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의 충북 영동 와이너리 탐방기
원래대로라면 작년에도, 올해에도 해외 와이너리를 돌아다녀야 하는 우리 부부인데, 불행히도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인해 해외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와이너리 투어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풀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와이너리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마침 최근 들어 우리나라 와인의 품질도 상당히 괜찮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참이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여름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와인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기 적합한 곳은 아니다. 비가 많이 오면 당분이 응축된 포도가 재배되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충북 영동은 포도 수확기에 강우량이 적고 일교차가 커서 우리나라 전국 중에서 최고 당도의 포도를 생산하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그에 따라 국내 유일의 와인 산업 특구이자 우리나라의 대표 와인 생산지가 된 것이다.
그런 만큼 충북 영동을 첫 국내 와이너리 방문지로 선정하게 되었다. 가보고 싶은 와이너리를 두세 곳 고르게 되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산막 와이너리다.
산막 와이너리는 충북 영동군 영동읍 산막골길에 위치해 있다. 현대적인 느낌의 건물과 겨울이라 물은 없지만 마당에 위치한 풀장이 마치 별장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산막 와이너리 테이스팅 룸에 들어서면 곳곳에 예술 작품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예술로 빚은 와인'이라는 산막 와이너리의 철학과도 맞닿아있다. 대표 중 한 분인 안성분님은 서양화가로도 활동을 하고 계시며, 직접 그린 그림들을 와인 레이블에 넣고 그 그림의 이름으로 와인의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산막 와이너리의 차별화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싶었다.
산막 와이너리는 현재 8종류의 와인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데, 우리는 이 날 매니저님의 설명에 푸욱 빠져 8종류 중 총 7종류의 와인을 맛볼 수 있었다. 레드, 화이트, 주정강화, 거기에다가 브랜디까지! 산막 와이너리 와인의 다양한 매력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비원 Secret Garden
비원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재배하는 산머루와 캠벨을 블렌딩 한 레드 와인이다. 캠벨 포도에서 비롯된 화사한 포도 주스 향기가 코에서 느껴지는데, 맛에서는 반전의 산미가 느껴진다. 나무줄기 향과 피니쉬에는 오크 터치를 느낄 수가 있다. 라이트한 바디감. 솔직히 이 와인은 마시자마자 해외 와인과는 다르지만, 이대로 맛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한 병 구입! 알코올 도수는 13도, 쇠고기 요리나 진한 치즈 소스 파스타, 기름기 있는 한국 요리와의 페어링을 권장하고 있다.
비원퓨어 Secret Garden Pure
비원퓨어는 산머루 100%의 레드 와인으로, 비원보다 훨씬 묵직한 바디감을 느낄 수 있다. 묵직하게 눌러주면서도 어느 정도의 산미도 느낄 수 있다. 깊은 오크향이 느껴지는데, 참 재미있는 것이 프랑스 오크향과 미국의 오크향이 굉장히 다른데 한국의 오크향은 또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와인이다. 알코올 도수 13도로, 쇠고기와 진한 치즈, 양고기처럼 향이 진한 음식과의 페어링을 권장하고 있다.
화몽 Hwamong
화몽은 캠벨 100%의 레드 와인으로, 굉장히 라이트한 바디감이 특징이다. 향도 캠벨의 화사함이 주를 이루어, 여름에도 차갑게 해서 마실만한 아주 가벼운 레드 와인이라 할 수 있다. 알코올 도수 13도이며, 닭고기나 돼지고기처럼 색이 연한 육류나 생선, 파스타와의 페어링을 권장하고 있다. 페어링 하는 음식만 보아도, 라이트한 바디감을 연상할 수 있다.
아로퓨어 Aro Pure
아로퓨어는 아로니아 100%의 레드 와인이다. 아로니아는 엄마들이 요거트에 아로니아 분말을 타 먹는 것으로밖에 맛보지 못했는데, 이런 와인으로 맛볼 수 있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제일 한국적인 느낌이 난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뭔가 인삼의 뿌리, 식물의 뿌리 같은 향이 많이 났다. 그래서 양고기나, 진한 치즈, 쇠고기와의 페어링을 권장하고 계시지만, 느낌상 뿌리를 많이 쓰는 삼계탕이나 흙냄새가 많이 나는 장어와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라라 Lara 2019
라라는 작년에 처음 출시된, 산막 와이너리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화이트 와인이다. 사실 이 와인이 너무 궁금해서 산막 와이너리에 방문하게 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수라는 국산 청포도 품종 100%로 만들어진 이 화이트 와인은, 마시기도 전에 코에서 먼저 반응을 할 수밖에 없다. 이미 완판이 되어, 테이스팅 룸에도 오픈한 지 시간이 지난 것밖에 없어 향이 많이 날아간 것을 시음했는 데도 불구하고, 향이 엄청 생생하고 화사해서 놀라웠다. 마치 덴버 풍선껌 같고 하얀 꽃과 청포도 향이 아득하게 다가온달까. 딱 봄이 연상되는 풍미였다. 알코올 도수는 12도로, 해산물 요리와의 페어링을 권장하고 있다.
올해 5월에 신규 빈티지가 나온다고 하니, 다시 한번 방문을 해서 구매할 마음까지 든 우리나라의 샤도네이, 청수로 만든 화이트 와인 라라였다. 꼭 한 병만 사고 싶다면, 무조건 라라를 추천.
초련 First Love
산머루 100%의 비원퓨어를 브랜디로 주정 강화하여 만든 우리나라산 포트와인이다. 한잔 마셔보고, 산머루에서 어떻게 이런 풍미가 나는지 정말 놀라웠다. 정말 좋아하는 포트 와인에 버금갈 정도로, 초콜릿, 아몬드 향에 더불어 포도향이 나는 것이 기분 좋게 마시기 좋은 포트와인이었다. 알코올 도수는 20도로 높은 편이며, 티라미수 케이크나 초콜릿과 같이 달달한 디저트와 마시기 안성맞춤일 것 같다. 이 와인은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후배 부부에게 권해볼 생각. 한국 와인이라고 생각할지, 자신 있게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보려고 한다.
환희 Bliss
환희는 캠벨로 만든 화몽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이다. 사실, 브랜디는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 시음평을 제대로 할 수는 없지만, 너티한 향이 굉장히 향긋하고 코에 살짝살짝 스치는 볏짚향이 정말 좋았다. 양주를 좋아하시는 우리 아주버님에게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보기 위해 이것도 한 병 구입.
산막 와이너리의 와인들을 마셔본 소감은? 솔직히 정말 놀라웠다. 한병 한병 완성도가 높고, 해외 와인인 것 같으면서도 해외 와인과는 다른 한국 포도의 풍미가 살아있다고나 할까? 캠벨, 산머루, 아로니아, 청수 등 각각의 포도 풍미가 확실히 해외 와인에서 접하지 못했던 그것이었다. 문득 외국 사람들이 마시면 어떤 평을 할지 괜히 내가 설레고, 기대되는 지점이 있었다. 우리나라 와인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그 날이 몹시 기대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