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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Jul 22. 2022

부르고뉴 여자 생산자의 자존심, 도멘 안느 그로

오스틴의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여행기 Domaine Anne Gros

#이게 얼마만의 와이너리 투어인가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해외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2019년 10월에 나파밸리 와이너리를 방문했으니 3년 만에 해외 와이너리를 방문한 셈이다.

때문에 이번에 부르고뉴를 방문하면서 최대한 많은 와이너리를 들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그럴 수가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6월은 9월 포도 수확을 앞두고 와이너리가 바쁜 시즌일뿐더러, 심지어 새로운 와인이 채워지지 않아 곳간(셀러)이 비어있어 많은 와이너리에서 와인 투어를 진행할 수 없다는 답변을 주었다.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루 뒤몽 같은 와이너리도 방문해 보고 싶었지만 실패.


둘째로는, 부르고뉴로 향하던 길에 차 사고를 당했다. 앞에 차들이 멈춰 우리도 정지해 있던 중, 뒤에 오던 자전거 라이더가 확인을 못하고 고속 주행하다가 헬멧 그대로 우리 차 뒷유리에 박았고 뒷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뻥 뚫린 자동차로 곳곳을 다니는 건 매우 위험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본 도심에 있는 와이너리들을 방문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래서 유일하게 방문한 곳이 바로 도멘 안느 그로다. 안느 그로는 부르고뉴 본 로마네 마을의 여성 생산자로,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함으로써 부르고뉴 여성 생산자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그로(Gros) 패밀리는 부르고뉴 와인 생산자 집안으로 굉장히 유명하다. 에이에프 그로, 미셸 그로 등등 모두가 그로 집안의 와이너리인데, 그중에서도 안느 그로는 프랑수아 그로의 외동딸로 독자적인 와이너리를 구축하여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우리는 그로 패밀리, 패밀리, 패밀리!

파란 문의 감각적인 도멘 안느 그로



도멘 안느 그로에는 총 세 가지의 와이너리 투어 프로그램 제공하고 있다.

도멘 안느 그로 와이너리 투어 프로그램

그중에서 우리는 두 번째 프로그램인 Terriors and wines Formula를 신청했다. 200유로이고 약 2시간 정도 진행되나, 우리는 열정 있는 가이드를 만나 30분 정도 더 진행되었다. 함께 본 로마네 밭을 돌며 설명을 듣고, 셀러에 가서 와인 제조, 숙성 등의 프로세스에 대해 배우고, 오크통에서 한창 숙성 중인 와인을 테이스팅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멘 안느 그로의 와인 투어가 좋았던 이유는 내용도 풍성할뿐더러, 남편과 나 단둘이 프라이빗하게 진행되었다는 데에도 있다. 나파밸리에서 와이너리 방문을 했을 때, 대규모 와이너리의 경우 많은 사람들과 우르르 투어를 진행했던 적이 많아 안느 그로의 프라이빗 투어가 더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듣기만 했던 본 로마네가 내 앞에!

가슴이 웅장해 진다, 로마네 꽁띠!


투어는 부르고뉴 본 로마네 마을의 밭을 둘러보며 시작되었다.

본 로마네.

아마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부르고뉴 본 로마네 밭이 어떠한 의미인지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쉬부르, 에세죠, 끌로 드 부조 등등 내로라하는 밭이 있는 곳이 바로 본 로마네 마을이다.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정말 유명한, 와인을 모르는 사람들도 들어본 적이 있을 법한 로마네 꽁띠가 바로 이곳에 있다.

'Romanee Conti'라는 이름이 적힌 밭 앞에 서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웅장해진다.


우리의 와이너리 투어 담당자는 본 로마네 마을 지도를 펼쳐두고 부르고뉴 및 본 로마네 전반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도로에 가까워질수록 땅이 깊지가 않아 영양 같은 것이 불충분하여 빌라쥐 등급이고, 경사가 있는 곳일수록 땅이 깊을 테니 흙 속의 영양분이 풍부해져 프리미에 크뤼부터 그랑 크뤼까지 이어진다는 것도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들어보니 수긍이 되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신의 물방울>에서 읽기만 했던, 바로 두 발자국 떨어진 옆 밭이지만 그렇게나 속성이 다르다는 게 이제야 이해가 간 유익한 투어였다고나 할까.


6월, 아직 포도는 익어가고 있다.


부르고뉴의 주요 재배 포도 품종은 피노 누아와 샤도네이다. 특히 이곳 꼬뜨 드 뉘는 레드 품종인 피노 누아로 유명한데, 아직 포도가 익어가는 6월이라 직접적으로 적색을 띠는 포도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알갱이도 작고 푸릇푸릇하다.



안느 그로 패밀리 스테인드 글라스

밭 투어 이후에는 도멘 안느 그로로 돌아와 셀러 투어를 진행했다. 셀러에 들어가기 전 건물 안에 그려져 있던 안느 그로 패밀리의 스테인드 글라스. 안느 그로와 함께 그녀의 세 아이 줄리, 폴, 마린이 그러져 있다.


투어를 맡은 가이드가 여담으로 해준 말이지만, 그로의 세 아이 중에서 가장 막내인 마린만 유일하게 와인을 좋아하지 않아 와이너리 일을 하고 있지 않은데 그 이유가 마린은 와인에게 엄마 안느 그로의 우선순위를 빼앗겼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라면, 우리 집이 와이너리라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마셨을 텐데 가족이래도 정말 사람 일은 모를 일이다.


도멘 안느 그로의 셀러 방문


도멘 안느 그로의 셀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부르고뉴의 와인은 밭을 최상의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서 연간 생산할 수 있는 와인의 수량이 정해져 있다고 하니, 미국의 대형 와이너리와 비교를 하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수확된 포도들은 착즙 되어 위의 스테인리스 통에서 1차로 저장되고, 오크통에서 2차 숙성, 그리고 병입 되어 라벨링 되는 프로세스로 진행이 된다.



#본 로마네 와인의 기품 있고 우아한 정수를 맛보다, 도멘 안느 그로

드디어 설명은 끝났고, 오크통에서 직접 바로바로 신선한 와인을 테이스팅해 볼 시간!

와이너리 투어에서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다양하고 훌륭한 밭에서 나오는 피노 누아와 샤도네이들을 언제 이렇게 비교하며 마실 수 있겠는가 말이다.




첫 시작은 가볍게 화이트로 시작. 안느 그로는 레드인 피노 누아보다 화이트인 샤도네이에 더 큰 사이즈의 오크통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유는 오크한 뉘앙스가 화이트에 너무 많이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같은 빈티지더라도 다양한 오크통을 사용해 보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시음했던 와인은 2021 빈티지로, 아직은 숙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와인이라서, 병입 된 와인들 보다는 확실히 깊이가 떨어지고 산미는 쨍했지만, 풋와인은 또 그만의 신선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테이스팅 노트가 조금, 많이 짧다.




1. 도멘 안느 그로 부르고뉴 블랑 2021

약간의 그라스, 엄청난 산미와 미네랄리티


2. 도멘 안느 그로 오뜨 코뜨 블랑 2021

트로피컬, 끝에 요구르트 같은 느낌과 쨍한 산미



3. 도멘 안느 그로 샹볼 뮤지니 2021

엄청난 딸기잼, 여리여리하기보다는 살짝 캐릭터가 있다. 젖은 땅과 버섯, 축축한 숲의 느낌.


4. 도멘 안느 그로 본 로마네 2021

샹볼 뮤지니보다는 덜 프루티하다. 포도 줄기의 뉘앙스, 검푸른 과실과 우디한 느낌이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5. 도멘 안느 그로 에세조 2021

역시 그랑 크뤼답게 여운이 길다. 스트로베리, 스파이시, 그리고 엄청 빽빽한 울창한 숲의 느낌을 받았다.


6. 도멘 안느 그로 클로 부조  2021

굉장히 거칠고 와일드한 느낌. 다크 푸르트의 뉘앙스. 입술이 플럼핑 되는 것 같이 스파이시하다.


7. 도멘 안느 그로 리쉬 부르 2021

제일 여운이 길었던 와인. 다크 푸르트와 우디함이 느껴지는데 다른 어떤 와인보다도 혀에 남는 여운이 가장 길었다.




#안느 그로의 새로운 도전, 도멘 안느 그로 & 장 폴 톨로 로 드 라비


도멘 안느 그로의 와인을 모두 시음해 본 뒤, 그녀와 그녀의 남편 장 폴 톨로가 함께 운영하는 와이너리의 와인도 시음해 볼 수 있었다. 도멘 안느 그로 & 장 폴 톨로 로 드 라비는 프랑스 남부인 까젤에 위치해 있다.


주요 품종으로는 까리냥, 생쏘, 쉬라, 그르나슈로 이 품종들을 활용해 부르고뉴 와인과는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사실 이 와인들은 우리의 입맛에 별로 맞진 않았다. 섬세하고 아주 복잡한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다가, 갑자기 엄청 묵직한 이 와인들을 마시니 머리가 띵해지고 갑자기 취기가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목이 바싹바싹 말라, 와인을 그만 마시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안느 그로와 한 컷!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사무실로 갔더니 안느 그로가 안경을 끼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안느 그로를 이렇게 보다니!

사실 도멘 안느 그로의 와인을 사려고 했는데, 서두에 말했다시피 시기적으로 셀러가 비어있는 시즌이라 재고가 없어 살 수가 없어 매우 아쉬웠던 참이었다.

그런데 안느 그로까지 못 만나면 더 속상할 뻔했는데, 이렇게 인연이 닿아 보게 되어 너무 영광이고 좋았다. 한국도 몇 번이나 방문한 적 있다는 안느 그로는 아주 유창하게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전했다.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대담하게 하는 안느 그로, 그녀와 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와인 가도를 달린 힝구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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