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도피처는 '폴댄스'였다

도대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뭐지?

by VetStella

나는 푸들처럼 밝디 밝음은 아니지만,


듬직한 골든 레트리버처럼 무거운 꼬리로 보호자 다리를 탕탕 치며 좋아라 하고 옆에 살 붙이고 있는 걸 좋아하는 성향인 거 같다.


그리고 다행히,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 삶이 단단하게 버틸 수 있었다.



슬플 땐 서로 눈시울 붉히며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감싸주고,

기쁠 땐 나보다 더 기뻐해 주고,

힘들 땐 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나서주고,

멈춰있을 땐 새로운 자극을 준다.




몇 년 전 새로운 수의사샘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오시기 전에는 카리스마 있고 무서울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새로 오신 샘은 뽀얗고, 단정한 미인이고, 주관이 또렷하고, 똑떨어지고 당당한 포스가 느껴지는 분이셨다.


내가 가지지 못한 면들, 내가 좋아하는 면들을 다 갖춘 분이셨다.

어디서나 주눅 들지 않을 자신감이 느껴졌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또,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분 덕에 10여 년 전부터 고민만 하다 적극적으로 덤벼들지 못했던 침치료 인증수의사 과정을 이수하고 후딱 자격증을 따내고,

그분 덕에 철사 같고, 운동은 산전 요가 외에는 전무였던 내가 폴 댄스에 입문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거는 나도 모르게 홀리듯

그 사람이 특별히 날 설득하거나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나도 해볼까? 하면서



그렇게 나에게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그동안 날 알던 사람은 상상도 못 할,

폴댄스를 접하게 되었고..



정말 힘든 나날 속에서 한 시간이라도 짬이 나면 도망치듯 그곳에 가서 생명줄 잡듯 폴대를 잡고


이걸 놓치면 최소 골절, 낙상사고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초집중하며

그 순간만큼은 일상의 힘듦을 잊어나갔다.



바쁜 와중에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운동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동료들은 '현실 도피'하는 거 같다고도 했다.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운동신경 젬병이고, 유연성은 발가락 끝마저도 찾아볼 수 없는 몸에, 근력이 있을 턱이 없었다.


남들 한 달 만에 할 수 있는 동작인데도 6개월에서 1년이 소요되었다.

더군다나 주 1회 가는 것도 짬 내기 힘든 상황이었으니...

어디서 난 운동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상태이다.


그래도 그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


강사님은 내가 잘 따라 하지 못하는 것에 너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정작 본인은 오호 그래도 버텼다며 좋아했지, 굴하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운동이지만 나에게는 도피였다.


폴 학원에 가면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성향의, 다양한 연령의,

도전적이고 멋진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수업을 듣고 오면 온몸을 두들겨 맞은 거처럼 쑤시고 아파도 그분들의 에너지로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여자들만의 공간이어서 편하기도 하지만,

나를 뒷전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그 결과 막무가내로 방치된 늘어진 속살이 드러나도

서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부끄럽지 않은 공간이었다.



실수를 함께 안타까워하고, 완콤시 쏟아지는 박수갈채! 도파민 폭발!

그리고 평소에 입지 못하는 이쁜 색의 옷도 입어볼 수 있다는 즐거움.



가장 힘들었던 기간 동안 나의 버팀목이 되었던 운동이자, 나의 크루들 -사실 그분들은 날 기억하지 못할 거다, 쭈그리처럼 먼발치에서 입 벌리고 우와 멋지다 하면서 구경만 하고 말은 섞지 못하기도 했고 남들처럼 멋지게 완콤하지도 못하는 실력이기에 존재감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소중한 나의 크루들이라 하고 싶다.



한동안 폴을 잡지 못하겠지? 아직 포기하지 못하고 몇 개월이나 남은 수강증을 바라보며


흐음... 유방암 수술 직전까지는 나가고, 홀딩했다가 방사선 치료하면서는 나가볼 수 있을까? 혼자 짱구를 굴려본다.


모든 건 수술 범위에 달렸다. 유방 부분 절제일지 양측 전절제로 갈지... 검사 결과가 나오고 확정되기까지는 계속 수강증을 바라보며 고민하겠지.

양측 전절제로 진행된다면 그나마 나의 유일한 도피처마저 영원히 멀어질 수도 있게 된다.



강사님께 한동안은 못 나올 거 같다고 말을 남겼을 때,


강사님은 내 눈을 피하면서 눈물을 훔치셨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야 그 심정 이해가 가요. 우리 엄마도 암 투병하시거든요." 하면서.



재능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 사람이 와서 이렇게 열심히 하며 좋아하는 모습이 이제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셨나 보다.

"왜 우세요, 그동안 저의 활력소였어요. 감사합니다. 저는 초기예요! 또 뵐게요."

애써 눈물 수습하시며, "폴댄스로 재활해 볼까요?" 하신다.




한 번도 나를 위해 쉬어본 적이 없었다.

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고

힘들고 바쁠 땐,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더 몸을 혹사시켜왔다.

쉬어야할 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했기에 그 대신 이유가 그럴듯하게 새로운 도전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육아와 함께 투잡, 쓰리잡을 마다하지 않고 쪽잠을 자며 그 와중에 새로운 교육을 받고, 새로운 도전을 했다.






이제 운동이건, 일이건 강제 종료 버튼이 눌러졌다.

대신 나에게 화두가 던져졌다.


이제부터는 나를 사랑하라는데,

도대체 어떻게 사랑하라는 거지?







활활 타오르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내 옆에서

꺼져가는 불씨가 행여 사라질까

조심스레 불어가며 부채질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자려고 누웠을 때

혹여 엄마가 깰까,

스윽 엄마의 아픈 오른쪽 가슴을 쓸어주는 아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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