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 가디록에서 이탈리안 저녁 코스와 함께 와인 5종을 페어링 하는 시간을 가졌다.
보통 이탈리안 음식에는 이탈리안 와인을 페어링 하는 것이 정석이라면 정석일 테지만,
재밌게도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치 '홍철 없는 홍철팀'처럼 이탈리안 와인 없이 이탈리안 음식과 페어링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더 재밌게도 슬로베니아 같은 덜 알려진 곳의 와인까지 페어링해 보았다는 사실.
Wine list.
1. Henri Giraud Esprit Nature Champagne N.V Magnum
2. Gadais Pere & Fils Les Perreres Monopole Muscadet 2017
3. Bogle Phantom Chardonnay 2016
4. Sutor Merlot 2014
5. Chateau Gaudin Pauillac 2012 Magnum
앙리 지로 에스프리 나뛰르 샴페인 N.V 매그넘
Henri Giraud Esprit Nature Champagne N.V Magnum
Sparkling wine from Champagne, France
Pinot Noir 80%, Chardonnay 20%
아뮤즈 부쉬와 페어링 한 앙리 지로 에스프리 나뛰르 브뤼
앙리 지로는 1625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내려져 오는 샴페인 하우스다. 지금은 12대손인 끌로드 지로가 포도 재배부터 숙성까지 직접 매니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샴페인 와인 산지 중 크랑 크뤼인 Ay(아이)에 위치해 있으며,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하지 않고 사암을 사용하여 1차 발효를 시키고, 오크도 아르곤 오크통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랑 크뤼 떼루아와 와인 품종을 잘 표현하고자 한다.
앙리 지로의 엔트리급 샴페인인 에스프리 브뤼. 과거에는 '에스프리 드 지로'로 나왔으나, '에스프리 브뤼'로 업데이트하면서 피노 누아 품종의 비율을 10% 높였다고 한다. '에스프리 드 지로'는 말 그대로 '지로의 스피릿'이란 의미로, 앙리 지로의 정신을 담아 출시한 클래식한 샴페인이다.
요거트 이스트 향, 청사과 향이 지배적이다. 숙성이 오래되어서 그런 건지, 혹은 매그넘 병에서 숙성이 되어서 그런지, 기포감과 산미가 덜해 어리고 프레쉬한 느낌보다는 올드 샴페인 뉘앙스가 풍긴 매그넘이었다. 숙성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쿰쿰한 트러플을 올린 아뮤즈 부쉬랑 찰떡이었다. 해산물, 과일, 치즈 등과의 페어링을 추천.
도멘 갸데 페레 에 피스 레 페리에르 모노폴 뮈스까데 2017
Gadais Pere & Fils Les Perreres Monopole Muscadet 2017
White wine from , Muscadet-Sevre et Maine, France
Muscadet 100%
도멘 갸데 페레 에 피스 와이너리는 루아르 벨리의 생 피아크르(Saint-Fiacre)에 위치해 있다. 1952년 루이 갸데는 자신의 와인을 팔기 위해 노력했고, 1959년에 그의 아들 마르셀과 미셀이 지원을 하기 시작해(그래서 이름에 아버지와 아들의 의미가 담긴 프랑스어 Pere et Fils가 들어가 있다) 4대째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루아르 밸리의 품종인 뮈스까데(Melon de Bourgogne / 믈롱 드 부르고뉴)에 재배에 헌신을 다했고, 최상급의 뮈스까데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뮈스까데 100%로 이루어진 도멘 갸데 페레 에 피스 레 페리에르 모노폴 뮈스까데 2017 빈티지. 보통 뮈스까데(믈롱 드 부르고뉴) 품종은 다른 것과 블렌딩을 하기보다는, 홀로 사용된다고 한다. 40년 이상이 된 포도나무를 사용했고, 오크 통을 활용하는데 이는 와인에 오크 향을 입히기 위함 보다는, 이 떼루아에 필요한 자연스러운 산소 공급을 위함이라고 한다.
레몬과 같은 청량한 시트러스 기반, 짭조름한 미네랄리티와 산미가 눈에 띈다. 엔트리급 부르고뉴 샤도네이보단 바디감이 더 있고, 부르고뉴 샤도네이에서 느낄 수 있는 요구르트 같은 뉘앙스는 적다. 특유의 미네랄리티와 산미로 인해 초밥, 회, 조개 등의 해산물과 좋은 페어링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는 버터에 구운 전복과 페어링을 해 보았는데, 바다 향이 진한 전복의 맛과 잘 어우러졌다. 전복회랑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
보글 팬텀 샤도네이 2016
Bogle Phantom Chardonnay 2016
White wine from Clarksburg, U.S.A
Chardonnay 100%
이날의 베스트 와인이었던 보글 팬텀 샤도네이
보글 와이너리는 다소 생소한 지역인 클락스버그(Clarksburg)에 위치해 있다. 보글 가문은 1800년대 중반부터 농사를 지었지만, 와인 생산의 역사는 1968년, 아버지와 아들 워렌, 크리스 보글이 포도를 심으며 시작되었다.
샤도네이 100%로 이루어진 보글 팬텀 샤도네이는 프렌치 오크를 사용해 바닐라와 멜팅 캐러멜의 노트를 부여했으며, 2주에 한 번씩 손으로 휘저어 실키하고 크리미 한 텍스처를 만든다고 한다.
모두가 맛있다고 극찬했던 팬텀! 이날의 베스트 와인이었다. 역시 아는 사람은 계속해서 재구매한다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코에 바로 느껴지는 미국 샤도네이 특유의 옥수수콘 향, 마시면 호박 고구마의 아주 진한 구수함이 느껴지고, 구운 사과 향이 난다. 또한 미네랄리티가 훌륭해 혀에 남는 여운이 길다. 오리다리 콩피와 페어링을 했는데, 그런대로 잘 어울렸으나 앞서 먹은 버터 전복구이와 페어링 했으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은 느낌. 와인 21에서는 버터와 견과를 이용한 요리, 새우, 게 등의 해산물, 레몬 리소토 등과의 페어링을 권하고 있다.
수토르 메를로 2014
Sutor Merlot 2014
Red wine from Vipava, Slovenia
Merlot 100% (or Merlot 95%, Cabernet Sauvignon 5%)
내추럴 향이 물씬나는 슬로베니아 메를로와 다양한 파스타의 콜라보레이션
처음 마셔본 슬로베니아 와인. 수토르 와이너리는 슬로베니아의 와인산지인 비파바(Vipava) 밸리에 위치해 있다. 비파바 밸리는 석회암이 가득한 카르스트 고원 지대 아래에, 알프스 산맥과 지중해 일대 사이에 위치한 아름다운 곳으로, 숙성된 과일 향을 가진 와인들을 생산한다고 한다.
수토르 와이너리는 라브렌치치(Lavrenčič) 가족이 운영하고 있다. 1933년 안톤 라브렌치치 주니어가 포드라가에 있는 농장을 사면서 와인 셀러의 기초가 세워졌고, 1991년 그의 손자인 미차 라브렌치치와 아버지, 형제와 함께 다른 것과 혼합된 농장을 와인 농장으로 재분류해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유기농 인증서는 없지만 포도에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와인을 만든다. 심지어 발효조차 자연 발효를 추구하는데, 와인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포도 중 10~15%는 미리 수확을 해 펼쳐두어 발효를 시키고, 나머지 85~90%의 포도는 수확 후 바로 짜내 이틀 뒤 큰 슬로베니아 오크 통에서 결합해 자연적으로 발효가 되도록 일 년간 둔다고 한다. 중간중간 효모(바톤나주)를 자주 섞어준다고. 그다음에 와인을 탱크에 붓고, 가라앉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떠한 세척제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병입 할 때에도 필터링 없이 한다고. 그리고 병입 된 와인을 또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대로 놔둔다고 한다. 이것이 진정한 자연발효의 과정.
자연적으로 발효를 시켜서 그런지, 내추럴 와인의 뉘앙스가 풍긴다. 말똥 냄새가 나는 마구간 향, 젖은 짚더미, 푸른 과실향, 허브나 후추 등의 스파이스 향이 나는데, 묘한 것이 전체적으로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느낌이 섞인 듯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젖은 마구간 향 같은 것은 부르고뉴의 느낌인데, 또 푸른 과실과 허브의 뉘앙스는 시간이 지나 부들부들해진 보르도 느낌이 나서 굉장히 인상 깊었던 와인. 이 와인을 여러 파스타들과 페어링 해보았는데 괜찮게 어울렸으나, 육류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특히 이들은 붉은 육류나 오리고기 등과 추천하고 있다.
와인마트에서 3만 원 대에 구입. (가격도 혜자)
샤또 고댕 뽀이약 2012 매그넘
Chateau Gaudin Pauillac 2012 Magnum
Red wine from Pauillac, France
Cabernet Sauvignon 85%, Merlot 10%, Carmenere 2%, Malbec 2%, Petit Verdot 1%
과일이 수놓아진 이베리코 목살과 샤또 고댕 뽀이약 2012 매그넘
샤또 고댕은 보르도 메독 지역의 지롱드 뽀이약에 위치한 와이너리로, 1901년 할아버지가 물려준 4헥타르의 포도밭에서 시작, 5대를 거쳐 현재 10헥타르의 포도밭을 갖고 있는 와이너리다. 마침 1.5L의 매그넘이 아주 좋은 가격에 있어 겟.
까베르네 쇼비뇽에서 오는 민트의 스파이시, 떡갈나무 같이 큰 오크향, 약간의 베리 힌트가 느껴진다. 부들부들해진 내가 좋아하는 보르도의 된장찌개 느낌. 이번에는 화려하게 과일로 꾸며진 이베리코 목살과 페어링을 했는데 괜찮았으나, 조금 더 덜 팬시한 붉은 육류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비록 홍철 없는 홍철팀, 이탈리안 와인 없는 이탈리안 페어링이 되어 버렸지만,
가끔은 이런 의외성도 좋다.
의외로 망한 페어링을 통해서도 얻는 것이 많다. (비록 속은 쓰릴 지라도.)
의외성이 주는 기쁨과 우연을 한번 즐겨보시길.
※ 레스토랑 정보: 청담 가디록
가디록은 도산대로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점심, 저녁 코스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점심 코스는 4만 원에서 6만 5천 원, 저녁 코스는 9만 원에서 11만 원 사이인데 메인 육류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특히 코스 요리를 주문하면 콜키지 프리가 적용되는 점이 좋다. 자리도 넓고 분리된 공간이 있어, 단체 모임을 하기에도 제격이다. 예약 시 절반 금액을 예약금으로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