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베스트] 하셀그로브 디 올드 넛 주정강화 포트 와인
매일 콜키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에 직접 산 와인을 들고 가서 먹다가, 이번에는 모처럼 친한 동생 한 명이 본인이 vvvvvvip인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사겠다고 하여 두 손 가볍게 광화문에 있는 몽로 레스토랑에 갔다.
재밌는 건, 이 친구가 메뉴판에 있는 모든 와인을 다 마셔보았다고 하여, 소믈리에분께 메뉴에 없는 와인과 그에 맞는 음식 메뉴를 페어링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매번 와인과 음식 뭘 페어링 하면 될지 고민하느라 바빴는데, 전문가분이 알아서 페어링해 주시니 모처럼 마음 가볍게 마실 수 있었다.
결과는 역시는 역시. 역시 or 역시. 전문가는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는 독특한 향과 맛의 와인을 이렇게 예쁜 음식들과 훌륭하게 페어링해 주시다니.
너무 독특해서 음식과 잘못 페어링 하면 아주 별로일 수 있는 와인들을 신의 손으로 살려주셨다.
와인 리스트 (마신 순서대로)
1. Famille Berrouet Irouleguy Herri Mina Blanc 2014 (파밀리에 베루에 이룰레기 에리 미나 블랑 2014)
2. Jean-Paul Daumen Gigondas 2012 (장 폴 도망 지공다스 2012)
3. Haselgrove The Old Nut Fortified (하셀그로브 디 올드 넛)
White wine from Irouleguy, France
생전 처음 보는 품종 Petit Manseng, Petit Courbu, Gros Manseng으로 만들어진 와인. 단언컨대, 지금까지 마셔본 그 어떤 화이트 와인도 이보다 독특하지 않았다.
처음 온도가 높았을 땐 레몬향이 강하게 나며, 엄청난 산도를 자랑했다. 그런데 온도가 점점 낮아지면서 복숭아와 멜론 같은 과즙이 많은 과일의 향이 났는데, 이 때문에 쇼비뇽 블랑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와인의 킬링 포인트는 피니쉬에 있었다. 과일맛이 지나간 자리에 아주 달큼하면서도 씁쓸하다 못해 짭조름한 맛이 느껴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믈리에님은 그것이 미네랄리티라고 말씀해 주셨다. 미네랄리티의 폭발, 에리 미나 블랑.
이런 미네랄리티가 페어링 해주신 문어, 관자, 로케트를 곁들인 샐러드와 잘 어울렸는데, 그 이유는 문어 옆에 섞어 먹는 고춧가루와 씁쓸한 맛이 나는 풀인 로케트가 미네랄리티의 씁쓸 짭조름한 맛과 더없이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Red wine from Gigondas, France
나의 첫 지공다스 와인인데, 소믈리에님은 전형적인 지공다스 와인은 아니라고 했다.
표현이 아주 이상할지 모르겠는데 (무슨 와인에서 저런 맛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아주 한국적으로 다가왔다. 첫 향에서 메주콩같이 꿉꿉한 향이 나더니, 두 번째 모금에서는 간장이나 쯔유 소스 같은 향이 났다. 그리고 초록색 피망 향이 솔솔. 다른 사람들 잔에 비해 내 잔이 산화가 더 빨리 진행됐는지 피망이 매워지다 못해 멘톨향까지 났다. 눈이 매울 지경. 친구들도 내 잔의 향을 맡고 매우 맵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모든 향이 걷어지고 블랙커런트 향이 솔솔 났다.
아주 변화무쌍했던 와인.
그 꿉꿉한 향과 스파이시함이 치즈랑 피망, 과일이 섞인 요리와 잘 어울렸고, 또 그 개성 있는 강한 향이 두 번째 페어링 한 공심채, 마늘종과 곁들인 와사비 살치살의 강한 맛과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 역시 쎈캐엔 쎈캐다.
Fortified wine from MaLaren Vale, Australia
마지막 코스는 디저트 와인 타임. 나는 달디 달은 디저트 와인은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포트 와인(주정강화 와인)은 매우 좋아한다. 도수가 최고 24도 정도까지 가는데도 맛과 향이 부담스럽지가 않다.
주정강화 와인의 엄마는 와인, 아빠는 브랜디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두 가지를 섞어서 만들기 때문이다.
디 올드 넛에서는 서양 자두인 푸룬, 그리고 볶은 듯한 커피와 아몬드 향이 난다. 푸룬은 한국에서 파는 일반 자두보다 더 달큼한 맛이 난다. 이걸 잘 아는 이유는, 예전에 이너뷰티 브랜드 마케팅에 있을 때, 푸룬을 가지고 만든 제품을 굉장히 많이 먹었었기 때문에 익숙해서이다.
푸룬, 커피, 아몬드 향이 티라미수와 라즈베리가 박힌 아이스크림이랑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이것이 단순한 페어링을 지나 최고의 경지인 마리아주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 날 마신 3병의 와인은 모두 너무나 개성 있었고, 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다.
하지만 베스트 와인을 꼽아야 한다면, 아무래도 마리아주의 경지를 느끼게 해 준 디 올드 넛 주정강화 와인이 아닐까 싶다. Haselgrove The Old Nut 와인을 소개합니다.
품종: 쉬라즈, 그르나슈
지역: McLaren Vale (멕라렌 베일) > Australia
생산자: Haselgrove
당도: 높음
산도: 낮음
타닌: 적음
어울리는 음식: 치즈, 아이스크림, 티라미수 등 디저트
점수: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