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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Jul 31. 2022

내가 MBTI를 좋아하는 이유

넌 나에게 소속감을 주었어


나는 MBTI 과몰입러다.

MBTI를 맹신하고, MBTI를 좋아한다.

과몰입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MBTI를 좋아하는 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 성격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열정이 항상 과했다.

좋으면 너무 좋았고, 슬프면 또 너무 슬펐고, 그 너무 좋음과 너무 슬픔을 그만큼 표현했다.

과하게 천진난만했다.

사춘기, 그 예민한 시기에는 같은 반 남학생에게 오버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다.

내 성격이 남들과 다르다는 확신이 들었고, 나와 달리 매사에 차분한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성격의 그 남다름이 정말 싫었다. 평범한 을녀가 되고 싶었다.


사회인이 되고도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무언가를 열렬하게 좋아하고, 누군가를 잘 믿고 마음을 잘 준다.

소위 말하는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안 하고(못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시도를 안 한다),

좋아하면 무조건 일단 먹는 사람인 것이다. 인간 자석이란 별명도 얻었다.

배신도 당하고 상처도 받았지만, 그만큼 마음의 회복도 빨라 배움도 없었다.

이쯤 되 남들과 다른 것을 넘어서 내가 무언가를 대단히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MBTI가 등장했다.

나의 MBTI는 ENFJ. 한국인 MBTI 중 1%를 차지하는, 한국에서 가장 희소한 유형.

그리고 세계에서는 약 4%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MBTI를 갖고 있다고 한다.

수는 적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았다.

'나만 이런 게 아니었어, 나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구!' 그 감정이 주는 소속감이 좋았다.


나에게 MBTI는 '아파트에 사는 것'과 같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주택이나 빌라에 살았던 나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파트에 사는 것을 보며 내 상황이 평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다.

엄마에게 아파트에 살자고 계속 졸랐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친구들과 동일해지고 싶었던 마음에서였다.

가뜩이나 아버지를 빨리 여의어 가정환경도 남들과 달랐는데, 주거 환경마저 다르다고 생각하니 주변에 친구는 많았지만 은연중에 스스로 친구들과 나를 구분 지었다. 무너진 소속감, 나는 불안했다.


결혼을 하고 33년 만에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매주 화요일 아침 6시 반부터 9시까지 다 같이 모여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 불편함조차 좋았다.

내가 천 세대 중 한 명이라는 게 좋았다.

아파트에 사는 삶은 동일한 시간에 사람들이 변기에 앉아 이를 닦는 개성 없는 삶이라는데,

나는 그 평범함과 보통의 삶이 좋았다.

드디어 내가 한국의 평범한 삶에 속하게 되었구나,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나에게 MBTI란 그런 것이다. 소속감을 주는 것.

그러니 MBTI 그만 맹신하라고 하지 말아 달라.

너는 누군가에게 그만한 소속감을 준 적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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