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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Jun 14. 2023

올드 빈티지 와인에서는 푸근한 묵은 향이 납니다.

[올빈 1탄] 뫼르소 2013 빈티지, 테누타 루체 1997 빈티지 外


와인을 마신 지 이제 꽤 시간이 지나 많은 것들이 기억 속에 희미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처음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했는데 쟁쟁한 고수들 사이에서 혼자 국가를 맞춘 일이라든가, 처음으로 5대 샤또를 마신 일이 그러하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처음으로 '올드 빈티지'를 마셨던 때일 것이다.


코로나 전, 지인들과 미국 와이너리 투어를 다닐 때 지인 덕분에 미국 칼레라 피노 누아 1999 빈티지를 마신 적이 있다. 처음 마셔본 올빈 와인에서는 재밌게도 푹 익은 태양초 고추장 맛이 났다. 그 뒤로 틈틈이 마셔본 올빈 레드에서도 똑같이 고추장 담근 맛이 났다. 와인에서 이런 풍미가 날 수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이것이 발효의 향인가 싶었다. 아무튼 이런 기억으로 인해 언제나 올빈 와인에 대한 흥미는 늘 가슴속에 간직되어 있었다. 그래서 남편 및 지인들과 함께 '올빈벙'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당시 적었던, 다소 심플하지만 충격적인 테이스팅 노트



첫 번째 올빈벙에서는 10년 이상된 올드 빈티지 3병과 입가심용 2병, 총 5병을 마셨다.



Wine List.
1. [올빈] Domaine François Gaunoux Monopole Meursault 'Clos de Meix Chavaux' 2013

2. [올빈] Tenuta Luce 1997

3. [올빈] WillaKenzie Estate Terres Basses Pinot Noir  2006

4. Dufouleur Frères Nuits-Saint-Georges 2016

5. Sieur d'Arques Aimery Crémant de Limoux Grande Cuvée 1531






도멘 프랑수아 고누 모노폴 뫼르소 끌로 드 메이 샤보 2013

Domaine François Gaunoux Monopole Meursault 'Clos de Meix Chavaux' 2013

White wine from Meursault, France

Chardonnay 100%

올빈 뫼르소라니, 오늘 이곳에서 누우면 되죠?



첫 번째 올빈 와인은 도멘 프랑수아 고누의 뫼르소 끌로 드 메이 샤보 모노폴 2013 빈티지였다. 도멘 프랑수아 고누는 꼬뜨 도르에 위치한, 약 10 헥타르 정도 되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포도는 모두 손으로 수확하며, 줄기는 100% 제거, 스테인리스 통에서 숙성시킨다. 이 와이너리는 현재 프랑수아 고누의 딸인 끌로딘 고누가 운영하고 있다. 레드 와인 6종, 화이트 와인 3종을 운영하고 있는데, 화이트 와인 3종 모두 뫼르소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마신 뫼르소는 끌로드 메이 샤보 모노폴. 모노폴(Monopole)이라 하면, 하나의 생산자가 특정 밭을 모두 소유한 것으로서, 여러 생산자가 나눠 가진 밭과는 달리 그 생산자와 그 밭의 특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오픈하자마자 코를 스치는 수제 요거트, 브라질 넛츠, 아몬드 같은 견과류의 고소하고 기름진 향, 마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같은 기름진 텍스처, 그러면서도 오렌지, 자몽 껍질 같이 혀에 남는 싸워링함이 여운을 준다. 오래되어서 소금이 열린 꽁테나 그라노파다노 치즈처럼 짭조름하다. 시간이 지나니 수제 요거트는 지나가고 갑자기 올리브유 느낌이 확 살아나고, 뒤에 싸워링한 느낌은 사라진다. 정점을 지나니 갑자기 요맘때 같은 딸기요거트 향이 훅 올라오며, 좋은 끝을 보여준 몹시 좋은 뫼르소였다.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화이트가 부르고뉴 뫼르소인데, 올드 빈티지 뫼르소를 마셔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테누타 루체 1997
Tenuta Luce 1997

Red wine from Toscana, Italy

Sangiovese, Merlot blending

몬탈치노 지역의 이글이글한 태양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테누타 루체


1997 빈티지의 와인 등장. 다들 1997년에 뭐 하고 계셨는지. (저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만.)

이 와인은 미국 와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몬다비와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와인 명문인 프레스코발디가 합작하여 만든 와인으로, 로버트 몬다비가 프레스코발디 성에서 자고 일어나 몬탈치노 지역의 태양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름이 'Luce(빛)'이 되었다고 한다.


테누타 루체 와이너리는 무려 218미터에서 418미터 높이에 위치해 있어 토양의 상층에는 점판암, 중간층에는 모래와 사암, 하층에는 혼합 점토 등 다양한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다양한 토양을 갖고 있으니, 포도에서는 다양한 양분을 마음껏 머금었을 것이고 다양한 풍미가 느껴질 게 자명하다.


루체 와인은 산지오베제와 메를로를 블렌딩 한 와인으로서, 해당 블렌딩으로는 몬탈치노 지역에서의 첫 번째 와인이다. 1997년 봄, 몬탈치노는 유난히 따뜻했고, 그로 인해 다양한 품종의 포도들, 특히 그중에서도 산지오베제가 빠르게 움트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4월, 남부 토스카나는 혹한과 결빙으로 고생을 했으나, 다행히 테누타 루체는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와이너리의 일부분만이 영향을 받았다고.


이 와인을 마시고 있자면, 작은 고추가 매운 것이 아니라 오래된 고추가 매운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97년생인데 이렇게 짱짱하다고? 믿을 수 없는 생동감이 여전히 병 안에 흐르고 있다. 코를 뚫는 스파이시함(민트, 유칼립투스 계열), 살짝 코에 스치는 고트 치즈 같은 뉘앙스와 잘 익고 있는 장독대 속 고추장 느낌, 말린 장미와 줄기, 말린 토마토 에서 에이징을 느낀다. 혀에 탄닌감은 별로 안 남고 오히려 개운하고 라이트 한 느낌. 시간이 지나니 훈제 고기 요리를 할 때 쓰는 참나무 오크칩 향, 포트와인 같은 견과류 향이 올라온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복합미와 생동감을 보여준 놀라웠던 루체 1997 빈티지.






윌라켄지 에스테이트 테르 베스 피노 누아 2006
WillaKenzie Estate Terres Basses Pinot Noir 2006

Red wine from Yamhill-Carlton District, U.S.A

Pinot Noir 100%

레이블의 물결무늬는 두 개의 강과 구릉 진 얌힐 칼튼의 지형을 상징한다고 한다.


윌라켄지 에스테이트 와이너리는 미국 피노누아의 핵심 생산지인 오레건 주의 북부 윌라메트 밸리의 얌힐 칼튼 구역에 위치해 있다. 이들은 프랑스에서 말하는 '떼루아'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래서 '윌라켄지'라는 이름 역시 이곳의 고대 퇴적된 토양을 묘사하는 동시에, 윌라메트 밸리에 흐르는 두 개의 강 '윌라메트 강(Willamette river)'과 '맥켄지 강(McKenzie river)'을 의미한다고 한다.


와인의 이름인 Terre Basses는 프랑스어로 'Low land'인데, 말 그대로 이 와인을 만든 포도를 심은 밭은 이 와이너리에서 낮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 독창적인 떼루아를 가졌다고 한다. 낮은 지대에 위치한 덕에, 포도도 빨리 익고, 작고 단단한 스킨을 가진 포도가 자란다고. 그로 인해 굉장히 다크하고 힘 있는 피노 누아가 생산된다고 한다.


2006년은 나의 학번빈이라 조금 더 애정이 간다. (별 거에 다 의미 부여하기)

이끼 낀 히노끼 숲, 개운한 솔의 향, 다크한 블랙베리 향, 생화 장미향과 동시에 록시땅 핸드크림의 장미향도 느껴진다. 그리고 대학생 때 농활에서 털었던 서산의 깨나무 향도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우디하면서도, 개운한 느낌이 드는 피노 누아였다.

 





뒤플뢰 프레레 뉘생 조르쥬 2016
Dufouleur Frères Nuits-Saint-Georges 2016

Red wine from Nuits-Saint-Georges, France

Pinot Noir 100%

레이블에 그려진 장인처럼, 유구한 역사를 지닌 뒤플뢰 프레레


뒤플뢰 프레레는 굉장히 긴 역사를 자랑한다. 심지어 16세기말 Duke Casimir라는 군대로 인해 Nuiz 마을이 파괴된 시점까지도 추적할 수 있다고 하는데, 본격적으로 그들이 첫 번째 조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1596년에 태어난 Gilles Dufouleur이다. 이 와이너리의 이름이자 이 사람의 성인 Dufouleur는 현대적인 방식이 적용되기 전 부르고뉴, 특히 뉘생조르쥬 마을에서 Wine trader를 의미하는 직업이었다고 한다.


와이너리의 시초는 Symphorien DUFOULEUR인데, 그는 1848년에 와이너리 사업을 처음 시작한다. 그리고 1930년 대 전까지 그의 자녀인 Alexis와 Joseph DUFOULEUR가 참여하여 Dufouleur 뒤에 아버지와 아들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Père & Fils'를 붙였고, 1932년이 되어서 Joseph의 아들들(Bernard, Hubert, Jean)이 참여함으로써 Dufouleur 뒤에 형제들을 의미하는 'FRÈRES'를 붙이고 분리시키고 나서야 지금의 'Dufouleur Frères'가 되었다. 이처럼 레이블에 그려진 옛 장인만큼이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와이너리다.


마구간의 짚 향, 체리 향, 그리고 푸근한 된장국 같은 뉘앙스가 느껴진다. 앞에 마신 올드 빈티지 와인들 때문인지 살짝 밍밍한 느낌이 있다. 미지근한 체리즙 같다고나 할까.






씨에르 다르퀴 에므리 크레망 드 리무 그랑 뀌베 1531 N.V
Sieur d'Arques Aimery Crémant de Limoux Grande Cuvée 1531

Sparkling wine from Crémant de Limoux, France

Chardonnay 70%, Chenin Blanc 20%, Mauzac 10%

레드 와인으로 다소 피로할 수 있는 혀를 스파클링으로 산뜻하게 깨워주기!



씨에르 다르퀴 에므리 크레망 드 리무 그랑 퀴베는 이전에도 몇 번 소개한 적이 있는 스파클링 와인이다. 와이너리 이름에 있는 1531이란 숫자는, 1531년에 프랑스 최초로 스파클링 와인을 양조했다고 하여 붙여진 것으로 역시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이전에는 마실 때마다 이스트 향이 주로 느껴져서 단팥빵이 연상되었는데, 이번에는 이전엔 못 느껴봤던 파인애플 같은 열대 과일향, 토스티한 향, 등유 향(페트롤 향), 그리고 화이트 플로럴 향까지 느낄 수 있었다. 아주 푸욱 익은 올빈 와인들을 마시다가 이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니, 다시 입맛이 돋워지는 느낌이었다. 이 가격대에 이만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크레망은 정말 찾기 힘든 듯.







처음으로 각 잡고 올드 빈티지 와인들을 여러 병 마셔보니, 올빈만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아직도 변함없이 짱짱한 올빈 와인들에게서 '에이징'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약간의 희열감을 느낀다. 발효된 고추장, 발효된 된장, 발효된 간장에서 느껴지는 그 '발효'의 뉘앙스가 올빈 와인에서도 느껴지는데, 사람으로 치면 뭐랄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에게서 느껴지는 그 여유로움, 푸근함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나보다 어린 후배들에게서는 통통 튀는 아이디어를 얻지만, 나보다 경험이 많은 선배에게는 여유를 배우 듯이 올드 빈티지 와인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쌩쌩하고 푸릇푸릇한 와인들도 좋지만, 가끔은 올빈 와인의 매력에도 빠져보시길 바란다.  

 

첫 번째 올빈 와인 벙개,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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