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 1997, 볼랭저 그랑 아네, 알 드 리외섹 블랑, 퐁테 카네
깊고 눈부신 루비색. 말 그대로 피존 블러드예요.
여름의 끝. 뉘엿뉘엿 해질 무렵 초원의 향기.
단 한 모금, 혀에 올려놨을 뿐인데ㅡ
커다란 접시에 소담스럽게 담은 과일로 변신해요.
넘치는 황금빛, 오렌지, 라임 그린과 군청색.
그리고 석양의 선명한 붉은빛.
온천지에 가득한 빛을 심호흡과 함께 들이마시면,
어두운 마음이나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패배감은 전부 어제 일이 되어 버려요.
자, 미래를 향해 다시 걸어가자ㅡ.
그런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는 이 와인은…
그래요ㅡ. 왠지 저, 기운이 펄펄 나요.
- 18권 61쪽, 시즈쿠 -
볼랭제의 '라 그랑드 아네' 1999년 산이예요.
'007'의 제임스 본드가 즐겨 마시기로 유명한,
18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명문 상파뉴 메종의
프레스티지 퀴베지요.
허브와 들풀.
인공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풀꽃들이 자라 있어.
잘 다듬어 놓은 정원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만큼 마음이 편해져.
이곳은 아담한 저택에 있는 잉글리시 가든.
하나하나 콕 집어서 말할 만큼
눈에 띄는 꽃은 없지만,
자연스러워서 지리지 않는
은근한 기품을 풍기는 작은 뜰.
오후의 쑥물빛 속에서 레몬밤과 민트 등을 따서
허브티를 마시는,
평온한 휴일의 오후.
이건 '알 드 리외섹 블랑' 2007년 산.
호오ㅡ. 그래서 귀부향이 살며시 났구나.
- 25권 14쪽, 시즈쿠 & 마리 -
와우! 굉장해! 샤르도네가 절반이고,
나머지는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에군요!
- '샹파뉴 바롱 드 로쉴드 브뤼 N.V. 싼 곳에서는
5천 엔대에 살 수 있어.
어? 하지만 방금 '로쉴드'라고….
그런데도 이 가격? 믿기지 않아.
- 아직 역사가 짧으니까.
하지만 생산자는 굉장한 명문 일족이야.
로쉴드 가문인 '라피트', '무통', '샤또 클라크'의 합작품이지.
…
초원ㅡ. 그곳을 달리는, 한 마리의 젊은 수사슴.
쭉 뻗은 다리로 우아하게 질주하는
수사슴 같은 강인함과,
초원의 상쾌함이 공존하는…
- 25권 202, 시로 & 시즈쿠 & 미야비 & 세라 -
순간 어떤 와인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당혹스러웠어요.
그런데 혀 위에서 안에 담고 있던
포텐셜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엄숙한 음악과 함께 무대의 막이 올라갔어요ㅡ.
일본에는 여성이 남성의 역할까지 연기하는
뮤지컬이 있습니다.
다카라즈카라는 가극단인데 여성들로만 구성돼 펼치는 그 무대는,
일본 여성에게 특히 인기가 있죠.
다카라즈카 무대에서 톱스타는
여성 역할이 아니라 남성 역할을 하는 배우예요.
진짜 남자 이상으로 남자답고,
그러면서 여성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화려한 여성만의 무대.
다카라즈카의 무대를
이 '사토 퐁테 카네' 2000년 산에서…
보았습니다.
- 24권 110쪽, 시즈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