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한 와인을 만들어내는 테루아르가 일본에 있었다니. 솔직히 인식이 부족했소. 다시 봤어요. - 14권 159쪽
2018년, 처음으로 <신의 물방울>을 읽으면서 너무나 궁금했던 일본의 코슈 와인. <신의 물방울>에서 이야기하듯 정말로 일본의 코슈 품종이 잠재력이 있는지 궁금했고, 일본 와인이 떼루아를 칭찬할 만큼 놀랍게 발전하고 있는지 역시 궁금했다.
이건 샤르도네지만 코슈 포도로 만든 것도 진짜 맛있더라구. 언젠가 일본 와인도 수출상품으로 주목받는 날이 올지 몰라. - 20권 13쪽
그레이스 와이너리 페이지에 삽입된 코슈 포도 사진
코슈 품종은 일본의 토착 품종으로 등재된 포도 품종이다. 그레이스 와이너리의 설명에 의하면, 코슈 품종의 기원은 일본에서 멀리 위치한 캅카스(South Caucasus)이며, 실크 로드를 통해 왔을 거라 추정하지만 어떻게 일본까지 오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야마나시 현에서 나고 자라고 있다. 2010년에는 일본 토착 품종 최초로 국제 포도 와인 기구인 O.I.V에 등록되어 레이블에 표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코슈 와인은 복숭아와 시트러스 향이 특징적이고, 일본 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하여 궁금했었는데, 2018년에 일본 교토의 작은 와인샵에서 발견하고 일부러 사 먹어 봤었다.
그 당시 마셨던 와인이 바로 아래의 와인이다.
Marufuji Rubaiyat Koshu Sur Lie 2016
마루푸지 루바이얏 코슈 쉬르 리 2016
White Wine from Yamanashi-ken, Japan
Pairing with 일본 편의점 문어숙회, 치즈, 샌드위치
2018년, 교토 여행을 가서 마신 마루푸지 코슈 와인
마루푸지 와이너리는 1890년, 지사쿠 오무라(Jisaku Omura)가 본인의 집 앞 정원에 작게 와이너리를 차린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뒤 4대째 와이너리 운영을 이어오고 있으며, 일본 품종인 코슈뿐만 아니라 메를로, 까베르네 쇼비뇽, 쁘띠 베르도 및 샤도네이까지 재배하고 있다. 연간 160,000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마루푸지 루바이얏 코슈 쉬르 리는 코슈 100%의 화이트 와인이다. 2014 빈티지는 2015 일본 와인 컴페티션에서 은메달을 차지한바 있다.
2016 빈티지를 마셔보았다. 목 넘김이 좋은 똑 떨어지는 산미. 레몬의 시트러스가 느껴진다. 당도는 없다. 일본이란 나라를 떠올리면 느껴지는 깔끔하고 정돈된 맛. 일본 편의점에서 사 온 까망베르 치즈의 부드러운 지방 맛을 코슈 와인의 깔끔한 맛이 중화시켜 준다. 마치 일본 초밥을 먹을 때 중간중간 입을 씻겨주는 초생강 느낌.
위의 와인을 마시고 일본 코슈 와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생겼던 나는, 일본 여자분과 결혼해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남편의 친구를 통해 세 병의 코슈 와인을 받아보았다.
우리나라의 폭발적인 주류세로 인해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돈을 들였지만(세 병에 거의 20만 원 돈으로 이 돈이면 차라리 부르고뉴를! 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한병 한병 아끼며 오픈했다. 지금 그 일본 코슈 시음기를 적어보려 한다.
세 가지의 코슈 와인
Grace Koshu 2018
그레이스 코슈 2018
White Wine from Yamanashi-ken, Japan
Pairing with 쉬림프 샐러드
일본을 닮은 그레이스 코슈
그레이스 와이너리는 <신의 물방울>에서도 등장한 적이 있는 와이너리다. 그레이스 와이너리의 샤도네이를 마시며 일본 와인의 품질에 주인공들이 감탄을 마지않았었다. 그레이스 와이너리의 시초는 1923년이지만, 그레이스라는 이름을 쓴 것은 1953년, 3대 오너인 카즈오 미사와 때부터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본 와인의 역사를 쓰고 있다.
그레이스 코슈 2015, 2016 빈티지는 모두 디캔터 월드 와인 어워드에서 플래티늄 메달을 얻은 바 있고, 2014, 2017, 2018 빈티지 역시 금메달을 얻은 바 있다.
금메달을 걸었다는 2018 빈티지를 마셔보았다. 매화수 혹은 청하 같은 매실향. 소금 같은 미네랄리티. 묵은지를 물로 씻어낸 백김치 같은 발효의 뉘앙스. 와인이라기보다는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긴 전통 담금주 같았다. 컬러 역시 고요하고 맑은 옅은 노란색. 전체적으로 일본의 고요하고 담백한 느낌이 묻어나는 코슈였다.
카츠누마 죠조 와이너리는 코슈 품종을 세계에 처음 선보인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19세기 비단실 사업을 운영하다가, 80년 전 현재 오너의 할아버지가 와인 사업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족 운영 일본 와이너리다.
코슈 스파클링인 아루가 브랑카 브릴란테는 2015년, 2017년 외 여러 해에 IWSC 은상을 거머쥐었다.
2016 빈티지를 마셔보았다. 딱 0.5초 샴페인 같은 이스트가 나타났다가, 아스라이 사라진다. 일본 코슈 특징으로 보이는 매실향과 내추럴 와인에서 맡았던 파마 중화제 향이 떠나간 이스트 향의 자리를 채운다. 기포감은 탄산수 같이 다소 강하고, 산미와 미네랄리티를 헤매다가 미네랄리티에 정착한다. 기포감은 강한데, 풍미는 고요하고 깔끔했던 재밌는 코슈 스파클링.
L'Orient Shirayuri Katsunuma Koshu 2018
시라유리 로리앙 카츠누마 코슈 2018
White Wine from Yamanashi-ken, Japan
사진조차 찍지 않았던 임팩트 없던 코슈
시라유리 와이너리는 3대째 이어져 오는 야마나시 현의 와이너리다. 코슈와 다양한 품종, 체리 와인 등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이 와인은 할 말이 없다. 색도 투명에 가까웠고, 운송 중 잘못된 건지 맛이나 풍미, 향이라 할만한 것이 아예 없었다. 이 와인의 평은 다음에 일본 여행을 갈 때까지 보류.
네 병을 마시고서 코슈 와인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그 네 병을 마시며 느꼈던 것은 일본 코슈 와인은 정말 일본을 닮았다는 것이었다. 남에게 피해 끼치기 싫어하는 조용함과 정돈됨,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과 담백함. 내가 느끼는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코슈 와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일본 초밥을 먹을 때 생선의 종류가 달라질 때마다 혀를 정돈하기 위해 먹는 초생강과 녹차 같은 와인이라고나 할까. 깔끔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뭔가 와인이라기에는 특유의 매실향이 강해, 오히려 청주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울리는 음식도 흰 살 생선회, 일본의 채소 요리 등 일본 음식 외에는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와인은 결국 그 나라의 음식을 닮고, 그 나라의 포도가 자라는 떼루아를 닮는다는데, 그 한계가 한국 와인과 마찬가지로 일본 와인이 국제에서 계속해서 인정받기 위해 풀어내야 하는 과제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