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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벳최 May 01. 2024

펫푸드 리콜의 역사 - 4


전편 '펫푸드 리콜의 역사 - 3' 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원인불명 1줄 정리: 현대 과학의 한계로 모든 펫푸드의 문제를 잡아낼 수는 없어요. 다만 과거의 사례로부터 배우고, 앞으로 펫푸드에 의해서 아픈 애들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원인 불명


원인 불명은 말 그대로, 음식과 애들이 아픈 것과의 관계가 명확한데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를 말합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러한 케이스가 많습니다.


이 중에서 원인 규명을 위해 논문이 몇십편 나왔는데도 아직 갈피를 못 잡는 사건도 있습니다.


오늘은 전편들과 다르게 여러 대륙을 돌아볼거에요!


호주 및 라트비아에서 각각 1건, 그리고 미국에서 크게 이슈가 된 2건을 살펴보겠습니다. 


호주와 라트비아의 거대식도증


흥미롭게도 호주와 라트비아에서 몇년의 시간차를 두고 사료에 의해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어요. 


라트비아에서 2014년부터 거대식도증에 걸리는 강아지들이 이상할 정도로 많아졌어요. 알고보니 공통적으로 한 브랜드의 사료 (사료 X) 를 섭취하고 있는 애들이었는데, 이 사료에 의해 2년간 253마리의 강아지가 거대식도증이 생겼어요. 


거대식도증은, 음식물을 위로 보내는 기관인 식도에 이상증상이 생기면서 음식물이 정체해 위로 넘어가지 못하고 토해내는 질병이에요. 선천적인 경우와 후천적인 경우가 있는데 보통은 어린 호발종 (저먼쉐퍼드, 닥스훈트 등) 에서 선천적으로 많이 보여요. 

출처: wikihow. 강아지 거대식도증 이미지. 음식물이 식도에 정체해 있다.


그런데 라트비아 케이스에서 신기했던건 거대식도증에 걸린 애들의 30%는 잡종이었다는 것이었어요. 즉 기존에 잘 걸리는 품종견 위주가 아니였다는거죠. 


호주에서도 2017년말부터 작업견들이 특정 사료 (사료 Y) 를 먹고 거대식도증에 걸리기 시작해서 2018년까지 145마리의 강아지가 영향을 받았어요. 


안타깝게도 라트비아와 호주에서 연구 조사단을 꾸려 광범위한 조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찾지 못 했어요. 


호주에서는 특히 빠른 리콜 실시 후 여러 부분을 면밀히 검토 했었습니다. 공급업자 및 유통망 단계에서의 오염, 원재료 불순물 혼입, 제조 공정 실수, 사료 포장지 오염 등을 검토했지만 오리무중 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료가 원인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라트비아의 경우 사료 X를 먹은 강아지가 안 먹은 강아지보다 오즈비 (odd ratio) 가 356배, 호주의 경우 사료 Y를 먹은 강아지가 안 먹은 강아지보다 오즈비가 437배 였어요.


평균적으로 이 사료를 먹은 강아지들이 안 먹은 강아지보다 거대식도증에 걸릴 확률이 약 400배 정도나 높았던 거예요.


따라서 통계학적 관점에서 생각하면 사료가 원인이라고 추정되어요. 다만 원인을 못 찾았을 뿐..


또 흥미로운건 라트비아와 호주 강아지들 둘다 거대식도증에 걸렸지만 양상이 미세하게 다르다는 것이었어요.


라트비아 강아지들의 경우 말초신경병증을 보였는데 호주 강아지들한테서는 이게 없었거든요. 그래서 원인이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주 똑같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호주와 라트비아 사례를 조사 했던 연구 보고서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질병에 대한 조기 발견 및 광범위한 인식, 그리고 철저한 역학 조사와 사료 원료 및 죽은 강아지의 조직 수집 없이는 식이 관련 거대식도증의 원인을 앞으로도 파악하기 힘들 것 입니다"


이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질병에 대한 조기 발견 및 광범위한 인식'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호주에서는 케이스가 소수일 때 원인 규명 전에 발빠르게 리콜을 시행한 반면에, 라트비아에서는 터지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조사가 시작되어서 골든 타임을 놓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보고서는 이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남깁니다.


"독성 분석 결과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분석된 독성 물질의 농도가 허용 가능한 한도 내에 있었지만, 이러한 독성 물질이 결합되었을 때 어떻게 상호작용할지, 그리고 개가 만성적으로 노출되었는지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즉 현대과학의 한계로 인해서, 개별 요소들은 독성이 없지만 체내에서 결합되었을 때 독성이 생기는 물질은 못 잡아낼 수도 있다 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펫푸드 리콜의 역사 - 1' 을 읽으신 분이라면 멜라민 파동이 생각나실 거에요.


멜라민과 시아누르산 개별 성분으로는 크게 독성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둘이 만나는 순간 신장에서 결석을 형성해서 폭발적으로 독성이 생겼던게 원인이었죠. 


밑에서 얘기할 중국산 닭육포 간식 사태도 혹시 이런 경우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중국산 닭육포 간식


멜라민 파동이 2007년 상반기 이슈였다면, 중국산 닭육포 간식은 200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이슈였습니다. 육포 간식을 먹던 강아지들이 신장병에 걸리거나 죽었는데, 역학 조사를 해보니 특정 회사의 닭육포를 먹던 아이들이었어요. 


중국에서 수입된 문제의 닭육포 간식


이 강아지들이 걸린 신장병의 경우 판코니 증후군이라고 해서, 선천적으로 바센지종이 잘 걸리는 희귀병이었습니다. 


판코니 증후군은 세뇨관 기능 장애로서, 소변으로 과도한 양의 미네랄 및 특정 영양소들을 배설해요. 


안 그래도 희귀병이니까 바센지가 아니면 보기가 드문데 다양한 댕댕이 품종이 걸려서 더 이상했던 것이지요. 


바센지


문제는 이 육포가 강아지를 아프게 만드는 것이 명백 했음에도 불구하고, FDA 조사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서 6년간이나 팔렸다는 것이에요. 


중국산 닭육포는 2013년에 항생제 성분 6개가 초과 검출 된 이후에야 시장에서 철수 되었답니다. 


이 항생제 6개 중 5개는 펫푸드에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안 되는 금지 약품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생제의 양이 문제를 일으키기에는 미미했기 때문에, 신장병의 원인은 아닐 것으로 생각되고 있어요. 


최종적으로 FDA에 중국산 닭육포 관련 4800개의 청원이 접수 되었으며, 5,600 마리의 강아지가 아팠고 이 중에 1,000마리가 죽었어요. 무려 1,000마리가 죽었는데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슬픈 것은 이게 끝이 아니에요. 미국에서의 증례 보고는 2013년을 마지막으로 멈췄지만, 스위스 (2014년), 영국 (2014년) , 오스트리아(2015년), 일본 (2015년) 에서 중국산 닭육포에 의한 판코니 증후군 케이스가 계속 보고 되었어요.


몇년 전 이미 일어났던 미국에서의 사례를 보고 다른 나라의 업체가 배울 수는 없었던 것일까요.. 이슈가 되었던 중국 공급업체에서 안전성을 더 신경 써서 만들었더라면, 아니면 간식 수입 업체에서 필터링을 했더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동물이 먹는 것이라고 사람 먹는 것만큼 신경 쓰지 않고, 음식에 장난질 치는 것 같아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레인 프리 (무곡물) 사료


그레인 프리 사료는 2017년부터 이슈가 되기 시작했어요. 


강아지가 걸릴 수 있는 심장병 중에 확장성 심근병증 (DCM) 이라고 심장이 확장되면서 심장 기능이 저하되는게 있어요.


골든 리트리버, 래브라도 리트리버 같은 대형견들이 원래 유전적으로 잘 걸리는 질병인데, 이상하게 2017년을 기점으로 소형견에서도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거에요.  


그래서 FDA에서 역학 조사를 했더니 DCM 환자 중에 90% 이상의 애들이 무곡물 사료를 섭취하고 있었어요. 


2018년부터 원인 규명을 위한 연구들이 시작 되었고, 최근 6년간 무곡물 사료 관련 논문만 30편 이상이 쏟아져 나왔어요. 


수많은 가설과 검증을 위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무곡물 사료가 어떻게 DCM을 일으키는지 모른답니다. 


무곡물 사료는 마케팅이 키운 사료 카테고리의 대표적인 예시에요. 


2010년대부터 사료회사들이 "곡물은 동물한테 해악하다" 라고 외치기 시작하면서 무곡물 사료 시장은 쭉 성장해서, 2020년 기준 미국내 강아지 건사료의 40% 정도가 무곡물 사료였어요. 


그레인 프리 사료 이슈가 터지기 전부터 수의 영양학 전문의들이 곡물은 나쁘지 않다라는 주장을 했지만, 과학에 기반한 팩트가 마케팅을 이길수는 없었어요.


참고로 설사 하던 댕냥이가 무곡물 사료로 바꾸고 나서 괜찮아 졌다고 말씀 하시는 보호자들이 종종 있어요. 추정컨데 아래와 같은 이유로 나아지지 않았나 싶어요.


1. 그 댕냥이가 곡물에 알러지가 있었다 (동물성 단백질만큼은 아니지만 옥수수랑 밀도 알러지 유발 가능)

2. 무곡물 사료의 탄수화물 함량이 낮았다 (특히 고양이는 고탄수화물 사료는 소화하기 쉽지 않음) 


고탄수화물 사료가 모두 설사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애들은 고탄수화물 식이에 민감해요. 


그리고 무곡물 사료라고 해도 감자 등의 기타 탄수화물원은 들어가기 때문에, 곡물 사료보다 항상 탄수화물 함량이 낮지는 않아서 추정이라고 말씀 드렸어요. 


저는 이러한 보호자한테 일단 무곡물 사료와 DCM 발병 사태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그래도 무곡물 사료를 먹이고 싶다고 하시면 대기업 사료를 추천 드려요. FDA 조사에서 이슈가 되었던 무곡물 사료들은 대부분 부띠끄 사료라고 불리는, 특수 단백질 (캥거루 등) 을 쓰는 영세한 회사들이었거든요. 


이번 원인 불명편을 읽으시면서 슬프면서도 조금은 답답한 감정을 느끼셨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먹는거에 문제가 있어보이는데 원인을 밝힐 수가 없다니!


현대 과학의 한계도 있을 것이고 사람 먹거리가 아니라서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1편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이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에는 최근 고양이 집단 폐사 사태가 있어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사료가 원인이라고 얘기하려는건 아니에요. 다른 가능성도 있고 아직 정부에서 조사 중이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참사를 통해 한국 펫푸드 영양소의 기준치를 제정하고, 안전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긍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마지막으로 키우던 주인님들을 예기치 않게 보내게된 집사님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 내용은 제 블로그, 트위터 및 쓰레드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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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드: threads.net/@vet_c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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