로 다가올 긍정적, 부정적인 변화들을 분별할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긍정적인 변화들에 대해선 과감하게 수용하여 설정한 시작의 키워드를 보다 성숙하게 이끌어내야 하고, 애초에 변화를 줄 필요가 없는 부정적인 변화들은 과감하게 패스해야 한다.


대학교 시절, 경영학과에서 경제학과로 편입을 준비하는 한 달의 기간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많은 동기부여를 준다. 아침에 눈을 떠 밥은 먹지 않고 바로 도서관으로 간다. 10시에 도착하여 치열한 공무원과의 싸움을 견뎌내고 있는 공시생들을 보며 한 숨을 쉬며 지정된 좌석에 앉아 밤 10시까지 오로지 ‘맨큐의 경제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본다. 때로는 원문을 보면서 영어면접에 대비한다. 도서관에 있는 하루의 12시간 동안 책에 둘러싸여 거지꼴을 하며 쉬는 시간에는 혼자 중얼거리며 미시경제학 함수를 외우고 다녔다. 아마도 그곳에서 나와 마주쳤던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오로지 목표는 합격이었으며, 합격하는 순간만을 위해서 한 달간을 학수고대하며 살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추억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가 도전했던 가장 화려했던 순간들 중의 하나이다. 힘들더라도 꿈과 열정이 있었기에 불편함과 외로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억해보면 이때의 순간들은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몽상가’적인 꿈과 ‘현실적’인 실행과 계획을 모두 품에 안고 출발했던 시작이었다. 내 인생에서 이처럼 또 다른 도전 앞에서 완벽한 시작을 마주할 기회가 또 있을지는 확신할 순 없지만, 큰 동기부여가 되어줄 무언가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writer, poet /  즈음: 일이 어찌 될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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