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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Oct 08. 2020

달빛, 익숙한 서울 아래 이방인으로

생각의 끝을 잡고 

무심코 강의 저 멀리를 바라봤다. 바로 낮에 강을 보며 울렁이는 속을 다잡았었다. 흐르는 강물은 그 자체로는 죄가 없을거야, 두근거리는 가슴의 두려움이 물감처럼 녹아 저 땅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듯 상상으로 불안함을 조절했더랬다.


밤의 강은 조금 낫다. 흔들리는 물결도, 도시의 불빛도 낮보다는 은밀해서. 은밀함을 방패삼아 강이 아래를 둘러싼 풍경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다리가 은은히 내는 푸른 빛을 바라보며 사랑했던 외국의 풍경들을 떠올렸다. 이국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생경함 때문일 것이다. 지난 7월 해외를 떠올리며 쓴 글의 구절 중 이런게 있다. 


...해외만이 채워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이방인이 되는 감각이 그렇고, 표지판 하나 글자 하나가 눈에 크게 담기는 이 감각이 그렇다.


이감각. 다를 이異 자를 쓰는 단어. 한글을 쓰면 무심코 넘기는 한 획을 이국의 글자를 보며 다시 되새기는 일.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대중교통의 각기 다름을 온 정신으로 알아가기. 새로운 감각에서 익숙함을 찾아 '닮음'이라 명명하기, 내 마음 속 백과사전에 곱게 써넣기. 오감을 넘어 육감을 동원하는 가장 고되고 즐거운 노동을 할 수 없다. 곧 나는 살기 위해 익숙함 속 생경함을 찾기 시작했다. 이대로 일상에 매몰되기 싫어서, 익숙해져 희미해진 감각 속 드러나는 자신의 예민함에 지치기 싫어서.


달빛을 받으면 늑대가 되어버린다는 이야기는 흔한 판타지 소설 속 설정이다. 은색 달빛에 동물의 감각을 깨운다는 소설 속 한 구절을 유흥만으로 즐기면서도 한 편으론 부끄러운 환상으로 그려놓았나보다. 소설 속 은색의 달빛은 아니지만, 유난히도 크게 떠 있던 노란색과 주황색 사이의 달을 바라보니 익숙한 서울의 모습이 눈에 가득 담아졌으니까. 


읽던 책을 내려놓곤 달을 바라봤다. 내 눈으로만 바라보는게 아쉬워 현대인의 본능을 십분 발휘, 카메라를 들어 담으려 노력해봤다. 그러나 눈으로 담는 그만큼의 달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기계에는 아직 내 감정이 담기지 않나봐, 생각하며 유난히도 큰 달을 눈에 꼭꼭 넣었다. 버스가 달리며 달이 도망친다. 어느 날 아빠의 차에 누워 바라본 달이 떠올랐다. 달이 차올랐다, 가자라는 노래를 흥얼거렸더니 가족 모두가 웃었다. 그렇게 행복하던 순간이 또 있었나 생각하니 감정에 애상이 더해진다. 과거의 추억으로 한없이 도망치는 자신이 슬프다가도 어쩌면 과거에서 도망치는 건 현재의 나 자신이 아닐까, 괜히 순서를 뒤집은 수식을 고민한다. 


달빛은 익숙하던 서울의 모습 아래 오만하던 나를 바꾸었다. 다 와본 동네야, 이 곳은 지루해 떠나고 싶어. 도망칠 궁리로 가득이던 나를 심판하는 듯도 하지만 동시에 쉽사리 도망치지 못하는 나의 세상을 친절히 바꾸어 주는 듯도 하다. 익숙하던 서울 아래, 이방인의 모습으로 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달빛의 신호가 이감각을 잊지 말라는 엄중한 꾸짖음일지 이 도시를 더 사랑해보라는 부드러운 회유일지를 한참이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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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예민해진 감각을 불 같은 시나몬으로 달래며,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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