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이 바다를 포기할 때, 가장이 짐을 싸는 이유

이란 전쟁이 알려준 잔혹한 진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실전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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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반. 고요한 집안에서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듣는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소리지만, 스마트폰 뉴스 창을 띄우는 순간 그 평화는 산산조각이 난다. 2026년 이란-미국 전쟁.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유가가 치솟으며, 세상은 제3차 세계대전의 공포 앞표지에 서 있다.


아침 8시 30분, 나는 평소처럼 병원 문을 열고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묻는다. 세상이 무너질 판국에 넌 어떻게 그렇게 태평할 수 있냐고.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잠든 내 아내와 아이를 볼 때마다, 이 거대한 매트릭스가 붕괴하더라도 내 가족만큼은 털끝 하나 다치게 하지 않겠다는 '처절한 공포'가 나를 이토록 차갑고 이성적인 인간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이번 중동 전쟁은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자유무역'과 '이성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잔혹한 신호탄이다.


1. 코미디가 된 제국: 미국은 더 이상 바다를 지키지 않는다



이번 사태에서 우리가 뼈저리게 목격한 가장 소름 돋는 장면은 무엇일까?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중동의 밤하늘이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미국이 거기서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한국, 중국, 일본 등에게 "너희들 군함을 파견해서 직접 바다를 지켜라"라고 요구한 대목이다.


사람들은 이를 코미디라 불렀지만,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인류 역사상 누구나 자유롭게 안전한 해상을 누비며 무역을 하고 여행을 다녔던 지난 수십 년의 시간은, 사실 '미국'이라는 압도적인 패권국이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쏟아부어 바다를 통제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이례적인 축복이었다. 역사 속 모든 제국은 바다를 장악하고 통행료를 받으며 제국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제 부채의 늪에 빠진 미국은 더 이상 전 세계의 바다를 공짜로 지켜주는 '글로벌 경찰' 역할을 포기하려 한다. 수많은 지정학자들이 경고했던 미래가 현실로 닥친 것이다. 합리와 이성, 평화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다시 힘과 권위, 그리고 각자도생의 야만적인 시대가 도래했다.


2. 국가가 당신을 지켜줄 것이란 순진한 착각



이 거대한 지정학적 단층이 무너져 내리는데,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나를 끝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유럽의 몰락을 보라.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져준다는 '복지의 시대'는 이미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물류가 막히고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 국가 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때, 정부가 개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안심하라"는 재난 문자 몇 통이 전부다.


자본주의에서 국가의 복지망이나 타인의 선의에 내 가족의 생존을 의탁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가장은 없다. 세상이 평화로울 때는 '착하고 둥글둥글한 아빠'가 최고지만, 난세에는 현실의 냉혹함을 직시하고 진흙탕을 굴러서라도 가족의 입에 밥을 밀어 넣을 수 있는 '안티프래질(Antifragile)한 아빠'가 필요하다.


3. 노후 연금은 20년 뒤를, 생존 배낭은 '내일'을 지킨다



지금 당장 자산 시장이 피바다라지만, 사실 자본주의의 미래를 완전히 비관하는 사람은 드물다. 퇴직연금 계좌에 담아둔 S&P 500이나 나스닥 100 ETF가 20년 뒤에도 지금보다 박살 나 있을 것이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은 결국 이 위기를 극복하고 우상향할 것이다.


문제는 '20년 뒤의 은퇴'가 아니라 '당장 다음 주에 터질지 모르는 위기'다. 금융 자산이 아무리 튼튼해도, 전기가 끊기고 물류망이 마비되면 모니터 속의 주식 숫자는 당장의 허기를 채워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금융 자산과 별개로 가장 원초적인 '실전 방어망'을 구축했다.


금고에는 언제든 세계 어디서나 가치를 인정받는 실물 금과 달러가 있다. 하지만 전시 상황에서 화폐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될 경우를 대비해, 시장에서 가장 완벽한 물물교환의 매개체로 쓰일 '담배'와 '건전지'를 일정량 비축해 두었다. 그리고 우리 집 현관 앞에는 당장 집을 버리고 탈출해야 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생존 배낭'이 놓여 있다. 어떤 재난 속에서도 내 아내와 아이가 최소 72시간을 버틸 수 있는 식량과 식수, 보온 장비와 구급약이 그 안에 꽉 차 있다.


에필로그: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냉정해진다



유난 떤다고 비웃어도 좋다. 전쟁 공포증에 걸린 편집증 환자라 손가락질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마트 매대를 부여잡고 남은 생수 한 병을 차지하기 위해 타인과 주먹다짐을 하는 비참함은 절대 겪고 싶지 않다.


나는 낭만이나 환상을 믿지 않는다. 제국은 쇠퇴하고, 바다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으며, 국가는 내 가족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하루도 병원에서 내 기술로 정당한 자본을 끌어모으고, 몸을 단련하며, 책을 읽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배낭의 끈을 단단히 조여 맬 뿐이다.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시대에 가장이 가족을 열렬히 사랑하는 유일하고도 완벽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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