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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Jul 24. 2023

<신의 물방울>에 나온 와인 마셔보기 - 3

루체 1997, 볼랭저 그랑 아네, 알 드 리외섹 블랑, 퐁테 카네


언제 읽어도 재미있는, 나의 넘버원 와인 교과서 <신의 물방울>.

2022년에 이어, 올해도 한 번 더 읽으니 그 사이에 또 마셔본 와인들이 쌓였다.

즐거운 마음으로 작성하는 3탄.

 






[신의 물방울 18권] 테누타 루체

Tenuta Luce



깊고 눈부신 루비색. 말 그대로 피존 블러드예요.
여름의 끝. 뉘엿뉘엿 해질 무렵 초원의 향기.
단 한 모금, 혀에 올려놨을 뿐인데ㅡ
커다란 접시에 소담스럽게 담은 과일로 변신해요.
넘치는 황금빛, 오렌지, 라임 그린과 군청색.
그리고 석양의 선명한 붉은빛.
온천지에 가득한 빛을 심호흡과 함께 들이마시면,
어두운 마음이나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패배감은 전부 어제 일이 되어 버려요.
자, 미래를 향해 다시 걸어가자ㅡ.
그런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는 이 와인은…
그래요ㅡ. 왠지 저, 기운이 펄펄 나요.
- 18권 61쪽, 시즈쿠 -



시즈쿠가 잇세는 계속해서 사도 대결을 펼쳐나가는데, 5사도 대결에서 패배한 시즈쿠가 상심해 있자 타이요 맥주 팀원들이 시즈쿠를 위해 자리를 준비한다. 시즈쿠로 하여금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든 와인이 바로 테누타 루체의 루체 1997 빈티지다.


<신의 물방울>에 나온 와인인지 모르고 마셨는데, 심지어 <신의 물방울>에 나온 빈티지까지도 같은 와인이었어서 괜스레 반가웠던 루체 1997 빈티지. 올빈 와인을 다루면서도 기록한 바 있지만, 이 와인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물론 시즈쿠가 마셨을 때는 지금처럼 오래된 빈티지의 느낌은 아니었을 텐데, 민트와 유칼립투스에서 오는 스파이시함, 언뜻 비추는 고트 치즈 향과 할머니 댁 장독대에서 잘 익고 있는 태양초 고추장의 느낌, 말린 장미와 말린 토마토의 향에서 이 와인이 23년이나 시간을 보냈음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이 30분 정도 더 지나면, 훈연할 때 쓰는 참나무 오크칩 향아몬드류의 견과류 향이 올라온다. 혀에 남는 탄닌감은 생각보다 라이트하고, 민트와 유칼립투스 향 덕분인지 오히려 개운하다.


실제로 미국 와인의 아버지인 로버트 몬다비가 이탈리아 몬탈치노에 위치한 프레스코발디 와이너리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마주한 태양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와인이 바로 루체다. 그래서 와인 레이블에도 정열적인 해태양이 그려져 있다. 누군들 그 태양을 보고 제자리에 앉아만 있을까. 다시 시작하고 싶게끔 만드는 그 열정과 정열이 이 와인에 담겨있다.








[신의 물방울 34권] 볼랭저 라 그랑 아네

Champagne Bollinger La Grande Annee



볼랭제의 '라 그랑드 아네' 1999년 산이예요.
'007'의 제임스 본드가 즐겨 마시기로 유명한,
18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명문 상파뉴 메종의
프레스티지 퀴베지요.



시즈쿠가 10사도 대결에서 잇세를 이겼고, 시즈쿠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크리스토퍼 왓킨스가 쏜 와인이 바로 볼랭저 라 그랑 아네 1999 밀레짐이었다. 사실 이 샴페인은 너무나 맛있어서, 구체적인 감상 없이 그냥 저렇게만 소개되고 마는 것이 조금 아쉬운 와인이기도.


프랑스 파리에 놀러 갔을 때 미슐랭을 받은 프렌치 퀴진 피에르 가니에르에서 식사를 했다. 역시 미슐랭이라 그런가, 식전주로 볼랭저 라 그랑 아네 2014 밀레짐을 권해주더라는. 2014 밀레짐은 굉장히 너티하고 이스트 한 느낌이었다. 헤이즐넛, 넛츠 등의 고소한 향과 함께 사과 향이 어우러진 샴페인. 산미와 섬세한 기포감, 심지어 미네랄리티까지 갖춘 아주 훌륭한 샴페인이었다. 최고의 소믈리에들이 핸들링해 주어 더 컨디션 좋게 마실 수 있었던 샴페인.








[신의 물방울 25권] 알 드 리외섹 블랑

R de Rieussec Blanc



허브와 들풀.
인공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풀꽃들이 자라 있어.
잘 다듬어 놓은 정원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만큼 마음이 편해져.
이곳은 아담한 저택에 있는 잉글리시 가든.
하나하나 콕 집어서 말할 만큼
눈에 띄는 꽃은 없지만,
자연스러워서 지리지 않는
은근한 기품을 풍기는 작은 뜰.
오후의 쑥물빛 속에서 레몬밤과 민트 등을 따서
허브티를 마시는,
평온한 휴일의 오후.
이건 '알 드 리외섹 블랑' 2007년 산.
호오ㅡ. 그래서 귀부향이 살며시 났구나.
- 25권 14쪽, 시즈쿠 & 마리 -



시즈쿠는 8사도 대결에 도전하기 전, 아버지인 칸자키 유타카의 인생을 바꾼 한 병의 와인을 찾기 위해 과거 아버지와 일했던 하야마 씨를 찾아간다. 그러나 하야마 씨의 상태는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그의 딸 마리의 실수로 사기를 당해, 가짜가 대량 포함된 샤또 오브리옹을 잔뜩 구매해 실의에 빠져있던 것. 시즈쿠는 자신의 미친 듯한 후각을 믿고, 그를 돕고자 하는데. 그런 마리 앞에서 자신의 후각을 증명하 듯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는 시즈쿠가 마신 와인은 바로 귀부 와인을 만드는 소테른에서 만드는 드라이 와인, 알 드 리외섹 블랑 2007 빈티지다.


내가 마신 것은 다소 영한 2020 빈티지의 알 드 리외섹 블랑. 소테른에서 만든 드라이한 와인이라기에 신기한 마음에 구매해 본 알 드 리외섹 블랑. 달큼한 귀부와인을 만드는 곳에서 만든 드라이 와인은 이렇게 단맛이 없이도 스위트할 수 있구나,라는 또 다른 세계, 경이로움을 느꼈다. 패션 후르츠, 샤인 머스캣, 화이트 플로럴 향이 아주 향긋하면서도 미네랄리티와 라이트 한 산미를 갖춰 깔끔하게 끝나는 리외섹 드라이. 시즈쿠가 말한 표현은 조금 더 들풀이 가득한 영국식 정원 느낌이었는데, 나의 느낌은 조금 더 향긋한 과일이 마구 열려 있는 소박한 과수원 같은 느낌이었다. 굉장히 새로운 느낌의 와인이었기 때문에 한번 더 마셔볼 생각이다.








[신의 물방울 25권] 샹파뉴 바롱 드 로칠드 브뤼

Champagne Baron de Rothschild Brut



와우! 굉장해! 샤르도네가 절반이고,
나머지는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에군요!
- '샹파뉴 바롱 드 로쉴드 브뤼 N.V. 싼 곳에서는
5천 엔대에 살 수 있어.
어? 하지만 방금 '로쉴드'라고….
그런데도 이 가격? 믿기지 않아.
- 아직 역사가 짧으니까.
하지만 생산자는 굉장한 명문 일족이야.
로쉴드 가문인 '라피트', '무통', '샤또 클라크'의 합작품이지.

초원ㅡ. 그곳을 달리는, 한 마리의 젊은 수사슴.
쭉 뻗은 다리로 우아하게 질주하는
수사슴 같은 강인함과,
초원의 상쾌함이 공존하는…
- 25권 202, 시로 & 시즈쿠 & 미야비 & 세라 -



시즈쿠의 8사도 이전에 시로 아저씨가 맛 보여준 샴페인, 샹파뉴 바롱 드 로칠드 브뤼. 시로 아저씨의 설명대로, 이 와인은 와인계의 명문인 로칠드 가의 세 일가가 함께 만든 샴페인이다. 샤또 라피트 로칠드, 샤또 무똥 로칠드, 그리고 샤또 클라크. 이들은 샤르도네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 샴페인 하우스에서 만드는 모든 와인은 샤르도네 비율 50~60% 이상으로 블렌딩이 되고 있다. 현재 이마트에서는 10만 원 이상, 와인마트에서는 7만 원대에 구매 가능한데, 당시 5천엔 대에 살 수 있었던 와인이구나. 와인 값이 무섭게 올랐음을 실감.


아주 생생하게 다가오는 생생한 이스트 향, 마치 옆에서 누군가가 술을 빚고 있는 것 같다. 크리미 한 치즈향, 그리고 병아리 콩 같은 뉘앙스가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이스트의 느낌. 삶은 병아리 콩을 씹는 듯한 크리스피 한 질감, 자몽이나 레몬 같은 시트러스 계열 과일의 껍질을 핥듯이 쌉쌀한 피니시와, 시트러스에서 오는 산미가 매력적이다. 미네랄리티, 산미, 과실과 이스트 향 모두를 잡은 정말 맛있는 샴페인. 과연 와인 명문 로칠드 세 일가가 뭉쳐서 만든 샴페인답다. 그런데 미야비가 표현한 수사슴 같은 강인함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 동물적인 뉘앙스가 느껴지는지는 잘 모르겠고, 시트러스 느낌이 상쾌함을 주는 샴페인인 것은 분명하다.








[신의 물방울 24권] 샤또 퐁테 카네

Chateau Pontet-Canet



순간 어떤 와인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당혹스러웠어요.
그런데 혀 위에서 안에 담고 있던
포텐셜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엄숙한 음악과 함께 무대의 막이 올라갔어요ㅡ.
일본에는 여성이 남성의 역할까지 연기하는
뮤지컬이 있습니다.
 다카라즈카라는 가극단인데 여성들로만 구성돼 펼치는 그 무대는,
일본 여성에게 특히 인기가 있죠.
다카라즈카 무대에서 톱스타는
여성 역할이 아니라 남성 역할을 하는 배우예요.
진짜 남자 이상으로 남자답고,
그러면서 여성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표현하는… 화려한 여성만의 무대.
다카라즈카의 무대를
이 '사토 퐁테 카네' 2000년 산에서…
보았습니다.
- 24권 110쪽, 시즈쿠 -



시즈쿠는 의기양양하게 7사도를 들고 갔으나, 잇세에게 패배를 하고 만다. 유독 패배의 쓴 맛을 크게 느낀 시즈쿠는 급기야 사도 대결을 포기하고자 하는데. 그때 잇세의 엄마인 토미네 호노카가 아버지의 원점에서부터 시작해 보라고 조언을 한다. 그렇게 시즈쿠는 아버지의 원점을 찾고자 아버지 자서전을 읽고, 보르도에서 열리는 메독 와인 마라톤에 참여를 하게 되는데. 그때 여러 샤또들을 들러 다양한 와인을 맛보는데 그중 하나가 샤또 퐁테 카네 2000년 빈티지다.


좋은 기회로 샤또 퐁테 카네 2011 빈티지와 2014 빈티지를 나란히 시음해 볼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보르도 레드이기 때문에 참나무, 떡갈나무 같이 덩치 있는 나무의 오크향이 느껴진다. 과실은 체리 같은 열매가 작은 붉은 과실류의 향이 느껴진다. 2011 빈티지는 2014 빈티지보다 오래되었기 때문에 더 부들부들해 목 넘김이 좋고, 두부나 발효된 콩 같은 뉘앙스가 더 많이 느껴진다면, 2014 빈티지는 조금 더 어리기 때문에 두부향은 나지만, 2011 빈티지에서는 못 느꼈던 체리의 산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 다카라즈카 무대를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시즈쿠는 보르도 레드가 갖고 있는 단단한 오크향에서부터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를, 체리와 같은 붉은 베리 계열에서 섬세함을, 부들부들해진 빈티지에서 부드러움을 느꼈을 것 같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의 역할을 하며 섬세하면서도 남자다움을 보여주는 다카라즈카 무대를 떠올린 것. 언젠가 일본에 놀러 가 다카라즈카 무대를 보고 샤또 퐁테 카네를 한 번 더 마셔봐야겠다고 다짐.







이렇게 <신의 물방울>에서 캐릭터들이 표현한 시음기와 나의 시음기를 비교해 보는 일은, 마치 나도 만화 속에 들어가 사도 대결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욱 재미있다. <신의 물방울>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시음 대결을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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