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은 오르는데 왜 통장은 빌까?"

인플레이션과 건강보험의 착시가 만든, 동물병원의 잔혹한 재무제표


밤 10시. 내 병원은 이미 오후 6시에 셔터를 내렸지만, 대학 동기인 최 원장의 연락을 받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최 원장은 동네에서 페이닥터 10명을 두고 제법 규모 있는 24시간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남들이 보기엔 성공한 '대형 병원 원장님'이다. 하지만 내 앞에 앉은 그의 얼굴은 며칠 밤을 새운 것처럼 잿빛이었다. 그는 탄산수를 단숨에 들이켜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송 원장, 나 진짜 병원 접을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오늘 또 맘카페에 '돈에 미친 과잉 진료 병원'이라고 글이 올라왔어. 매출은 작년보다 올랐는데, 이번 달 결산해 보니까 내 통장에 남는 순수익은 페이닥터 시절보다 못해.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나는 평온하게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신 뒤, 위로 대신 자본주의의 차가운 계산기를 두드려 주기로 했다.


1. 인플레이션의 덫: 10년 전의 500만 원과 지금의 500만 원



"최 원장, 10년 전에 우리가 자주 가던 병원 앞 국밥집 기억나지? 그때 한 그릇에 5천 원이었어. 지금은 1만 원이 넘지. 최저임금도 5천 원대에서 1만 원을 돌파했고."


최 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경영학적으로 물어보자. 지난 10년 동안 네 병원의 진료비는 두 배가 올랐어? 아니, 오히려 동네 출혈 경쟁 때문에 중성화 수술비는 10년 전보다 지금이 더 싸지 않아?"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본주의에서 원장도 결국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고 사업가야. 10년 전에 매월 500만 원의 순수익을 가져가던 원장이, 지금도 똑같이 500만 원을 가져간다면 그건 현상 유지가 아니야. 미친 듯이 풀린 화폐량 때문에 지금의 500만 원은 과거의 250만 원어치 구매력도 안 돼. 넌 겉으로는 벤츠를 타는 원장님 소리를 듣지만, 실제 너의 구매력과 지갑은 매일 인플레이션에 녹아내리고 있는 거야."


2. 달러와 이란 전쟁: 수입에 의존하는 원가율의 비극



나는 최근 터진 '이란-미국 전쟁'의 뉴스가 띄워진 스마트폰 화면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게다가 우리 업계의 '원가 구조'를 봐. 마취약, 약품, 의료 소모품, 혈액 검사 시약, 심지어 처방식 사료까지 병원에서 쓰는 소모품의 90% 이상이 해외에서 달러로 결제해서 수입해 오는 것들이야. 지금 중동 전쟁 터지고 글로벌 물류망 박살 나면서 환율이 어떻게 됐지? 미친 듯이 치솟고 있잖아."


최 원장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맞아. 약품업체랑 사료 업체들은 한 달이 멀다 하고 공급가를 10%, 20%씩 올려대는데, 나는 동네 보호자들 눈치 보느라 진료비 1,000원 올리는 것도 벌벌 떨어."


"바로 그거야. 수입 원자재 가격과 고정비(인건비, 임대료)는 폭등하는데, 진료비는 묶여 있어. 결국 그 갭(Gap)을 온전히 네 '순수익'을 깎아서 메우고 있는 꼴이지. 이건 비즈니스가 아니라 제 살 깎아먹는 자원봉사야."


3. 국민건강보험의 착시와 수의사의 진짜 평판


"그래도 송 원장,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주사 한 대 놔주고 몇만 원씩 뜯어가는 도둑놈들로 보이나 봐." 최 원장이 억울한 듯 말했다.


"그건 대중이 악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 의료의 '국민건강보험' 시스템이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압도적이라서 생기는 인지 부조화야."


나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내과 가서 감기 진료받고 처방전 받아도 환자 주머니에선 5천 원밖에 안 나가. 나머지 진짜 비용은 국가가 세금(건보료)으로 메워주지. 이 엄청난 혜택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의료 행위의 '진짜 원가'가 얼마인지 인지할 수가 없어. 그러다 건강보험 적용이 1원도 안 되는 100% 비급여 동물병원 청구서를 받아 들면, 그 괴리감 때문에 우리를 '폭리를 취하는 악덕 장사꾼'으로 매도하는 거야. 심지어 한국 보호자들 눈높이는 기형적으로 높아서, 미국 로컬 병원엔 있지도 않은 억 단위 초음파나 CT 장비까지 세팅해 놔야 하잖아."


나는 쐐기를 박았다.


"최 원장, 언론 말대로 우리가 진짜 그렇게 폭리를 취하고 돈을 긁어모으는 집단이라면, 왜 8대 전문직 중에서 수의사의 평균 소득은 늘 바닥을 기고 있을까? 왜 수의사가 직업별 자살률 최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을까? 돈다발 위에서 목을 매는 사람은 없어. 매일 피를 튀기며 생명을 살려내고도 일부 보호자들에게 감정 쓰레기통 취급을 당하며, 마이너스 통장 빚에 시달리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의사들이 나오는 거야."


에필로그: 매트릭스의 비난에 억울해하지 마라



최 원장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것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착한 원장'이 되어야 한다는 세상의 프레임과 자본주의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었다.


"최 원장, 억울해하며 세상의 프레임과 싸우는 멍청한 짓은 그만둬. 대중이 우리를 '탐욕스러운 자본가'라고 부른다면? 기꺼이 진짜 냉혹한 자본가가 되어주면 그만이야."


나는 그에게 내 병원의 룰을 이야기해 주었다.


동정심에 기대는 박리다매 진료를 버릴 것. 직원을 줄여 고정비를 극단적으로 낮출 것. 그리고 '특성화 진료'라는 하이엔드(High-end) 기술을 무기로, 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보호자와 함께 반려동물의 삶을 향상시키는것. 그것이 보호자분의 기쁨이 되는 동물병원을 만드는 것.


세상의 칭찬을 구걸하며 내 가족을 지키지 않는다면 가장의 직무 유기다.

실제로 수의사들은 결혼도 늦게 하는 편이며 워라밸이 좋지 않아 이혼율도 높은 편이다.

세상을 구하기 전에 나 자신 내 가족부터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이 사회를 위해 그리고 반려동물들을 위해서도 더 나은 선택이다.

(가족들과 화목하고 신체, 정신적으로 건강한 수의사가 스트레스에 절어있고 가족이 불우한 수의사보다

반려동물에게 더 많은 애정을 주고 치료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 중요한 게 멀까 지금 생각해 보자.

타인을 위한다면 더더욱 타인이 원하는 걸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난 오늘도 단란한 가정을 위해 퇴근 후 돌이 된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자기 전에 와이프와 대화를 한다.

그리고 매일 운동을 하며 나를 찾아오는 반려동물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장 가치 있는 게 멀까? 수의사가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머스크처럼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머스크가 무엇인가 만들 때 기존의 방법대로 하지 않았다.

우주선을 우주로 보내고 싶다. 그리고 다시 재활용하고 싶다. 이 대전제를 이룩하기 위해 끊임없이 원점에서 생각하고 부품을 빼기도 하고 변환하기도 하면서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고 생각했다.

우리도 동물병원을 하는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동물병원을 오시는 보호자분과 반려동물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자기 전에 원점에서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이른 저녁잠이 든다. 내일 최선의 컨디션으로 동물병원 진료를 보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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