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암 선배'의 조언

하늘이 주는 메시지 - 나를 사랑해야 해

by VetStella
"쌤, 나 유방암 이래."


대학 병원에서 진단 검사를 진행하고 집으로 느릿느릿 향하던 중에

대학 병원 앞 버스정거장 바람막이 천막 안에서 이전에 함께 일했던 수의사샘을 만났다.

나에게 수의 침치료와 폴댄스의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 선생님이다.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나에게 여기에 왜 있냐는 질문에, 뜻밖의 유방암 소식을 듣고 놀란 표정이다.

두런두런 그간 있던 일들을 얘기하는데,

버스 정거장 바람막이 천막 안에 함께 계시던 50-60대 정도의 여성분이 우리 얘기를 듣다가 나를 보며


"*** 교수님에게 진료받나요? 내가 유방암 7년 차야~ 가만히 듣다가 참견 안 하려고 했는데 진단받은 지 얼마 안 된 거 같아서 말이야......

괜찮아, 처음이 제일 힘들어. 처음에 받아들이는 게 마음이 너무 힘들어.


억울하기도 하고, 남들이 위로하는 것도 다 듣기 싫고, 괜찮다는 말도 다 싫어.

근데 지나면서 단단해져. 그때만 잘 넘기면.

나 머리도 다 빠지고 가발 쓰고 다니고, 일도 바빠서 쉬지도 않고 일했어.

근데 지금 이렇게 잘 다니잖아. 머리도 다 났어.


제일 중요한 건 나를 사랑하는 거야.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해 이제.

그리고 넷플릭스 많이 봐. 웃긴 거로, 슬픈 거 말고 재미난 거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누가 싫은 소리 하면 무시해.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해.


같이 수술한 수술 동기들 4명이 있었거든. 다 지금도 잘 살고 있어. 지금도 서로 연락하고 지내.

젊은 사람이니까 잘 이겨낼 거야. 괜찮아"



그리고 우리 셋은 같은 버스를 타고 갔다.

그 여성분은 내릴 때 나에게 주먹을 보이며 화이팅! 하고 가셨다.



옆에서 같이 들어주던 수의사샘은 이번에도 나에게

"치료하는 동안 이전에 해보고 싶었는데 시간 없어서 못했던 것들 해봐요. 샘 의료용 3D 프린팅 공부 해보고 싶었잖아. 아니면 영어 공부나, 블로그 쓰기나, 뜨개질이나 아무거나 해보고 싶었는데 못했던 거요."라고 조언을 해준다.



인생 한복판 멈춰 선 지점에서 우연의 만남들, 따뜻한 말들.

순간 울컥한 거 보면, 내가 감정이 없던 게 아니라 너무 깊게 묻어두어서 표현을 하지 못했던 거 같다.


겉으로는 옷과 표정으로 괜찮은 듯이 지내고 있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보면 각자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 거 같다. 우연히 만난 환우분도 꾸며진 헤어와 단단한 코트로 전혀 그동안의 힘듦을 예상해 볼 수 없었다.


나를 사랑하라니.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아마도 참고, 참고, 참고, 참으며 본인을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어 두고 살다가 빵 터져버린 거겠지.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받지 마라, 스트레스 풀어야 한다고 말해주는데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뭔가 나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본인은 얼마나 뼈저리게 깨달은 말이기에 처음 보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고 가셨을까.



고갈되던 내 삶의 끝에

'이러다 정말 끝난다'라는 경고성 암진단,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우연 속의 메시지들.

일련의 과정들이 정교하게 각본처럼 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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