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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Jun 20. 2023

올드 빈티지 와인에서는 묵은 고추장 맛이 납니다. -2

[올빈 2탄] 파라오 몬즈 2006, 에레스틴 쥬브레 샹베르땡 1999外


성공적인 첫 번째 올빈벙 뒤로, 보름 만에 두 번째 벙개를 가졌다.

지난번 모임에서 와린이 후배가 '올드 빈티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것을 가리키냐는 질문을 했는데,

딱히 법으로 규정된 것은 없지만 보편적으로 10년 정도 지난 것으로 소통이 된다.


'오래될수록 좋은 와인인가',라는 질문에는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할 수가 없다.

5대 샤또와 같이 장기 숙성형이 가능한 와인이 있는 반면에, 보졸레 누보와 같이 빠르게 마셔야 하는 와인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올빈일수록 어떻게 보관이 되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래서 와인샵에서 올빈을 구매할 때는 항상 '복불복'의 마음을 갖고 구매를 하게 된다.

제대로 보관이 되지 않았던 와인이라면?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 마시기 힘든 와인이 되어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올빈벙의 리스트는 올빈 레드 3병에 싱싱한 쇼비뇽 블랑 2병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번 모임이 즐거웠던 건, 쥬브레 샹베르땡 올빈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이 물론 주요하지만

미국 쉬라즈의 올빈, 아르헨티나 멘도자 말벡의 올빈과 같이 평소 진짜 마실 일이 없었던 올빈들을 대거 마실 수 있었기 때문.



Wine List.

1. [올빈] Domaine Heresztyn-Mazzini Gevrey Chambertin Premier Cru La Perrière 1999

2. [올빈] Pharaoh Moans Shiraz 2006

3. [올빈] Achaval-Ferrer Finca Mirador 2005

4. Les Producteurs Réunis Sauvignon Côtes de Gascogne 2022

5. Señorio de Iniesta Sauvignon Blanc






도멘 에레스틴 마찌니 쥬브레 샹베르뗑 프리미에 크뤼 라 페리에 1999
Domaine Heresztyn-Mazzini Gevrey Chambertin Premier Cru La Perrière 1999

Red wine from Gevrey Chambertin, France

Pinot Noir 100%

오래된 와인은 일반 코르크로 오픈하지 않고, 올빈 전용 오프너인 아소로 오픈합니다.


1999 빈티지의 쥬브레 샹베르땡 등장. 다들 1999년에 무엇을 하셨나요. 저는 이번에도 역시 초등학생이었습니다만.


와이너리 이름이 지금은 도멘 에레스틴 마찌니로 되어있지만, 사실 도멘 에레스틴 마찌니는 2012년에 첫 번째 빈티지를 출시하였다. 그러면 도대체 1999 빈티지가 어떻게 있는 걸까? 도멘 에레스틴 마찌니는 부르고뉴 출신 플로렌스와 샹파뉴 출신 시몬이 함께 도전한 것으로, 이전에 이들은 쥬브레 샹베르땡에 위치한 가족 와이너리에서 10년간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그 이전의 와이너리의 와인으로 추정된다.


체리향, 젖은 낙엽향 같은 부르고뉴 피노누아에서 느껴지는 향이 느껴진다. 또한 훈제 고기 요리에 하는 흑후추와 허브 솔트 시즈닝향, 말린 토마토향이 느껴지고, 향의 한가운데에 고추장 담근 향이 에이징을 가늠하게 한다. 쥬브레 샹베르땡 답게, 피노 누아지만 쥬이시하면서도 굳건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역시 나폴레옹의 와인). 30분 정도 지나니 마른 나뭇가지와 마구간의 향, 페리오 치약 향이 나고, 끝날 때쯤 되니 그을린 스모키 향이 나며 결국 마른 나뭇가지가 잘 타올라서 좋은 끝을 맺은 듯한 와인이었다. 변화를 너무도 즐겁게 느끼며 마실 수 있었던 와인. 우리 모두의 원픽.






파라오 몬즈 쉬라즈 2006

Pharaoh Moans Shiraz 2006

Red wine from Paso Robles, U.S.A

Shiraz 96%, Cabernet Sauvignon & Grenache 4%

와인의 발상지인 이집트를 조명하여 생산한 파라오 몬즈 쉬라즈



마치 할랄 같이 보이는 레이블을 갖고 있는 파라오 몬즈 쉬라즈. 캘리포니아, 하면 여전히 까베르네 쇼비뇽이 대세인데, 이 생산자는 샤또뇌프 뒤빠프와 같은 프랑스 론 스타일을 추구하여 쉬라즈를 베이스로 한 이런 와인을 만들었다. Pharao moans라는 다소 독특한 이름은 와인의 발상지로서 '이집트'를 의미하기도 하고(라벨 역시 파피루스 느낌으로 디자인), 약간의 언어유희를 통해 'Pheromones'을 연상하게끔 했다고 한다.

 

짙은 보랏빛 꽃 향기, 간장 뉘앙스가 처음에 코에 느껴진다. 입에 머금었을 때 신문지에서 맡을 수 있는 등유 향이 느껴지고, 마셔보니 약간 밀크 섞인 초콜릿(다크 초콜릿 아니고 오히려 가나 초콜릿) 느낌이 난다. 갈수록 민트와 박하 느낌이 나면서 스파이시의 정점을 보여준다. (구내염 있는 사람이 마시면 아플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아몬드 같은 너티한 향과 히노끼 향이 올라오고, 더 시간이 지나니 커피와 코코아 파우더 가루를 뿌린 수제 티라미수 느낌이 나며 끝을 맺었다. 전체적으로 초콜릿 뉘앙스와 스파이시한 뉘앙스가 함께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스파이시는 줄어들고 초콜릿 뉘앙스가 우세해지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좋았다.






아차발 페레 핀카 미라도 2005
Achaval-Ferrer Finca Mirador 2005

Red wine from Mendoza, Argentina

Malbec 100%

역시 아소로 오픈하는 말벡 올빈!


마지막 올빈 와인은 아차발 페레 핀카 미라도 2005 빈티지(우리 남편의 학번빈!)

아차발 페레는 아르헨티나의 슈퍼 프리미엄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로, 1998년 산티아고 아차발(Santiago Achaval)과 마누엘 페레(Manuel Ferrer), 이태리 최고의 양조 전문자인 Roberto Cipresso와 Tiziano Siviero가 함께 설립한 와이너리이다. 와이너리 특징 중 하나는 정제와 필터링을 안 해 포도 고유의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핀카 미라도는 퀸스, 로즈메리, 올리브 나무가 주변에 심어져 있는 곳에서 수확된 포도로 만들어지는데, 그로 인해 우아한 뉘앙스의 와인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던 말린 뱅어포에 고추장 바른 향, 우리 집 앞 시장에 있는 메리야스 집에서 파는 동그란 호박엿 향, 메주 향, 말린 감과 말린 푸룬향, 나뭇가지 향에서 에이징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러면서도 수제 티라미수 케이크 향(코코아 가루, 커피)이 느껴져 한 꼬집의 우아함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었던 말벡 올빈이었다.





레 프로듀퇴르 레유니스 소비뇽 꼬뜨 드 가스코뉴 2022

Les Producteurs Réunis Sauvignon Côtes de Gascogne 2022

White wine from Côtes de Gascogne, France

Sauvignon Blanc 100%



와인에 입문한 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잘 안마시계 되는 품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쇼비뇽 블랑일 것이다. 특히나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은 그 특유의 푸릇푸릇함이 생기를 넘어 공격적으로 느껴지면서부터 마시기가 부담스러워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마신 프랑스 랑그독 루시옹 지역의 쇼비뇽 블랑과 스페인 카스티야 쇼비뇽 블랑은 그런 나의 편견을 많이 깨준 쇼비뇽 블랑이었다. 뉴질랜드 쇼블이 10대의 에너지 넘치는 여성이라면, 프랑스 상세르 쇼블은 30대의 우아한 여성이고, 이 프랑스 랑그독 루시옹 쇼블은 20대 초반 대학 새내기 여성이며, 이다음에 마신 스페인 쇼블은 20대 중반 사회초년생의 여성이었다.


추잉껌, 열대 과일 리치 향이 지배적이었다. 마치 리치향 마이쮸를 먹는 느낌이랄까. 올빈으로 적셔진 혀를 다시 리셋시키는 피카추 같은 와인(자, 이제 시작이야!)






세뇨리오 드 이니에스타 소비뇽 블랑
Señorio de Iniesta Sauvignon Blanc

White wine from Castilla, Spain

Sauvignon Blanc 100%

세뇨리따 이니에스따 맛있따 따따따!


수선화, 백합 같이 암술, 수술이 튀어나온 하얀 꽃 향(화이트 플로럴), 스피아 민트같이 시원한 허브 향, 리치로 만든 쨈 같은 뉘앙스가 느껴지고 미네랄리티(계곡물속 돌을 빠는 느낌)도 훌륭하다. 지나치게 양성적인 쇼비뇽 블랑은 이제 나의 테이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 상세르 쇼비뇽 블랑만큼은 아니지만, 차분한 느낌이 좋았다.






이번 올드 빈티지 와인 벙개에서는 세 병의 레드 올빈을 마시다 보니, 역시나 올빈에서만 느껴지는 발효의 느낌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고추장, 된장, 간장, 그리고 메주. 이런 향들이 와인의 에이징을 가늠케 한다.

이렇게 와인을 마시다 보면, 어릴 때의 기억들이 아직까지 내게 많이 남아있고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 있을 때가 많았는데, 할머니는 항상 메주를 직접 담그셨다. 할머니 방을 생각하면, 항상 구들장 같이 뜨거운 바닥에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던 메주들이 생각난다. 이제 올빈을 마시면, 메주로 점철되어 있었던 할머니 방이 떠오를 것 같다.


 

할머니 방을 떠오르게 하는 올빈 레드 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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