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만 해도 당돌했다. 여행 후 현타!
작년 12월 전까지 몇 개월간은 주 7일 근무와 아이 케어로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갔다. 12월 초 진단도 받았겠다 26년도 1월부터 화요일 정규 휴무를 정하고 짬짬이 수술 전까지 진료 없을 때는 쉬어 보려고 시도했다.
시간과 돈은 써본 사람이 잘 쓴다고, 오래간만에 시간이 생겨서 그런지, 온갖 잡념들이 머릿속에서 아우성이다.
유방(Breast) MRI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등이 아플 때마다 혹시 뼈 전이된 거 아냐? 하는 근거 없는 걱정이 되었다.
결국 밝혀진 건 폴댄스 하고 나서 근육통이었지만.
그동안 못 느꼈던 가슴 통증이 느껴지는 거 같기도 하고... 정말 쓸데없다.
건강검진 때 검진 누락된 자궁과 난소들이 잘 있는지도 걱정되었다. 안 그래도 최근 1년 동안 생리량이 증가해서 일할 때 지금까지 써본 적 없던 대형 나이트 패드를 쓰거나, 위생 팬티를 입어야만 했다.
동물 병원은 너무 바쁜 날들이 많아서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앉은 의자에 종종 생리혈이 새어버리는 응급 상황이 생기곤 했다.
나이 들면서 생리량이 준다는데 갑자기 늘어난 것도 찜찜하고... 언니도 난소암으로 급하게 수술을 하게 되었으니 화요일을 맞이하여 동네 산부인과에 가서 난소와 자궁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clear.
미션 1 완료.
수술하고 나면 오른팔을 잘 못 쓸 거 같고 드라이는커녕, 머리 감기도 왼팔로 어설프게 하겠지라는 생각에 산부인과 후 바로 미용실로 가서 관리 편리용 뿌리 매직도 했다. 미션 2 완료.
항상 느리게 사부작 거리는 성격상 수술하고 치료 종료까지 쉬기만 하는 건 도저히 못할 거 같다. 그동안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참여하지 못했던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검색했다.
1.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접근 가능하거나, 매일 진행되는 방사선 치료 시 병원 동선을 거쳐가는 장소 위주로 자치구 여성인력개발센터, 주변 직업학교에서 각종 교육과 의료용 3D 프린팅 교육들, 그리고 국비지원 프로그램들 검색
2. 치료 기간 내에 끝낼 수 있는 2월부터 시작해서 3월까지 들을 수 있는 단기 과정
3. 로드가 적고 초보도 들을 수 있는 과정
4. 아이 등하원 시간을 피할 수 있는 교육 시간
말로만 듣던 교육비 지원 바우처인 내일 배움 카드를 신청했다. 교육 프로그램을 검색하다가 언제든 조건에 맞는 교육이 생기면 바로 등록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했다.
결국 고르고 골라서 자비 100%인 ‘부동산 경매’ 수업을 등록했다. 팔을 쓰지 않아도 되고, 스트레스도 상대적으로 적고, 수업양도 적당하고 주 1일만 가도 되는 입문용 수업이다.
이제는 더 이상 내 몸을 갈아 넣지 않아도 돈을 굴릴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했고, 경제적 독립이 절실했고, 평소에도 너무 배우고 싶었지만 법 용어로 장벽이 높은 분야였다.
이 수업 하나로 내가 바로 도전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일단 발을 담가두면, 용어라도 익숙해지면, 언제든 마음 먹었을 때 뛰어들 수 있을 테니까. 나의 삶의 희망을 걸어본다.
그리고 또 강의를 들으면서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과의 만남도 설렌다. 미션 3 완료.
그리고 마지막. 의료 지원 등록하기.
아... 뭔가 내가 산정특례자가 된 게 어색하긴 한데 중증질환 및 희귀, 중증난치질환자 의료비 급여에 한해서는 5%만 내는 제도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상급병원에서는 암 진단받으면 당일 원무과에서 신청서 한 장 서명하고 3일 정도 지나면 카톡으로 산정특례자가 되었다고 메시지가 온다. 미션 4 완료.
12월부터 1월까지 두 달 동안 진단검사와 수술 전 검사를 모두 끝내고, 수술 날짜도 잡혔다.
이제는 아주 고요하다.
술전 검사상에서는 모든 검사가 all clear였다.
대부분 검사수치는 정상범위에서 하한치로 안정적이었고, 심지여 고밀도지단백콜레스테롤은 이상적으로 높았고, 저밀도지단백콜레스테롤은 이상적으로 낮았다.
난소 관련 호르몬 수치도 이상적이었다.
유방암 위험 소인인 비만도 없고 오히려 저체중 상태였고, BRCA 유전자 검사도 음성이었다.
암을 유발할만한 혈액학적 수치나, 유전 요인, 체형 등은 배제가 되었고 결국엔 환경의 영향이 주된 이유였을 법하다. 스트레스, 불면증, 불안.
이런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또 재발하겠지.
어쨌든 지금은 신이 나를 위해 이미 플랜을 짜 두신 것처럼 모든 게 착착 진행 중이다.
나의 마음은 점점 더 가볍고, 기분도 좋고 최고다. 온전히 마음 편한 휴가를 받은 기분이랄까.
수술 전까지 동물병원 진료들을 얼추 인계하고, 보호자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진 기간을 조절해 두느라 지금은 너무나도 바쁜 일상이지만.
이 바쁨 속에서 난 흠뻑 웃으며 직장동료들에게
"난 2월부터 쉰다~~" 하며 자랑을 하면,
"쉬는 게 부럽긴 한데, 꼭 이런 식으로 쉬어야겠어?"라 한다.
하하... 이 정도의 임팩트가 아니었으면 난 쉬지 않고 계속 일했을걸.
여행 전 준비 하면서가 가장 행복하다고, 지금이 딱 그런 느낌이다.
"두려워도 담담하게"를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난 두려움이 유독 많은 사람인데 그래도 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까 담담하자, 괜찮다, 할 수 있다 하면서 불안감과 감정을 억누르고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성인이 되고 줄곧 그래왔다.
이 두려움은 살아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지금은 아이를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선택하는 삶에 대한 두려움.
이 두려움은 죽음 앞에서가 아니었다.
이제 이 두려움도 강제 종료시켰다.
끝이 안 보였는데
이제는 하늘이 나의 편이라는 기분이다.
그동안의 삶의 무게에 대한 해방감.
이때까지는 정말 호기롭고 당당했다. 미리 써둔 글을 연재시기에 맞추다 보니 지금 느낌과는 너무나 큰 괴리감이 있다.
3월.
수술을 하고 보니 딱 여행 후 우울감을 느끼듯,
다시 똑같은 톱니바퀴를 굴리기 위해 복귀해야 한다는 압박감,
현타를 제대로 맞고 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려 했던 마음이,
엎어진 김에 누워버렸다.
복귀까지 2개월. 그때는 살아갈 용기를 장착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