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의 태도 "웃고 있더라"

by VetStella

조직 검사 상으로만 유방암 진단을 받고

다른 검사 결과들이 나오기 전까지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모를 때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각각의 시나리오를 그리게 된다.



내가 죽음을 맞이하려나?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여름마다 계곡 근처에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하곤 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 근교 어디든 계곡이 있는 곳이면 북적이며 가족들이 휴가를 즐겼었다.

내가 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한여름에 포천 계곡에 온 가족이 놀러 갔었다.

지금은 어렴풋 짧은 단편의 장면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날, 계곡에서 한 가장이 익사한 사건이 있었다. '죽음'이란 개념조차 없던 어린 나는, 사고 현장을 도와주고 돌아온 아빠에게


"그 사람은 어때 보여?"라는 의미의 질문을 했던 거 같다. 내 질문은 가물가물하지만, 아빠의 대답만큼은 지금도 선명하다.


아빠는 어린 막내딸에게 나지막이 말해줬다.



"웃고 있더라."



아마도 아빠는 내가 공포에 질리지 않길 바랐던 대답이었을 거다. 죽음이 아름답기가 어렵다는 걸 깨달을 나이까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정말로 그 사람이 가족들과 놀다가 행복한 표정으로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종종 '죽음 앞에서의 나'는 어떨까 생각해 본다.



스무 살 무렵, 학원의 바로 옆 건물에서 화재가 났을 때, 갑작스러운 죽음의 공포에서 패닉을 마주했다.

공포에 사로잡혀 허우적대던 그 모습은 지금까지도 부끄러움으로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아마도 지금도 예기치 못한 사고 앞에서는 여전히 본능이 앞서 패닉에 빠져버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20대 초에 느꼈던 패닉과는 달리

죽음 앞에서 나는 '담담하다'라는 걸 알았다.



'내가 곧 떠난다면, 나는 어떤 태도로 남을 것인가.' 이것이 나에게 중요했다.

주어진 시간이 하루가 남았다 하더라도 지금 모습 그대로, 나의 일상을 지키다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나는 평소처럼 진료를 하고, 동료들과 농담을 하고,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

감정에 휘둘려 어그러져 버리는 내 모습은 단 한순간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의 아들이 내 모습을 보고 공포에 질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마주해야 할 순간이라면,

그 순간 두려움과 공포에 나를 넘겨서 먹히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 봤던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마지막 장면인, 죽음 앞에서 아들을 향해 웃던 아버지의 모습이 감동적이기는 했지만 현실감이 떨어지는 영화 속 가상이라 생각했었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었다. 현실이 오히려 더 영화보다 극적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영화나 드라마는 현실의 단편을 반영한 것뿐이었다.



나이 들어서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리니,

마지막 아버지가 아들에게 웃는 모습으로 떠나는 그 마음 그대로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할 수 있을 거 같다.



아빠가 나에게 남겨준 "웃고 있더라"라는 죽음의 모습처럼,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나의 마지막을 남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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