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수의사가 3만 원짜리 시계를 차는 이유
나른한 오후, 진료가 없는 틈을 타 차트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인사와 함께 본과 4학년 후배 두 녀석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비타민 음료 한 박스를 들고 서 있었다.
학교에서 내 소문이 좀 난 모양이었다.
'투자 대박 나서 돈을 쓸어 담았다더라', '자산이 수십억이라더라'.
소문을 듣고 찾아온 녀석들의 눈은 기대감으로 반짝거렸다. 아마 상상했을 것이다.
강남 청담동에 있을 법한 으리으리한 대리석 바닥, 최첨단 MRI 장비가 돌아가는 거대한 병원.
그리고 번쩍이는 롤렉스 시계를 차고, 이탈리아제 맞춤 정장 가운을 입은 채 벤츠 키를 돌리는 성공한 선배의 모습을.
하지만 병원에 들어선 녀석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물음표로 바뀌었다.
"어...? 여기가 맞나?"
그들이 마주한 건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아담한 1인 병원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당황하게 한 건 나, 송원장의 몰골이었다.
"왔냐? 앉아라."
나는 롤렉스 대신 3만 원짜리 전자시계를 차고, 헐렁한 무지 검은색 면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후배 중 하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 선배님? 실례지만 오늘 휴무신가요? 옷이 되게... 편해 보이 셔서요."
나는 피식 웃으며 내 티셔츠를 잡아당겨 보였다.
"이거? 내 출퇴근복이다. 옷장에 이거랑 똑같은 검은 티셔츠가 10장, 똑같은 청바지가 3벌 있다. 아침마다 뭐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잡히는 대로 입고 나오거든."
"네...? 똑같은 옷이 10벌이라고요?"
녀석들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 코스프레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충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선배님, 그래도 차는 좋은 거 타시죠? 병원 앞에 세워진 그 포르쉐가 선배님 겁니까?"
"아니, 나 차 없다. 출퇴근? 걸어 다니거나 버스 탄다. 운동도 되고 좋잖아."
"그... 그럼 집은요? 당연히 이 근처 신축 브랜드 아파트 자가 시겠죠?"
"아니, 나 월세 사는데?"
정적.
진료실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후배들은 혼란에 빠진 듯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소문이 뻥이었나?', '투자로 다 날려 먹고 망한 거 아니야?'
녀석들의 속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녀석들의 흔들리는 멘탈을 향해 직구를 던졌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원장'이 뭐냐?
번쩍이는 외제차 끌고, 명품 시계 차고, 무리해서 대출받아 산 강남 아파트 등기 치는 거?"
후배들은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다들 그걸 꿈꾸지 않습니까. 의사 됐으면 폼나게 살아야죠."
"틀렸다. 그건 부자가 아니라, '부자처럼 보이고 싶은 사람'일 뿐이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가 말한 외제차, 명품, 으리으리한 집... 그게 다 뭔지 아냐? '비용'이다. 돈을 불리는 게 아니라, 태워서 없애는 거라고.
나는 내 자산 500억, 1000억이 있어도 포르쉐를 살 생각이 없다.
왜냐고? 그 2억으로 포르쉐를 사면 감가상각으로 사라지지만, 그 돈으로 '포르쉐 주식'이나 '미국 1등 기업'을 사면 배당도 주고 내 자산을 불려주니까."
후배들은 그제야 내 허름한 티셔츠 뒤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깨닫는 듯했다.
"나는 겉치레에 쓸 돈과 에너지를 아껴서, '자본'이라는 진짜 칼을 가는 데 썼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병원 문을 닫아도 평생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
월세? 내 금융 자산에서 나오는 배당금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집을 소유해서 세금 내고 골치 썩느니, 그냥 월세 내고 남은 목돈을 굴리는 게 훨씬 이득이니까 사는 거다."
나는 멍하니 듣고 있는 후배들에게 화이트보드 마카를 들었다.
"너희들, 부자가 되고 싶다고 했지? 그럼 지금 당장 '근검절약'부터 해라."
"에이, 선배님. 너무 꼰대 같은 말씀 아닙니까? 티끌 모아 태산은 옛말이라던데..."
"아니, 이게 진리다.
많은 전문직 후배들이 착각하는 게 있어. '나는 고소득 자니까 펑펑 써도 금방 모을 수 있어.'
천만에.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는 놈은 평생 가난을 못 벗어난다. 먼저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아등바등 살아라."
"하지만 저희는 아직 학생이라 돈이 없는데요..."
"용돈 받지? 알바비 받지? 그 돈의 단 10%라도 좋다. 술 마시고 옷 사 입을 돈 아껴서 지금 당장 투자를 시작해."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차트를 보여주었다.
"이상한 잡주 사지 말고, 딱 두 개만 기억해라.
VOO (S&P 500), 그리고 QQQM (나스닥 100)."
"그게 뭡니까?"
"미국의 1등부터 500등 기업을 몽땅 사는 거다. 그리고 미국의 기술주 상위 100개를 사는 거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너희가 환장하는 아이폰과 유튜브를 만드는 기업들의 주인이 되는 거라고."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후배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 너희가 아낀 5만 원으로 VOO를 사모으는 것.
그건 단순히 주식을 사는 게 아니야.
'소비의 쾌락'을 참아내고 '자본의 시스템'에 올라타는 훈련을 하는 거다.
그 감각을 지금 익히지 못하면, 나중에 월 1,000만 원을 벌어도 벤츠 리스비 내느라 허덕이는 '무늬만 부자'가 될 뿐이다."
"명심해라.
진짜 멋진 원장은 명품을 두른 사람이 아니야.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걸어 다녀도, 통장에는 수십억의 자산이 24시간 일하고 있다는 '확신'과 '여유'가 있는 사람.
그게 진짜 '간지'다."
상담이 끝나고 녀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올 때보다 눈빛이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오늘 말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저희 가보겠습니다!"
후배들이 꾸벅 인사를 하고 진료실 문을 열려는 찰나였다.
"잠깐, 거기 서봐."
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 미리 준비해 둔 흰 봉투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녀석들에게 하나씩 무심하게 툭 던져주었다.
"멀리까지 왔는데 그냥 보내면 쓰나. 차비해라."
후배 하나가 봉투를 살짝 열어보더니, 헉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봉투 안에는 빳빳한 5만 원권 6장, 무려 3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두 명이니 합쳐서 60만 원이다.
"서... 선배님? 이거 너무 큰돈인데요? 저희 그냥 버스 타고 왔습니다. 못 받겠습니다!"
녀석들은 내 허름한 티셔츠와 낡은 전자시계를 번갈아 쳐다봤다.
'본인은 3만 원짜리 시계 차고 다니면서, 우리한테 차비로 30만 원을 준다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억지로 봉투를 녀석들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며 으름장을 놓았다.
"야, 착각하지 마라.
내가 나한테 돈 안 쓰는 건, '가치 없는 겉치레'가 싫어서 그런 거고.
너희 같은 싹수 있는 후배들 밥 사주고 차비 주는 건 '가치 있는 투자' 니까 안 아까운 거다."
녀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거, 술 사 먹으라고 준 거 아니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아까 내가 말한 VOO랑 QQQM, 주식을 사봐.
그게 너희 인생을 바꿀 '첫 눈덩이(Snowball)'가 될 거다. 내 검사는 나중에 계좌 까서 확인할 테니까 그런 줄 알아."
후배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들은 봉투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반드시 인증하겠습니다!"
녀석들이 돌아간 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다 식은 커피를 마셨다.
60만 원. 내 한 달 옷값보다 비싼 돈이다.
하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 돈이 저 아이들의 마음에 '자본주의의 씨앗'으로 심어졌을 테니까.
진짜 부자는 돈을 안 쓰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을 위한 사치에는 냉정하되, 사람을 위한 가치에는 뜨겁게 쓸 줄 아는 사람.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송원장'의 모습이다.
진료실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오늘따라 낡은 내 전자시계가 롤렉스보다 더 빛나 보였다.
해당 브런치북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홀수 화 (Odd): 자본주의를 정복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룬 현재의 투자자 송원장 이야기
짝수 화 (Even): 돈이라는 방패가 없어 처절하게 버텨야 했던 과거의 생계형 수의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